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생각] 여든 여섯 번째 / 이문호 교수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양간지풍(襄杆之風)은 봄철에 강원도 양양군과 고성군(간성)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부는 바람이다. 제주시와 한라산(1950m)을 가운데 두고 서귀포로 넘어가는 바람은 제귀지풍(濟歸之風)이 아닐까. 제주시의 제(濟)자와 서귀포의 귀(歸)자가 붙고, 갈지(之)자와 한라산을 넘는 바람(風)을 연결했다. 

그 증표가 겨울철 한라산이 한랭한 북서계절풍을 막아 산남지방에 4월부터 하얗게 피는 감귤 꽃이다. 가을이면 제귀지풍에 노랗게 익어가는 귤, 감귤 꽃봉오리가 탁 터질 듯 맺혀있다. 제귀지풍이 한라산을 서 네 번 더 넘고 비 한 주제 더 내리면 만개할 것이다. 지금까지 제귀지풍 바람 이름이 없는 것은, 제주에서 바람은 우리의 이웃 괸당이기 때문이다. 

서귀포는 지형이 특이하다. 신서귀포의 당산인 고근산은 북서풍과 북동풍의 바람 길을 가르고 있고, 환절기에는 ‘도껭이주시(회오리바람)’, ‘후내기(눈비바람)’가 일어나고, 바다에서는 범섬을 기점으로 용오름 현상이 가끔 나타난다. 또한 신서귀포 지역은 병참·반참·고른참이라 하여 이 지역을 기점으로 동쪽은 정의현, 서쪽은 대정현의 경계가 되고, 물 때 또한 정의현은 대정현 지역보다 한물이 늦다. 즉 대정현은 음력 15일·30일 기준으로 여섯 무날이지만, 정의현에서는 일곱 무날이 된다. 서귀포 강정 출신 윤봉택 시인은 이처럼 자연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문화 환경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고 제주올레7-1길 순례에서 쓰고 있다. 서귀분지는 땅속에 빌레와 땅위에 머들을 특이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한라산 마그마 화산 폭파 시 마그마 흐름이 제귀지풍(濟歸之風)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양강지풍(襄江之風)

태백산맥(太白山脈)은 한반도의 동쪽, 중남부에 걸쳐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맥(1708m)이다. 함백산(1573m) 등의 명산과 태백은 단면상 동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동해와 가깝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영서지방 또는 영남지방으로 이어진다. 이는 한반도 지형의 기본 골격인 동고서저(東高西低) 비대칭 '경동(傾動)지형', 즉 비대칭 요곡(謠曲)운동에 의해 서서히 융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도도 성산포는 높고 모슬포는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 형태를 띤다. 강원도 양양군과 강릉시 사이의 바람은 양강지풍(襄江之風)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한반도 남쪽에 따뜻한 저기압이 형성되고 북쪽에 차가운 고기압이 형성되면 서풍이 동쪽으로 분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푄(Foehn) 현상을 일으키고 양양과 간성 사이의 골짜기 지역을 지나며 지형적 영향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제주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제주의소리
제주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사진=서귀포시
서귀포시 방향에서 바라본 한라산. 사진=서귀포시

푄(Foehn) 현상의 서귀포

푄 현상(독일어: Föhn)은 바람이 산 또는 산맥의 오름과 내림 방향으로 불 때, 바람이 산등성을 타고 올라갔다가(풍상 측) 산을 넘어 산내림 방향으로 타고 내려오면서(풍하 측)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에 의해 풍하 측 지역에 기온이 오르는 현상이 푄 바람이다.

푄 현상에 의해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부는 이유는 공기가 산을 따라 하강하면서 단열 압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면 가까이의 공기는 일반적으로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 공기가 수평으로 부는 바람을 따라 이동하다가 산을 만나서 산의 오르막을 따라 상승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류권에서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상승하는 공기는 그 주변 영향으로 온도가 하강하게 되면서 단열팽창을 하게 되고 공기가 머금은 수증기들이 응결하여 구름을 형성하고 강수를 내리게 된다. 수증기를 탈락시킨 공기는 산 정상을 지나 후면의 산 내리막을 따라 불면서 공기가 하강하게 되면 이번에는 단열압축(斷熱壓縮, Adiabatic Compression, 압축 후의 온도 증가) 되면서, 이미 수증기를 잃은 공기는 건조단열감률을 따라 온도가 상승하면서 불어 내리기 때문이다. 

서귀포에서 한라산정상 남벽 돈내코는 유체역학의 단열압축 곡선처럼 급격한 수직절벽(Cliff)이 가로막는데 그 모습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돈내코에서 한라산 등반은 직선으로 정상을 올라가지 못하고 영실과 윗세오름 코스로 우회한다. 제귀지풍(濟歸之風)의 원인은 한라산 돈내코 남벽 정상의 지형 지세다. 남벽(南壁, 해발 1590m)은 정상에서 암벽 하단까지 고도가 무려 약 300m, 옆면은 260m(면적 7만8000㎡) 주상절리가 발달해있고 식생(植生)이 전혀 없다. 칼로 자른 듯한 수직암벽(80m), 그 땅 속에 모인 물은 서산 및 동산 버른네의 돈내코 계곡이다. 그 아래로 흐르는 한라산을 넘은 따뜻한 바람과 물·길(路)을 만들면서 아래로 흘러흘러, 한라산자생의 아고산(亞高山) 대식물인 눈향나무, 시로미, 털진달래 조릿대, 산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그래서 예부터 돈내코(豚川鼻)를 ‘돼지가 물을 마시는 형태의 계곡’이라 불렀고, 복(福)을 내리는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명당 묘지가 많이 들어서있다. 즉 온기(溫氣)와 한라 정기, 성수(聖水)를 서귀포에 가져다 준다. 원앙(鴛鴦)과 정방(正方)폭포다. 쉽게 이야기하면, 해발 1590m 높이에 약 7만8000㎡의 면적을 갖는 남벽 방열(放熱) 판이 추운 겨울에 서귀포를 향해 열을 발산하는 것과 같다. 성산포나 모슬포 등은 한라산 백록담 동서 수직 암벽이 없어 푄(Foehn) 현상을 일으키지 않아 바람이 사방팔방으로 날린다. 하늘빗(雨) 길은 1100~1600m 고지 Ring벨트인 돈내코남벽-윗세오름-진달레밭-삼다수 물오름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돈내코 남벽(South Wall) 스케치. 사진=이문호.

제귀지풍(濟歸之風)의 감귤

제주시에 서북풍이 1950m 한라산을 넘으며 푄 현상에 의하여 체감 기온이 평균 2-3도 올라가가 제주시보다 서귀포가 따뜻하게 별 천지처럼 느껴진다. 제주시가 겨울인데도 서귀포는 봄 꽃이 핀다. 

김오진 교장의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2018, 푸른길)’에 따르면 이러한 특징은 김정의 ‘제주풍토록’, 김상헌의 ‘남사록’, 이원진의 ‘탐라지’, 김성구의 ‘남천록’ 등에도 잘 나와 있다.

제주도내에서 한라산 사면(斜面)에 따라 기온이 다르다. 제주시는 섭씨 15.8도, 서귀포는 16.6도, 한라 남사면이 북사면보다 기온이 높다. 겨울철 월 평균 풍속은 제주시가 4.3m/s, 서귀포는 2.4m/s. 큰 바람 일수는 제주시가 4.6일, 서귀포는 0.2일, 한라산 푄현상에 의한 제귀지풍(濟歸之風)의 별천지가 서귀포이다. 감귤 나무와 벚꽃, 무병장수(長壽), 노인성(老人星), 그래서 중국 진시왕이 불로초를 찾았던 서귀포. 서시과차(徐市過此)가 그 증표다. 

잠시 예전으로 기억을 되돌려 본다. 1955년 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서귀포 효돈에 벚꽃 구경을 갔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벚꽃만 보면 서귀포 생각이 난다. 2000년대 까지는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 장소도 서귀포였고, 수학여행과 Honeymoon 여행지 1위도 서귀포였다. 제귀지풍(濟歸之風) 바람이 전국을 탄 셈이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도량이다. 아! 서귀포 돈내코 남벽(南壁) 300m! 본 글은 한라산과 오름 높이 측정, 마그마 폭파 속도 계산, 서귀 정방(正方) 어원 찾기 등에서 같이 관찰된 결과입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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