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두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제주에서는 ‘두루애’란 말이 있다. ‘조금 모자란 사람’을 흔히 ‘쌀 두루애’라고 한다. 어원을 정리하면, 두루는 ‘뭉수리’로 ①어떠한 일이나 형체가 꼭 이루어지지 못한 사물(《약》뭉수리 mass) ②변변하지 못한 사람(good-for-nothing)을 조롱하는 말이다. 둔재(鈍才)는 재주가 둔함,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하고, 쌀두루애(㐘 頭陋兒)는 頭는 지혜 두(頭); 지혜, 재능, 陋는 좁을 루(陋); 견문이 좁고 적다, 兒는 접미사(接尾辭), 아이 아(애)를 뜻한다. 우둔(愚鈍)→㐘 鈍愚兒. 쌀(㐘)은 우리나라 한자(國字)로, 우리말에서의 ‘쌀’ 음(音)을 표기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쌀두루애(㐘 頭陋兒[애, 영어로는 ‘우동머리(Noodlehead)’]는 지혜와 견문이 좁은 사람이고 쌀 둔우애(㐘 鈍愚兒[애]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접두사 ‘쌀(㐘)’이 무엇인가, 쌀은 사람이 먹는 가장 중요한 식량, ‘쌀’ 두루애의 말속에 진수(眞髓)가 ‘쌀’에 숨어 있다. 사람들은 ‘두루애’만 보고 ‘쌀’은 놓치고 있다. 쌀자의 한문 글자는 ‘싸+ㄹ=쌀, 한문은 쌀미(米)+ㄹ=쌀(㐘). 제주 말의 반전(反轉)의 묘미(妙味)다. ‘쌀두루애’는 겉으로는 어중간(於中間)해 보이지만 속이 꽉 찬 사람, 보기에는 의뭉스러우나 속은 똑똑하고 세상 물정에도 밝은 사람이다. 연구 분야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평범한 사물의 이치에 몰입(沒入)하면 쌀두루애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고추 먹고 맴맴(回轉,고추가 매워서 알알하는 게 맴맴) 연구’다.

그러면, 한국인은 언제부터 고추를 먹었을까. 고추 전래 역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서 국내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전래설의 근거는 1984년에 이성우 한양대 교수가 ‘고추의 역사와 품질 평가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임란 이후 일본 전래설’을 주장한 이후 통설로 학력고사에 출제되기도 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남미의 고추가 유럽으로,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그 100년 뒤인 1592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을 통해 한반도에 전해지고 그제야 고추장이 ‘발견’되고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최근 이 통설을 뒤집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는 조선 세종 15년(1433년) 발간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세조 6년(1460년)의 『식료찬요(食療纂要)』에 초장(椒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초장이 바로 고추장이라고 한다. 김치에 매운 빨간 고추 가루, 상보(相補)음식이다. 독일 유학 시절, 푸른 고추로 김치를 담가 먹은 게 어제 같다.

사진=Pixabay.

고추를 먹고 왜 통증과 뜨거움을 느끼는지와 같은 간단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노벨상으로 수상(2021년 10월)됐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에는 당연한 것인데, 쌀 두루애가 아니고는 생각 못 하는 엉뚱한 연구과제다.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공로로 데이비드 쥴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세포·분자약학과 교수와 아르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교수가 수상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상자 중 한명인 줄리어스 교수는 지난 1997년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매운맛과 열, 통증이 하나의 센서에 의해 감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가 발견한 이온 채널 단백질 ‘TRPV1’은 온도가 43도를 넘거나 캡사이신이 달라붙으면 통증과 열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몸에서 온도를 느끼는 센서 분자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제갈동욱 교수는 “두 교수의 업적은 사람의 온도를 느끼는 센서를 만들어 인간생활의 편리함과 더 낳은 삶을 영위하는데 이용되고, 또 위치 감각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상을 변화시키고 촉진시키는 로봇공학, 가상공학, 컴퓨터공학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추가 가져다주는 매운맛·열감과 같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한 연구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점이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19 mRNA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 연구를 제치고 노벨상을 받은 것이 놀라운 사실이다.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한라산 화산 폭발 높이를 생각했다

바람이 없는 이른 겨울 아침 전북무주구천동 산간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면서 필자는 한라산 화산 폭발이 떠올랐다. 하얀 연기 대신 이글거리는 현무암 액체 불기둥이다. 그렇다면 연돌효과(Stack Effect, 굴뚝효과)를 이용해 역학수학으로 한라산 높이와 폭발속도를 구할 수 있음을 예감했다. 중산간에 위치한 고향 서광서리 남송악 높이가 340미터, 오설록 녹차밭 위치가 해발(海拔) 170미터, 즉 오설록 땅속에 170미터 오름이 있다는 가정이다. 사회학 용어인 중산간이란 말은 지질학이나 물리학에서 중성대와 같은 뜻이다. 제주는 등고선(等高線)따라 오름이 분포 된 화산섬이니 한라산 높이는 대기압을 중력과 현무암의 밀도의 곱으로 나누면 되고, 화산폭발속도는 화산 폭발 불기둥최고점을 기준으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됨에 착안하여 풀었다. 엉뚱한 ‘두루애’ 생각의 결과다.

이번 대선은 ‘최악의 비호감(非好感)’ ‘두루애’ 간 싸움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보면 경상도 지방 사투리 ‘막설(莫說)’에 대한 말이 나온다. 막(莫)은 없음, 불가의 막. 설(說)은 의견, 견해의 설. 이런 뜻에서 합성어로 풀이됐다. ‘말을 그만둠. 혹은 하던 일을 그만둠’이란 의미로 쓰였다. 제주에서는 꼭 같은 말이 ‘설러부러’다. 설러불다(說風)는 ‘설(說)’과 바람(風)이 ‘불다’의 합성어로 본다. 이유인 즉, 바람 많은 제주 지방의 언어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게 경상도 지방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 말이나 하던 일이 바람처럼 날라 간다는 뜻. 즉 ‘말을 그만둠’, ‘하던 일을 그만둠’이다. ‘설러불다’는 고려중세의 언어가 제주에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너 그 애랑 헤어졌냐?’는 ‘너 가이영 설러부런?’ 또는 ‘너 가이영 설른 거가?’로 말한다. 제주 사람의 말(語)과 바람(風)과의 관계를 더 볼 수 있는 것이 ‘비바리’다. 비바리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被髮(피발), 머리를 풀어헤침]에서 ‘피발이’가 ‘비바리’(처녀)가 됐다. 

오는 대선은 모두가 ‘여망(輿望, Popularity)진 쌀 두루애’ 경쟁이자, 서로가 몰명(沒盲, Stupid)진 두루애니 ‘설러부러’라 한다. 사람들은 ‘고추 먹고 맴맴(回轉,고추가 매워서 맴맴)’, ‘달래먹고 맴맴’한다. 3월 9일은 진위가 가려진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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