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24)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중간착취의 지옥도’, 글항아리, 2021.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중간착취의 지옥도’, 글항아리, 2021. 사진=예스24.

1.

새해 첫 주 한 노동자(故 김다운)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전력의 하청노동으로 고용된 젊은 노동자가 2만 2천 볼트 고압 전선에 감전돼 비운의 죽음을 맞은 것이다. 작년 11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새해 들어 비로소 사회적 주목을 받으면서 또 다시 비정규직 하청노동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들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그에 따른 진단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여론이 이번 사건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사고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의 사고를 비롯한 전국의 각종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의 비극은 ‘죽음의 외주화’란 용어가 가리키듯,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자연스레 팽배해진 작금의 노동 현실 안팎의 구조적 문제로부터 피해갈 수 없는 위험 그 자체다.

문제는, 이토록 하청노동의 위험이 한계를 넘어 노동자의 극단적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죽음의 원인을 에워싼 노동의 현실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결여된 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피상적 차원의 제도적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말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 하청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이 자연스레 구조화된 노동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수용하면서 노동자로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에 대한 정당한 대가(임금을 비롯한 복지 및 처우)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착취된 노동의 부당한 대가를 굴욕적으로 감내하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데 대한 무기력증을 심각히 앓고 있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하청노동의 적나라한 현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예의 사안에 대해 아주 상세히 정리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궁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현장 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중간착취의 문제를 한국일보에서 2021년 1월에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그 당시 신문지면에서 미처 포괄하지 못한 것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을 인터뷰한 기사를 바탕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이 한국 사회의 하청노동의 현실을 전경화(前景化)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백하건대, 이 책의 낱장을 넘기면서 하청노동의 현실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머물렀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움츠러들었다. 

우선, 이 책을 관통하는 하청노동의 문제점을 응시해야 한다.

사용주(원청)-고용주(용역업체)-노동자로 구성되는 이 ‘삼각 고용’ 구조는 노동자를 ‘동네북’으로 만든다.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순간 원청의 불법 행위, 용역업체의 방관은 표백되고, 이 간편한 책임 전가는 반복된다.
(59쪽)

쉽게 말해 용역업체는 원청에게 도급계약서대로 업무를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고, 노동자에겐 근로계약서대로 임금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원청과 맺은 도급계약과 노동자와 맺은 근로계약은 완전히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서로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 용역업체는 두 계약 사이의 빈틈을 노렸고, 결국 중간착취는 합법적인 지위를 얻고 있었다.
(28-29쪽)

‘삼각 고용’ 구조의 핵심은 사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고용주, 즉 용역업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서를 맺고 일을 하며, 용역업체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이 용역업체가 바로 하청업체다. 하청업체는 원청과 도급계약서를 맺는데, 도급계약서에는 각종 비용이 정해져 있고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이 채택돼 있다. 그런데 하청업체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정작 지급해야 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대신, 각종 명목으로 (현행 도급계약과 근로계약 제도에서는 불법이 아니라고 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떼간다. 이러한 사례는 이 책에서 100명의 하청 노동자들의 개별 사례에서 모두 그 실체가 드러나듯, 그 중 몇 사례만을 살펴봐도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를 명백히 착취한 것이다.

가령,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용균씨가 원청으로부터 받아야 할 “직접노무비는 522만 원이었지만 311만 원을 하청이 착복했다.” 그리하여 “용균씨의 월급은 211만 원이었다.”(80쪽) 아파트 경비원 구자혁씨는 월급 169만 원을 받고 있는데, 얼마큼이나 하청업체로부터 떼이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간에서 얼마나 떼어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용하면 나라에서 지원금을 주는데, 그것도 가져가는 일이 숱하다. 파견업체에서는 가끔 관리자랍시고 찾아와서 단추를 제대로 안 잠갔다고 큰소리 내며 면박을 주는 게 전부다.”(84쪽) 건물 청소원 신예진씨는 월급 173만 원을 받는데 그도 하청업체로부터 떼이는 돈의 액수를 알지 못한다. 그의 “한국거래소를 청소한다.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는지 적게 받는지 따져볼 생각조차 안해봤다. 하청업체가 바뀌면서 유급․보건 휴가, 상여금이 모두 없어졌다. 한국거래소와 새로운 하청업체가 최저임금 기준으로 계약을 맺어서라고 한다.”(89쪽)의 증언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하청업체가 사용자와 노동자의 중간자로서 ‘간접고용’이란 합법적 테두리(이른바 ‘파견법’) 안에서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를 중간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청은 애써 이 문제를 외면하면서 간접고용에 따른 중간착취는 용역업체와 노동자 사이에 생긴 을(乙)과 을(乙)이 풀어야 할 갈등 사안으로 떠넘기고 있다.

3.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둔감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삼각 고용’ 구조의 노동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노동의 문제가 진부하고 낡은 사회적 쟁점이 아니라 급변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 아래 한층 새로운 외피를 쓴 노동 현실의 구조악(構造惡)과 행태악(行態惡)의 쟁점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보자. 중간착취는 간접고용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간접고용하는 걸까. 이에 대해 재계는 노동 유연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동 유연화의 사전적 의미는 경기 변동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손쉬운 해고’로 통용된다.”(168쪽) 그렇다. 재계와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글로벌 경제의 이해관계 속에서 ‘노동의 유연화’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구조화시켰고, 이 구조화 속에서 간접고용의 형식과 ‘삼각 고용’ 구조가 우리의 노동의 현실에 뿌리내리는 것을 독려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인 ‘죽음의 외주화’로 내몰린 하청 노동자들은 위험과 불안전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급기야 죽음의 지옥으로 스러져버린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의 집필진들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간접고용의 실태와 중간착취를 낳는 구조악과 행태악을 추적 및 보도하면서 ‘중간착취 금지를 위한 입법 제안’ 질의서를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하였고, 이에 대한 입법 활동을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체적 반응은 구체적 계획이나 적극적 의지가 결여된 형식의 답변 중 하나인 ‘검토하겠다’와 같은 의례적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만큼 관련 법 개정뿐만 아니라 용역․하청업 관련 파견법을 개정하는 것도 기존 경제적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지 않음을 보여준 셈이다.

4.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노동문학이 한국문학의 뜨거운 논의 대상이었던 적을 돌이켜보곤 하였다. 노동문학이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논의되고 그 문학적 실천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적이 있었다.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이 한국 민주주의의 당당한 사회적 과제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노동 현실의 구조적 억압과 모순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문학적 실천을 펼친 적이 있었다. 노동자와 함께 노동의 열악한 현실에 작가들이 하방(下放)하여, 비록 지식인의 시선이란 한계가 있지만, 노동 현실의 구조악과 행태악에 저항함으로써 노동해방의 전망을 모색하는 일이 한국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뿌리내리는 문학의 숭고성을 벼린 적이 있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는 어쩌면 지금, 이곳의 한국문학이 쉽게 망각하거나 일부러 둔감하거나 자칫 소홀히 여긴, 그래서 지난 시대의 한국문학사의 한 영역으로 기념화 및 박물지화될 운명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문제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쟁점(간접고용 및 ‘삼각 고용’에 따른 하청노동의 현실)을 래디컬하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21세기 문학의 반면교사 몫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끝으로, 자꾸 눈이 가고 중얼거리며 되새김질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중간착취 문제가 바로 잡히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자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단어를 자꾸 말하는 것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 한 언어가 발화되는 순간, 실재하되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선명히 그 모습을 드러내곤하니까.
(275쪽)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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