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25) 필립 K. 딕, 박중서 역,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폴라북스, 2013.

필립 K. 딕, 박중서 역,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폴라북스, 2013. 출처=yes24
필립 K. 딕, 박중서 역,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폴라북스, 2013. 출처=yes24

필립 K. 딕(Philip K. Dick)은 헐리우드가 사랑한 SF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같은 영화를 한 편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15편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딕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거나 아이디어를 차용한 영화까지 친다면 이 목록은 더욱 길어진다고 한다. 20세기와 21세기의 SF 문화에 드리운 딕의 그림자는 길고도 강렬하다.

필립 K. 딕의 작품 가운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는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원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블레이드 러너> 또한 SF 영화사의 고전이다. <E.T.>에 밀려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SF 영화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이른바 ‘저주 받은 걸작’으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를 다 보지 않았어도, 적어도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의 이미지를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하다. 후대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만화와 같은 SF 문화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메아리는 길게 울려 퍼져 나갔다.

영화 못지 않게 딕의 원작 소설도 SF의 고전으로 군림하고 있다. 작가는 <블레이드 러너>의 개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과 함께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아니, 필립 K. 딕의 소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예언적 비전에 감탄하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든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공지능과 로봇. 이제, 우리의 삶이 곧 SF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역시 인공지능의 시대, 포스트휴먼의 시대에 그 서사적 가치가 더 빛난다. 구글의 스마트폰 운영 시스템의 이름은 ‘안드로이드’이고, 구글 스마트폰 가운데 ‘넥서스’가 있다. 둘 다 기존에 있던 명사이지만, 이 명칭이 이 소설에 빚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SF가 우리의 삶에 영감을 주고, SF와 다를 바 없는 기술 포화 사회에서는 다시금 SF의 사변적 상상력과 성찰을 시급하게 요청한다.

소설의 스토리 세계는 최종 세계대전 이후로 방사능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샌프란시스코다. 핵무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냉전 시기 과학소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상상력이다.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은 방사능 낙진처럼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열강들의 핵전쟁 없이도 지구와 인간, 그리고 모든 종의 종말이 거의 예정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약간의 시차(時差이자 視差)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뉴클리어 포스트아포칼립스(nuclear post-apocalypse)의 불안한 상상은 재앙의 원인은 다르다 해도, 기후 재앙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공명하는 바가 많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는 방사능 낙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생명체가 멸종을 했다. 지구는 생물학적인 재앙의 세계로 그려진다. 그 결과, 살아 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인간의 인간됨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과시 행위가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종류든 동물을 키우고 있다. 게다가 전기 동물, 즉 로봇 동물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있는 동물, 가능하다면 더 큰 대형 동물을 키우는 것은 부와 교양의 상징이 된, 낯설고도 슬픈 세계다.

소설의 동물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스토리세계 설정은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은 점이다. 소설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주인공 릭 데카드는 전기 양을 키우고 있다. 진짜 양을 키우고 있었지만 죽은 뒤에 로봇 양을 키우게 되었고, 이웃집 망아지를 부러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가 늘 뒤적거리는 《시드니 동물 및 조류 카탈로그》에는 어떤 동물이 얼마의 가격인지 적혀 있고, 또 많은 동물들이 이미 멸종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릭이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식민 행성에서 탈주한 넥서스-6 안드로이드를 쫓아 퇴역시키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카탈로그에 나오는 가짜 동물과 진짜 동물이, 그리고 소형 동물과 대형 동물의 가격 차이가 큰 것처럼,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특별한 감정이입 검사(보이트 캠프 테스트)나 사후 실험(골수 분석)만으로 구분될 뿐, 겉모습만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동물과 전기 동물처럼, 생명과 사물로 구분된다.

동물들의 가격이 저마다 다르고,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아닌 사물로 취급되는 것처럼, 인간들 사이에도 분명한 등급이 존재했다. 방사능 오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식민 행성으로 이주했고, 남은 사람들은 오염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식민 행성 이민자와 지구 거주자는 이미 등급이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방사능 피해는 사람들을 ‘정상인’과 ‘특수인’으로 구분하게 한다. 특수인은 ‘닭대가리’라고 불린다. 발전된 안드로이드 기술은 특수인보다 오히려 높은 지능의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기술의 ‘진보’와 인간의 ‘퇴화’는 동시에 진행되어 인간과 로봇 간의 우열을 교란하게 되었다.

릭 데카드 다음으로 중요한 등장인물인 J. R. 이지도어는 특수인이다. 그는 정상인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지만, 선량한 인물이다. 탈주한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은 현상금 사냥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지도어를 이용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지도어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돌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지도어가 발견한 거미를 애지중지하는 것과 달리 안드로이드들은 호기심 때문에 거미의 다리를 잘라내고 불을 갖다 대고 결국 물에 빠뜨려 죽인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간의 지능의 위계가 역전되지만,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안드로이드와 대조 역시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표현된다.

나치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하면서 인간의 비인간성(잔혹성)에서 지능과 감정이입은 별개의 문제임을 작가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발전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덕분에 인간보다 더 뛰어난 정서 인지와 공감 능력을 갖춘 인공 존재의 출현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서 능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고 인공지능과 비교할 때 인간이 갖춘 우월한 능력으로 간주하는 일은 당장은 위안이 되겠지만, 오래 주장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사실, 소설에서 기분을 조절해주는 ‘펜필드 인공 두뇌 자극’ 장치 기술이 있을 정도라면 안드로이드의 감정이입 능력을 포함한 감정 관련 능력 역시 인간을 압도할 수 있어야 적절한 설정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 전체를 두고 보면, 감정이입이 가능한 인간과 불가능한 안드로이드로 구분해서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로봇보다 더 잔혹한 현상금 사냥꾼이 있는가 하면, 인간과 동물을 살해하는 안드로이드가 있고, 다른 안드로이드보다 더 상냥한 안드로이드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에 대해 회의하도록 한다.

소설에서 진짜 동물로 오인한 전기 두꺼비를 릭과 그의 아내 아이랜이 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추적해 살해하는 일을 하는 릭 데카드는 안드로이드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자 회의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일을 그만두려고 하다가 결국 마지막엔 “전기 제품도 제 나름의 생명을 갖고 있으니까.”(361쪽)라고 말하는 데 이른다. 이처럼 오늘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 사물에 대한 구분과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는 새로운 세계관과 철학을 요청한다. 인간과 로봇, 동물과 사물의 위계가 지워진 시대에 서로가 존중하며 함께 공존하고 공생할 삶의 방식은 앞으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발명품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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