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 주장]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벌어지는 일... 우리는 요구한다

윤석열과 안철수 단일화로 더 예측할 수 없어졌다는 이번 대선의 키를 2030 여성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진영과 지역정서에 따른 확실한 표심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는 않으면서도 투표율은 높은 층이 바로 2030 여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언론은 이를 두고 '선거의 변방에서 중심이 된 여성 표심'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선거의 중심이 된 2022년을 기념하며 30대 여성의 표심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30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 밥 그릇이 비어 있었던 걸 나는 몰랐다 

크림이를 돌보느라 바빴던 그와 크림이를 예뻐하기만 하면 됐던 나의 겨울. ⓒ 김슬기
크림이를 돌보느라 바빴던 그와 크림이를 예뻐하기만 하면 됐던 나의 겨울. ⓒ 김슬기

30대 여성의 표심을 이야기하자면 코로나19가 찾아온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약 없는 등교 연기로 사실상 반 년간 집에 혼자 고립되어 있는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자 우리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평생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게 소원이었던 남편은 고양이를 돌보는 모든 책임과 역할을 본인이 도맡겠다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크림이(반려묘 이름)'에게 필요한 모든 노동을 수행한 후 출근을 했는데,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늦잠을 자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그가 그만,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주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가 출근한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최소 14시간 30분간 크림이의 밥 그릇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반나절 넘게 쫄쫄 굶은 크림이의 밥을 챙겨주었는데,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사태에 기가 막혀 한참이나 어안이 벙벙했다. 집을 나가 크림이의 밥그릇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그와 달리 나는 집에 있었으므로. 그 텅 빈 밥그릇 앞을 수십, 아니 수백 번은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어. 나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었는데, 밥그릇이 이렇게 텅 비어 있다는 걸 어떻게 못 볼 수가 있지? 이 앞을 얼마나 많이 왔다갔다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밥그릇이 어디 안쪽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실 한복판에 나와 있는 밥그릇 속의 상태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유에 소름이 끼쳤다.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내 몫'이 아니라 여겼을 때, 내 눈에는 정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했다.

나는 그 완벽한 '삭제'를 경험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밤새 30분 이상을 자지 않고 깨서 울어대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의 실마리 - 남편이 그 커다란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 그가 한결같이 코를 골며 잠을 잘 수 있었던 이유를 찾은 것이다.

'그에게는 정말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이토록 철저한 '삭제'가 가능한 것이었구나.' 

고양이를 키우며 우리는 돌봄이 한 사람만의 책임일 때 생기는 일들을 더 명확하게 자각했다. 나는 그가 잠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안고 밤을 새운 뒤에도 출근 시간에 맞춰 그를 깨워줘야 했지만, 크림이가 온 뒤 그는 새벽마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고양이 화장실을 치웠다. 잠시도 쉬지 않고 집안을 누비며 노동했다. 그는 일찍 일어나 재빠르게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이 없는 환경에서 그에 맞게, 그 자리가 보여주는 것만을 보고 들으며 존재한 것이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동과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었음에도, 그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 내 일상이 그저 안온하기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몸으로 겪었던 차별 

동물을 굶기고자 하는 악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텅 빈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일의 책임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삭제하고 살아간다. 이 세상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너무도 많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를 키우는 게 당연히 엄마의 몫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숱하게 겪어야 하는 차별을 경험했고, 유아차를 가지고 이동을 할 때야 비로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30대 여성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암담하다. 여성에게만 결혼과 출산, 육아 계획을 묻는 면접관 앞에서의 절망은 여전하고, 일자리를 구한다 한들 여성들은 남성들이 받는 임금의 64%밖에 받지 못한다. 공교육이 모두 멈춰버린 재난 상황에서 아이들의 돌봄을 책임져야 할 여성만이 갖는 엠(M)자형 생애주기는 보다 두드러져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그만두어야 했다. 이러한 차별은 여성을 혐오하고 차별하고자 노력하는 개인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모든 곳에 존재하는 성별고정관념을 발판 삼아 거대하고도 견고한 구조로 반복된다.

절망적인 것은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구조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누군가의 눈에는 이 모든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이 특히 답답하고 갑갑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공론화하고 앞서 개선해 나가야 할 대선후보들이 '여성가족부폐지'라는 7글자 공약을 내세우고, '페미니즘 때문에 저출생이 생긴다' 말하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추라'는 글을 공유하고,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대한민국의 30대 여성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고루 일삼기 때문이다. 성차별을 부정하고 성별갈라치기만 일삼는 대선 정국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아연실색, 무릎이 절로 꺾인다.

평범한 일상 속에 퍼져 있는 차별, 직시해야  

114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계승 기자회견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114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계승 기자회견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30대 여성의 절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부숴버리기 위한 근본적이고도 대대적인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성인식이 만연할 때 결코 성폭력은 사라질 수 없으며,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의 책임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성별고정관념이 존재하는 한 성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한민국의 30대 여성인 내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은 바로 이 '거대한 구조'를 바꾸는 것, 너무도 평범한 일상 속에 공기처럼 퍼져있어 그게 차별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이며 이렇게 발언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이다. 그러니 이 대선의 키를 쥐고 있는 30대 여성인 나는 요구한다.

"그대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라! 구조적인 성차별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30대 여성의 표심을 얻고자 한다면, 이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의지를 표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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