예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심층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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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03) 미술노동자-급진적 실천과 딜레마, 열화당, 2021.
미술노동자-급진적 실천과 딜레마, 열화당, 2021. 출처=알라딘.
미술노동자-급진적 실천과 딜레마, 열화당, 2021. 출처=알라딘.

미국의 미술평론가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Julia Bryan-Wilson)은 미술노동을 비롯해 사진, 영상, 무용, 퍼포먼스, 공예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감시, 독립, 페미니즘, 퀴어, 아마추어 등의 키워드를 도입하는 이러한 연구와 저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시 기획도 병행하고 있다. 번역자 신현진은 쌈지스페이스와 사무소 등에서 일하면서 동시대 한국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체계이론을 바탕으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이들 저자와 역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지난 10여 년 간, 망설이고 주저했던 ‘미술노동’이라는 말을 정갈한 단행본 출판으로 대면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한국이나 저자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미술이나 미술인의 노동자적 위상에 대해 논란이 많다. 미술과 노동과의 관계가 궁금했던 나는 관련된 책들을 찾아읽던 중, 줄리아 브리이언 윌슨의 책을 접하고 많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시곗바늘을 1960년대 말로 돌려, 자신을 노동자라 명명했고, 미술파업을 조직했으며, 미술인들의 권리 문제를 논의했던 미술노동자연합에 주목했다. 그는 미술노동자연합원들이 레디메이드, 프로세스아트, 미술 안에서의 여성의 노동, 관계 미학, 개념미술 등을 실천하면서 마주쳐야 했던 상황을 분석해 미술인의 노동자적 위상과 관련된 논쟁의 기원과 그들의 딜레마를 보여주었다.”

번역자 김현진이 <옮긴이의 말: 미술에서의 일, 작업, 노동>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 미술과 노동, 예술과 노동은 서로 얽힐 수 없다는 믿음이 근대 이후 예술 개념에 굳건히 자리잡아왔다. 이 대목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분석이 겹친다. 노동(labour), 작업(work), 행위(action)에 대하여 분석한 그에 따르면,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수행하는 목적의식적인 행동으로서의 ‘노동’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며 ▲생존 이상의 인위적인 제작활동을 뜻하는 ‘작업’은 ‘물질형식에 기반을 둔 예술창작’을 결과하고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독자성을 완성해주는 행동으로서의 ‘행위’는 ‘비물질 예술활동에 유비할 수 있는 인간활동’이다. 

이렇듯 노동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하는 일이지만, 작업은 생존을 넘어서는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20세기 후반 들어서, 특히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어 미술시장이 점차 확고한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전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시기, 그러니까 1960년대 이후의 후기산업주의 사회부터 예술은 시장주의에 포섭되기 시작한다. 근대주의의 이상이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은 이제 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그 독자성, 가령 예술공론장으로서의 위상이나, 인간의 정신적인 작용과 활동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위상 등이 점차 쇠퇴하였다. 

시장주의 체제에 편입한 예술은 ‘예술작품이라고 하는 상품’을 제작하여 그것을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사고 파는 것으로 바뀌어갔다. 예술작품 감성을 통한 예술적 소통과 공감이라는 본연의 사용가치보다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이윤을 창출하려는 교환가치에 더 집중하면서 예술창작이라는 노동은 소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예술창작이라고 하는 가장 덜 자본주의적인 행위마저도 시장주의 체제로 편입함으로써, 예술마저도 소외된 노동형태로 만들어버렸다. 

저자는 미술아카이브의 공청회 녹취록, 연합의 전단지, 미술작품 등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입체적으로 주제에 접근한다. 그는 예술이라는 독자성이 있다고 믿어왔던 영역이 후기산업사회로 편입하던 1960년대 문화혁명의 시기에 탄생한 <미술노동자연합>의 배경과 실재로 첫 번째 장을 시작한다. 1장,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에서 그는 ▲연합의 정치 ▲미술 대 노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의 노동 ▲후기산업화 시대의 전문가화 등의 소주제들을 다룬다. 이후 2~5장에서는 ▲칼 안드레의 작업 윤리 ▲로버트 모리스의 미술파업 ▲루시 시파드의 페미니스트 노동 ▲한스하케의 서류작업 등을 다루면서, 미니멀리즘, 공예운동, 미술비평, 개념미술 등으로 미술노동 개념을 실험하고 실천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다룬다. 

“미술은 어떤 일을 하는가? 미술은 재현의 시스템이나 의미화 형식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가? 미술은 어떤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가? 미술은 경제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어떻게 관계를 구조화하며, 어떻게 관념을 회자되도록 하는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기 사이에 통용된 미술노동의 정의는 무척이나 역동적이었고, 글쓰기, 전시기획 그리고 심지어는 관람 행위를 모두 포함했다. (…) 이 책은 또한 이 시기의 미술노동은 단지 불안정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로서의 미술관이 아틀리에 바깥의 작업장으로 전환되고, 관리자의 권위를 대리하며, 전쟁 반대를 위한 행동주의의 표적이 되는 관계 안에서 구축되었다고 제안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결국 이 책이 말하는 1960년대의 미술노동은, 당시의 주류 미술제도 바깥을 향한 급진적인 탈주 실험이었으며, 그것은 미술을 노동의 범주와 연결하면서도 노동일반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노동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미술계에서 말하는 미술과 노동, 미술이라는 노동, 노동의 미술 등의 의제들은 고정된 관념으로 포착할 수 있다기보다는 한 시대의 조건, 특히 노동이 사회와 개인의 삶과 관계 맺는 방식, 즉 생산관계의 규정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21세기 동시대의 노동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따라 오늘날의 미술과 노동의 관계 또한 재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와 금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미술과 미술노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평론가. 한국큐레이터협회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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