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9) 아트페어 약진 주목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2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열정은 계속 타오른다. 4.3미술제처럼 연례행사로 열리는 전시들도 무사히 치렀고, 산지천 갤러리와 예술공간 이아처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전시장도 무난히 운영되었다. 예술곶 산양의 레지던시가 자리를 잡는 와중에 현대카드가 포기한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가 추가로 제주문화예술재단 관리 체계로 들어와 첫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향후 어떤 길을 갈지 궁금케 한다. 올해 ‘프로젝트 제주’의 초점을 제주 작가에 두었던 제주도립미술관이 내년에는 제주비엔날레를 재추진한다고 한다. 과거 불거진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고 산뜻하게 재출발하길 기원한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11월 말에 열린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의 오픈 스튜디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민간이 운영하는 공간에서도 성실과 노력을 담은 작업들이 펼쳐졌다. 아트스페이스 씨가 주최한 오카베 마사오의 ‘기억의 활주로’전 등 여러 곳에서 해외작가부터 지역작가까지 다양한 작업이 관객을 맞았다. 다 거론할 수는 없으나 한라산 동서남북에 위치한 여러 마을에 소재한 전시장들도 제주문화계의 토대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올해 미술계의 주목할 변화 중 하나는 아트페어의 약진이다. 그동안 제주아트페어, 제주국제아트페어 등 미술장터를 표방한 행사들이 수년간 열렸다가 지속되지 못했다. 미술시장이 과연 제주에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로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조용히 중단되었다. 그런 가운데 홀로 버티던 ‘아트제주’가 올해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미술품 구매 열풍이 제주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가능한 결과였으리라 추측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주도는 조례를 만들어 아트페어를 후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이에 부응하듯 올해 새로운 아트페어가 등장했다. ‘제주아트디자인페스타’가 고급 리조트에서 개최되었고 ‘샛보름미술시장’이 200만원대 이하의 작은 미술품을 판매하며 좋은 성과를 냈다고 전해진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2021 아트제주.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올해 열린 아트페어도 과거에 중단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예술경영지원센터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주도 등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었고 순전히 상거래만으로 아트페어를 운영할 정도의 자립도를 갖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고무적인 구매력 상승에 힘입어 내년에도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이주민 유입과 더불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인구가 늘어난 이후 누구라고 특별히 지적할 수도 없고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으나 예술가의 창작열과 전시 기회는 어느 때보다 커지는 것 같다. 이런 변화가 도민의 인식과 취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문화 투자의 결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한 30년 후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현의 말씀대로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2021년을 보내며 올 한해 벌어진 미술계의 여러 일 중에서 주목해야 하고 기록해 둘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이재수의 소환이다. 제주의 예술가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아픈 역사를 탐구하고 앞서서 그 가치를 언급해왔다. 4.3을 먼저 이슈화한 이들도 예술가였고 그 긴 여정이 어떻게 제주의 현재를 바꾸었는지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예술가들이 이재수의 저항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1901년 일어난 신축항쟁을 재평가하고 희생자와 이재수의 활동을 기리는 행사가 올 한해 문학부터 미술까지 이어졌다. 관덕정에서 ‘장두추모굿’이 열렸고 문학계에서는 신축항쟁120주년기념사업회에서 문학작품집 ‘장두’를 발간했고, 탐라미술인협회에서는 4.3평화기념관에서 <청년 이재수> 전을 개최하여 자그마한 체구에 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는 역사적 인물이 스러져간 과거를 기억하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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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재수 전시.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보다 먼저 몇 년 전부터 이재수와 그의 누이 이순옥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업해온 이지유 작가도 주목해야 한다. 이지유는 2019년 ‘새의 눈, 벌레의 눈’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에서 그동안 우리가 영화를 통해 상상하던 이재수와 달리 반듯한 얼굴에 안경을 끼고 어깨에 날개를 단 모습을 선보였다. 제주에 유배 왔던 김윤식의 ‘속음청사’에 묘사된 이재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렸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가 염색한 갈천 위에 목탄으로 갑사전복에 안경을 끼고 말채찍을 든 그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동안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품있는 이재수의 상이었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이재수 실기' 첫 페이지.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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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눈, 벌레의 눈-이재수 실기' 전시 장면.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이지유는 올해 개인전 ‘새의 눈, 벌레의 눈-이재수 실기’를 열어 다시 이재수와 그의 여동생 이순옥을 추모했다. 특히 이순옥이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일본에서 발간한 ‘야월의 한라산-이재수 실기’(1932)를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추가했다. 이순옥이 재일 유학자 조무빈의 도움으로 발간한 이 책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주목받고 있다. 2017~18년경 이재수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는 작가는 올해 전시를 열며 그 안의 내용을 해석해냈고 곧 자신의 그림과 번역된 글을 함께 담은 편역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역사책에 담기지 못한 한 많은 이야기가 예술가의 시선으로 부활되고 이미지와 텍스트로 재구성되어 미래로 전해질 것이다.

# 양은희

양은희는 제주출생으로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큐레이터 및 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현대미술과 미술제도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 번역서를 발표했다. 저서로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2017, 공저) ▲디아스포라 지형학(2016, 공저) ▲뉴욕, 아트 앤 더 시티(2007, 2010) 등이 있다. ▲개념 미술(2007) ▲아방가르드(1997) ▲기호학과 시각예술(1995, 공역)을 번역했다. 현재 스페이스 D의 디렉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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