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6) 제주시 용담1동 ‘바라나시책골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마음의 본바탕에 이르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일심(一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일심에 머무르는 길은 우선 호흡에 집중하고 지금에 머무르며, 내면에 흐르는 기억과 감정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 지금에 머무른다. 이를 통해 내면의 물결이 가라앉을 때 마음의 본바탕은 저절로 드러난다. 여행 중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자신의 본바탕을 발견한 권혜진 씨, 그는 2016년부터 제주에서 바라나시란 간판을 내걸고 북카페 겸 책방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 동한두기길에서 바라보는 바다다. 어쩌면 권혜진 씨는 이 바다를 바라보며 갠지스강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진짜 원하던 일”
바라나시책골목에서는 순차적으로 맞이하는 향기가 있다. 대문 앞에선 바다 향, 마당에선 박하 향, 책방 안에 들어서면 천연 아로마 향이 흐른다. 내가 방문하던 시간엔 어쩌다밴드의 ‘고백’이 카페 안을 흐르며 분위기를 더 감미롭게 했다. 만약 인도에 간다면 이런 분위기일까? 아닌 게 아니라 인도에 다녀오신 분들이 이곳에 오면 인도의 카페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바라나시책골목은 도심 속 시골이다. 대문에서 책방에 이르는 길은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정겨웠다.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도의 바라나시에 반했다는 책방지기,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의 느낌과 흡사한 원초적인 게 이곳에 있음이었다. 제멋대로 자라는 것 같으나 질서가 있는 마당의 박하, 나뭇가지로 기둥을 세운 빨랫줄에 엉성하게 매달린 염색 천 모두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시사교양 쪽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권혜진 씨는 여행을 즐겼다. 그 경험들은 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SBS 방송아카데미에서 방송작가로서의 기초적인 것들을 배운 권혜진 씨는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서 경험을 쌓았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다. 그러므로 오전 프로그램과 오후 프로그램을 돌고 돈다. 권혜진 씨는 이슈가 되는 사건•사고에서부터 SBS ‘생방송 투데이’ 등을 돌고 돌다가 다시 돌아와 메인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SBS에서 ‘동물농장’, ‘생활의 달인’, EBS ‘다큐프라임’, 휴먼다큐 KBS ‘성공예감’, MBC 교양프로그램 ‘명품 여행! 지금 그곳에 가면’ 등에서 일했다. 

방송 일은 권혜진 씨에게 잘 맞았고 또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내면을 들여다보며 조금 더 천천히 살고 싶은 또 다른 게 있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방송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매력도 있었고, 돈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10년 차가 되면서 방송 일이 익숙해졌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원하던 갈망이 파고들었다. 

삶의 방향을 바꿔도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레귤러 프로그램을 줄이고, 2015년엔 제주를 오갔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내면이나 영상 등 삶에 올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 일을 접는 게 아쉬웠지만 할 수 없었다. 2016년, 14년 넘게 해오던 방송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제주에서 북카페를 차렸다. 

이제 자신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탐구하고, 명상하면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손님이 별로 없었다. 모든 건 때가 있는 법,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손님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방향을 선회하다가 ‘아, 이때다!’ 하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남아있던 절반의 욕망을 단칼에 잘라냈다. 차츰 시간대에 따라 손이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밀려들었다. 수입에 대한 두려움, 그건 오지 않은 걱정이었다. 정성이 쌓이며 손님이 늘었고, 또 굴러간다. 책방지기의 선택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으로 들어가는 대문에서 이미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간판을 바라나시라고 한 이유”
수도인 델리 외에도 인도의 대표적인 도시는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바라나시는 인도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를 아우르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땅을 바라나시라고 하는데, 비록 소의 배설물이 거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하여도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곳이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죽기 위해 몰려드는 인도 사람들이 많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 물에 몸을 담그면 죄가 씻기고, 죽어서도 이곳 강물에 재가 뿌려지면 윤회의 사슬에서 풀려난다고 믿는다. 심지어 어린아이의 시체를 그냥 내려보내기도 한다. 갠지스강에서 빨래하고, 몸을 씻기도 하며, 그 물을 마시기도 한다. 인도인들에게는 이곳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최고의 죽음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인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한 권의 책이다. 《아주 평범한 날에(저자데보라 엘리스, 역자 배블링 북스, 출판 산하)》라는 이 책은 십여 년 전 중학생들과 함께 수업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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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는 박하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어설프게 널린 염색 천까지 원초적인 느낌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인도 북동부에 있는 탄전 마을 자리아는 100여 년 전 채굴 때 석탄층에 붙은 불을 품고 지금까지 유황가스며 수증기를 내뿜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 수단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석탄이다. 이들에겐 가난과 굶주림보다 앞날에 대한 기대조차 가질 수 없는 게 가장 힘든 일이다. 

열세 살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실제 나이를 알지 못하는 이 책의 주인공 발리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이모의 집에서 산다. 그러나 이들은 발리의 친척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안 발리는 자리아를 탈출하기 위해 무작정 석탄 트럭에 올라탔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인연이었다. 석탄 트럭이 향한 곳은 극과 극이 공존하는 콜카타였다. 발리는 생존 본능으로 도시를 떠돌며 살아갔지만 그래도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자 모험이었다. 우연히 만난 폐지 줍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발리가 콜카타로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한 구절의 시에서 발리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어떤 것인가를 터득한다.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건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발리는 인생의 길을 향해 나선다. 

발리의 새로운 인연은 갠지스강 강가 화장터에서 시작된다. 갠지스강은 사람들이 축복을 기원하기도 하고, 죽은 이를 떠나보내기도 하는 곳이다. 발리는 갠지스강 물에 뛰어들어 동전을 줍기도 한다. 살기 위해서다. 불씨를 밟아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한센병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가 자선병원으로 데려가지만, 발리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삶과 죽음이 하나인 도시 바라나시와 갠지스강, 비록 관광객에게 구걸하고 도둑질로 살아가지만 절망은 없었던 발리, 발리의 삶이 곧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아니었을까.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으로 들어서면 천연 아로마 향이 흐른다. 이미 손님이 여럿 와 있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시바 신이 걸려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힌두교도들의 종교의식인 아르띠 뿌자(Arti Pooja)가 진행될 땐 누구나 바라나시의 성스러움에 빠져든다.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바라나시는 매력적인 도시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수천 년 전부터 다양한 현자들의 토론 문화가 발달한 영성靈性의 집결지다. 권혜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왠지 이곳에 끌렸다. 그냥 끌렸다. 그렇게 가슴이 이끄는 대로 여행도 다녔다. 그러다가 바라나시에서 남편도 만났다. 이처럼 바라나시는 권혜진 씨에게 다양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간판을 바라나시라고밖에 정할 수 없는 이유였다.

수행자들의 집결지이자 인도의 가장 대표적인 영성 문화와 이미지를 가진 바라나시, 그 도시를 가슴에 담은 권혜진 씨는 방송 일을 병행하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낙 인도를 좋아했고, 쉬면서 책도 읽고 싶었다. ‘사람이 오든 말든 책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오직 그 바람 하나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게에 진열한 책도 70~80%는 본인이 갖고 있던 책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는 손님이 오면 처음만 안내해 주고 주문받은 다음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이 자리는 명상 구조로 된 북카페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태양을 마신다“
현대문명은 어찌 보면 서구적인 걸 쫓아가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바라나시는 다르다. 아직도 수천 년 전 그대로인, 현대문명이 침범하지 않은 그 모습을 매일매일 아침마다 재현한다. 현대인은 대부분 시계를 보며 살 뿐 태양이 뜨는 걸 자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라나시 사람들은 날마다 태양이 뜨는 걸 자각하며 산다. 태양을 흡입하고, 태양이 비치는 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한다. 태양을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감각을 아침마다 재생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서구 문명을 정답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토론할 때도 나는 아이들과 서구 사례를 근거로 많이 든다. 이는 서구가 모델이고 정답으로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서구를 많이 따랐고 카피한 부분도 많다. 이 또한 모든 게 먼저 발달하면서 힘과 자본을 지닌 그들의 삶이 모델이라고 여긴 때문이다. 하지만 바라나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문화 중심이기 이전에 자기 문화에 대한 존중 내지는 자부심이다. 어찌 보면 바라나시에서 이어지는 그 모든 것은 점진적이면서도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다. 이제 거꾸로 이들의 명상요가 등 요가문화는 서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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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책골목 내 명상 구조로 된 북카페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바라나시에 가면 무너지는 것들“
폭이 좁았을 뿐 기온변동 현상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존과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온난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자정작용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하수, 오물, 시체 등 오래된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생산되고 폐기되는 것들이 흘러드는 갠지스강은 보지 않아도 오염이 심할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환경오염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다. 

물론 이 모든 건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물줄기 같은 행위다. 비록 수천 년 전의 베이스를 간직한 문화라고 할지라도 시간을 이기지는 못한다. 시간에 따라 모든 건 변화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기엔 욕망이 따라붙는다. 인도인이라서 특별히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일 뿐이다. 따라서 촛불을 켜는 일들도 점점 과해진다. 갠지스강이 오염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또한 누군가에겐 충격이다. 자신을 깨우는 자극으로 인도에 푹 빠지면서 믿어왔던 옳고 그름이 흩어진다. 지금껏 받아왔던 교육이 모두 옳은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무질서와 혼돈이 밀려든다. 바라나시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최근 들어 인도 정부에서도 갠지스강 수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인도인들의 의식 개선이 먼저다. 

인도인의 가치관이나 베이스는 대부분 청결과 불결을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다. 청결과 불결에 대한 개념이 별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우리와는 문화적으로 다를 뿐이다. 요즘은 멸균시대, 지나친 청결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바이러스의 약체가 되기도 한다. 권혜진 씨 역시 어렸을 때부터 깨끗하고 더러운 걸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맞닥뜨린 인도는 비위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프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재미, 이분법적인 사고를 흩트려 놓는 재미는 고착화된 것들을 무너뜨렸다. 바라나시는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자꾸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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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책골목 내 북카페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가슴의 믿음“
진열된 책들은 특별히 어느 장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다.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명상을 다룬 책들도 많았고, 대가들의 책도 많았다. 모두 중고책이었다.

북카페만 하던 때, 사람들은 이곳에서 책을 구매하고 싶어 했다. 권혜진 씨는 그런 고객을 위해 중고책을 구매하고, 카페의 중앙라인에 두고 판매하게 되었다. 물론 양옆엔 북카페를 찾은 손님들이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책이 더 많다. 어쩌다 새 책을 구매해도 이미 권혜진 씨가 먼저 읽기 때문에 판매할 땐 자연스레 중고책이 되었다.

연세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 임차인은 늘 불안하다. 언제 가게를 비우라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권혜진 씨는 담담하다. 가슴의 믿음이라는 삶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을 따르면 길은 절로 만들어진다. 마당에서 자라는 박하는 억지로 손을 대지 않아도 저들 스스로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그런데 우리는 애써 이들을 다듬으려고 한다.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저 믿고 그대로 두면 이들은 본질을 드러내며 저절로 일어난다. 권혜진 씨가 이곳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게를 힘들게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제주도를 오가며 살아볼까? 그뿐이었다. 그러다가 단 한 번 보고 계약한 집이다. 중간에는 집을 판다는 얘기도 잠깐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인은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했다. 옮겨야 할 일이 발생하더라도 흐름에 따르면 된다. 흔들리기보다 서핑하듯이 그 흐름을 타고 즐긴다. 이처럼 권혜진 씨는 가슴의 믿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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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책이 판매되는 중앙라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아간 민들레 홀씨는 자리를 고르며 내려앉지 않는다. 그 어떤 곳에 내려앉아도 그곳에서 저절로 피어난다. 그래서 더 곱다. 이의 데칼코마니와 같은 일들이 이곳에서도 일어난다. 

북카페를 시작하고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들판의 꽃들과 비슷했다. 권혜진 씨는 손님이 오면 안내하고 주문만 받을 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손님들 스스로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손님은 착석하면서 자기만의 굴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사람들의 내면엔 갈망하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향성이란 신호가 있다. 

들판의 꽃이 아름다운 건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손님들도 이곳에서는 한 송이 들꽃이 된다. 자유롭게 산다고 하지만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자유를 경험한 이들은 자신의 만족도를 소문에 실어 날려 보낸다. 그 소문은 민들레 홀씨가 되어 어딘가로 날아간다. 처음에 왔던 손님이 다른 사람을 데려오고, 다시 그 사람들이 누군가를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손님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어갔다. 

손님이 붐빌 땐 자리가 모자라서 아쉽기도 하다. 매출에 영향을 미쳐서가 아니다. 오신 손님들께 불편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그 불편 속에서도 손님들은 저들 스스로 방법을 찾아간다. 자리가 없으면 먼저 와 앉은 손님이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 역시 권혜진 씨는 개입하지 않는다. 오직 손님들이 스스로 해결해 간다. 손님들끼리 ‘여기 앉아도 될까요?’ 하는 식으로 양해를 구하며 같이 앉기도 한다. 

“감정을 리셋하다”
북카페에 책방카페를 셀렉하며 책을 판매한 지는 이제 3년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북카페가 메인이다. 북카페든 책방카페든 권혜진 씨는 늘 손님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 손님 중에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프게 하는 이도 있다. 그래도 긍정적인 손님이 훨씬 많다. 

여태 모르고 지냈던 감정을 느꼈다면서 펑펑 울고 가는 손님이 종종 있다. 평소에 잊고 지내던 감정들, 이곳에 있는 책과 음악, 향, 공간, 문화가 두루 섞이면서 손님들은 심원의 고향, 즉 마음 중심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내 눈물샘이 터진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의 공간에 앉아 있는 책방지기를 부여잡고 “흑, 아~” 하고 숨넘어갈 듯 흐느끼는 것이다. 목구멍에서 뱉어내지 못한 소리가 가슴을 클릭하면서 흐느낌은 더 커진다. 그 어떤 가슴의 울림이 확 찾아들며 느끼는 자유로움이랄까? 물론 소수지만 이들은 감정을 리셋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민들레 홀씨가 되어 어딘가로 날아갈 것이다. 어쨌든 권혜진 씨가 소원했던, 가슴으로 바랐던 공간도 내면의 중심을 건드리며 원래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권혜진 씨는 한 잔의 차와 함께 느낌에 따라서 손님의 감성을 건드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지기는 손님이 오면 처음만 안내해 주고 주문받은 다음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자리매김한 쉼터의 공간”
우리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을 때 대부분 합리화하고 변명하려고 한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할지라도 타인의 말은 히어링(hearing)할 뿐 리스닝(listening)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에선 애써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소리가 있고 들리는 소리가 있다. 입이나 표정, 손짓이 아니어도, 책이나 음악, 향, 공간 모두가 말을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 침묵을 리스닝해주는 존재다. 

바라나시책골목을 북카페니 책방카페니 하지만 이곳은 책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마련된 자리도 명상 구조다. 이곳에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펼치거나 받아 안으면 이미 명상은 시작된다. 동북아시아의 한국 땅 제주도에서 남부 아시아에 있는 인도를 불러들이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쉼터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바라나시책골목엔 손님들이 남긴 일종의 방명록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 이야기엔 책을 읽으러 왔지만, 가만히 앉아서 느낌을 받았다는 메시지가 더 많다. ‘지금까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 이제 비로소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났다.’라는 등 상당수 교집합이 이런 내용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이곳에서 온전히 자기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는 얼굴도 성격도 직업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마음의 성향은 똑같다. 고민도, 행복을 어디서 느끼는지도,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지에 대한 의문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 구조가 비슷하기에 다양성 아래 공존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행여라도 손님의 자유를 방해할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속삭이듯 사분사분 말하는 책방지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손님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삶의 문제는 소리가 많은 데 있다. 마음의 소리는 침묵할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선 침묵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듣는다. 그러므로 말을 줄이고 더 많은 걸 이곳에서 얻어갈 수 있기를 권혜진 씨는 바란다. 진정한 휴식은 침묵이다. 더불어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의 상당수 교집합은 ‘지금까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잊고 살았다, 이제 비로소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났다.’라는 내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바라나시책골목은”
지금까지 뭘 좋아하는지 잊은 채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아직도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바라나시책골목을 찾아가 보세요. 책과 음악, 천연 아로마 향이 흐르는 인도의 분위기와 함께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온전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진정한 휴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 동한두기길 35-2
인스타: varanasi_jeju
블로그: blog.naver.com/bonobo2
영업시간: 월~금 11:00 ~ 19:00(토, 일 휴무)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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