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예순 아홉 번째

독서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독서가이자 소설가이자 시인이면서 도서관에서 일을 했고, 노년에 눈이 멀었지만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끝까지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낙원이 있다면 아마 도서관 형태일 것이라고 말하곤 했고, 세계를 단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세상 이치를 다섯 글자(E=MC2)로 표시했다. 얼마나 멋있는가! 세계를 단 한 권의 책과 다섯 글자로 담아낼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요즘은 정보의 보고가 도서관이다. 각종세미나 행사가 도서관에서 열린다. 책의 ‘눌’이다. 

그러면 ‘눌’의 어원은 무엇인가?. 눌은 눋다(15세기~현재)가 원형으로 제주의 방언이다. ‘눋다’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와 결합할 때 ‘눌-’로,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와 결합할 때는 ‘눋-’으로 나타나는 ㄷ 불규칙 용언으로, 말이고 보리 눌, 쇠 촐 눌 등 원기둥으로 쌓는 것으로 제주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보리 눌의 보리 한 뭇의 ‘뭇’은 짚, 장작, 곡식 채소 따위의 작은 묶음을 세는 단위다.

‘땔감은 아예 말똥, 소똥을 말려 쓰고, 몇 뭇 안 남은 조짚은 마소를 먹였다.’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요즘은 중산간 마을 집의 우영팟에서 흔히보였던 보리 ‘눌’이나 ‘촐 눌’을 보기 힘들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농업사회에서 정보화의 세상으로 변한 대표적인 것이 시골이 보리눌(보리 뭇을 쌓아논곳), 촐 눌 대신 시내도서관이 ‘책 눌(책을 쌓아논 곳)’로 탈바꿈했다.

사진=픽사베이.
제주지역 공공도서관이 21개로 전국에서 도서관 수가 제일 많다는 것을 주장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할 지가 중요하다. 사진=픽사베이.

나는 시간나면 도서관 ‘책 눌’에 들른다. 요즘은 도서관이 연구실이나 마찬가지로 지내고 있다. 전주시립도서관 12곳은 아침 8시에 문 열고 저녁 10시에 문을 닫고 공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운영한다. 휴무일은 정월 명절날 추석 이틀이다. 물론 1인이 근무하는 작은 도서관 40개의 경우는 아침 9시에 문 열고 저녁 6시에 문 닫는다.

제주지역 공공도서관은 9시에 문 열고 저녁 8시에 문을 닫고 공무원식으로 일요일 날 문 열었다고 월요일은 쉬는 경우도 있다. 이번 구정에 전주시립도서관은 1월 31일에서 2월 2일까지 3일간 휴무였고, 2월 1일 하루만 쉬었다. 제주에 내려와 한라산 기(氣)를 받으며 책을 쓰고 가겠다고 도서관을 찾은 사람과 제주 바람에 머리 식히면서 정년 후에 제2의 인생 설계 구상과 논문 마무리 차 제주에 온 친구의 말이다. ‘정신 줄을 잡을려고’ 제주에 왔는데, 도서관이 늦게 열고 일찍 닫는 바람에 ‘정신 줄이 풀려서’ 올라간다고 하소연 한다. 

제주도교육감이나 제주시장이나 서귀포시장, 그리고 도의원들이 제주지역 공공도서관 실태를 한 번이나 확인했는가 묻고 싶다. 교육감은 무엇을 잘했는지 3선 더 재임 하겠다 발버둥이다. 기름 붓는 격으로 교육의원을 15년이나 해먹었으면 말지, 뭘 더하겠다고? 교육의원 폐지를 ‘하겠다, 막아달라고’ 아우성이다. 한심한 일이다.

제주지역 공동도서관은 제주시청 소관에 제주시 우당, 오등동 한라, 노형탐라, 조천, 한경, 애월, 제주시 기적 등 일곱 곳이다. 서귀포 시청 소관에 서귀포 삼매봉, 서귀포 중앙, 효돈 동부, 중문 서부, 서귀포 기적, 성산일출, 안덕 산방산, 표선 등 여덟 곳으로 합계 15곳이다.

반면에 도교육청 소관에는 모슬포송악, 남원 제남, 서귀포, 구좌 동녘, 한림 한수풀, 제주시 제주 등 여섯 곳이다. 제주도 도서관 총계는 21곳. 그런데, 문제는 시청과 도교육청이 소관 도서관이 별개로 움직이고 있어 공동 도서 대출 등 연계 네트워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지역 공공도서관을 도청 소속으로 단일화해서 타이트하게 운영해야 한다. 학생들과 퇴근해서 온 사람들이 정년 후 제2의 취업을 위해 더 공부 할 수 있도록, 아침 8시부터 밤 10시 까지는 문을 열어 줘야한다. 아침 9시에 문 여는 도서관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도서관의 위치한 지역 특성에 따라 도서관이 불 끄고 켜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공공도서관 소속 기관의 지배 구조에 있다. 도민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교육청과 양 행정시로 이원화돼 있다. 이제 도의원도 통합하고 도서관도 단일 운영을 해야 최대한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슬포시민이 찾는 책이 제주시 도서관에 있고 모슬포 도서관에 없다면 도서관 버스를 운행하여 차에 책을 싣고 도내 도서관만을 일주하는 버스 순회 네트워크 서비스, 일명 ‘옴서(書) 감서(書)-Coming Books, Going Books’를 구축하면 어떨까?

다른 아이디어를 하나 더 제안해본다. 제주도내 중산간 버스 시스템은 종횡으로 노선버스를 운행하여 도민이나 관광객에 찬사를 받고 있고, 중산간 마을의 수도(水道)에 원격 센서를 부착하여 면이나 읍사무소에서 누수(漏水)를 잡아주는 것도 잘한 일이다. 앞으로 제주에서는,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책을 주문하면 퀵서비스로 빌려주는 시스템도 검토할만하다. 

한 달 살고 가는 교수, 일 년 제주살기로 온 사람들은 제주 풍광을 즐기면서 새로운 정보를 찾을려고 제주에 온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는다. 제주도민들도 지적 정보를 쉽게 접근해서 아무 때나 책을 찾아 볼 수 있도록 공공도서관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때다. 폐쇄적인 도서관에서 개방적인 도서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도민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 눌’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존재하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제주지역 공공도서관이 21개로 전국에서 도서관 수가 제일 많다는 것을 주장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할 지가 중요하다. 제주 공공도서관들이 ‘사람의 정신 줄을 잡아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지역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지식충전소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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