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홋카이도 잇는 전쟁상흔, 오카베 마사오 프로타주 展
제주-홋카이도 잇는 전쟁상흔, 오카베 마사오 프로타주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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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스페이스·씨, 오카베 마사오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 전시 개최
네무로 마키노우치 구 해군비행장 활주로에 새겨진 발자국, 2008~2011, 종이에 흑연, 각 55x19.5cm, 13점, 55x38cm, 총 47점. 사진=아트스페이스‧씨.

일본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마키노우치 해군 비행장과 제주 서귀포시 알뜨르비행장이 맞닿은 채 기억을 떠올려 표정을 드러내는 프로타주 전시가 제주에서 펼쳐지고 있다.

두 공간은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과 이를 위한 노동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밴 곳이다. 비행장 활주로 콘크리트에 남겨진 선명한 발자국은 일본의 전쟁 야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트스페이스‧씨(대표 안혜경)는 8월4일까지 제주시 중앙로 전시장에서 오카베 마사오의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 전시를 연다. 기획총괄 안혜경, 기획진행 김해다·박민희, 협력평론 미나토 치히토, 평론 김항이다.

작가는 한국인 강제징용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린 고향 네무로에 있는 마키노우치 구 해군 비행장과 일제에 의해 제주도민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알뜨르비행장을 서로 마주보게 했다.

장소에 밀착한 채 온몸으로 느끼며 육체적 노동을 가하고, 땀 흘리며 문질러 기억을 드러내 담아내는 프로타주는 작가의 창작 의도를 잘 드러낸다.

프로타주는 회화에서 그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으로 올록볼록한 물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는 식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작가는 자국 일본이 근대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며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근대산업유산에 질문을 던지고 전문가와 향토사학자, 시민, 학생들과 답해오고 있다. 

특히 마키노우치 해군 비행장에서 중학생들과 진행한 프로타주 작업 워크숍에서는 짚신을 신은 한 조선인 노동자의 발자국을 찾아내 프로타주하기도 했다.

작가는 “제주의 역사는 일본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고 자란 홋카이도 동쪽 네무로에도 강제 연행된 노동자들에 의해 옛 해군 비행장이 건설되고 그곳 때문에 표적이 돼 마을이 공습받았다”고 말문을 연다.

이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자란 기억들을 오버랩시키며, 알뜨르비행장 격납고의 벽을 12개의 종이에 본떴다. 네무로의 격납고와 거의 같은, 일본군이 만든 구축물”이라고 설명한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옛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에서 프로타주 작업을 진행 중인 오카베 마사오 작가. 사진=아트스페이스‧씨.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와 격납고, 2019, 종이에 흑연, 57x77cm. 사진=아트스페이스‧씨.

또 “콘크리트에 새겨진 발자국, 적막한 활주로의 광경은 농밀한 사람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고 집단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속도가 점점 더해지며 절박해진 움직임을 전한다”며 “시간도, 존재도, 행동도, 풍경 안에서 녹슬고 방치된 채 새로워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전시는 홋카이도와 한국 작가들 간의 오랜 우정과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시에 함께 작업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예술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이번을 계기로 새로운 교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 기획자는 “오카베 마사오의 작업 활동에 가장 중요한 지점은 근대를 묻는 태도와 질문 체가 작업과 하나 돼 프로타주 대상과 연계된 전문가, 향토사학자, 시민들이 함께 생각하는 활동”이라고 소개한다.

예술은 시간과 사회, 지역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려 깊은 행위라는 것이 작가의 예술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카베 작가의 프로타주 작업은 흔적을 추적하며 역사를 기억한다. 역사 속의 몸부림을 망각하게 하는 기억의 정치화를 거스르는 실천”이라며 “이번 전시가 예술매체로서 프로타주를 새롭게 만나고 매순간 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억을 거스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항 평론가는 “프로타주는 최소한의 예술이다. 그것은 침묵을 듣고, 어둠을 보고, 기억을 만진다”며 “프로타주는 의미와 시각과 자아를 표상의 전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들의 생성을 포착하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우수기획창작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마련됐으며,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휴관은 없으며 관람은 무료다. 

오카베 마사오(岡部昌生) 작가는 1977년부터 프로타주 작업을 주요 매체로 선택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7년엔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삿포로 국제 예술제와 아이치 트리엔날레를 비롯한 국제 예술제에 참가하는 등 일본의 대표적 현대 미술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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