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당바름’, 연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한 여름으로 진입한 7월 첫째 주말, 제주에서는 청년들이 올린 뮤지컬·연극 공연이 열렸다. 배우 허진의 창작 뮤지컬 ‘바당바름’과 배우 문재용이 참여한 창작집단 ‘프로젝트 휴일’의 창작 연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이다. ‘바당바름’은 초연,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는 지난해 초연 이은 두 번째다.

두 작품 모두 아쉽게도 ‘완성’보다는 ‘과정’에 방점이 찍혔지만, 자신들의 열정과 고민을 무대 예술로 표현하는 진지함은 청년 예술인으로서 의미 있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바당바름' 출연진. 왼쪽부터 허진, 고은주. ⓒ제주의소리
뮤지컬 '바당바름' 출연진. 왼쪽부터 허진, 고은주. ⓒ제주의소리

# 뮤지컬 ‘바당바름’

‘바당바름’은 보다 정확히 설명하면 1인극에 뮤지컬 요소를 가미한 공연에 가깝다.

선원으로 살아온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바닷모래를 밟아온 아이는 어느새 서퍼로 성장했다. 파도의 위력에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파도는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깨달음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다. 이렇게 도전하는 서퍼에 대입한 한 개인의 성장기를 40분 남짓 비교적 짧은 공연으로 보여준다. 

무대 위는 서퍼(배우 허진)와 자연(고은주) 둘 뿐이다. 자연은 말없이 춤으로 연기를 펼치고, 서퍼는 서핑 동작과 대사·노래를 섞어가며 공연을 이끌어간다.

이 작품은 서핑을 인생에 빗대거나 파도를 탈 때 느낌을 표현하는 대사와 자연이 보여주는 춤을 비중 있게 사용한다. “서핑은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파도에 탈 수 있는지, 보내야 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준비가 돼 있는지 중요하다” 같은 식의 독백은 충분히 울림있게 다가왔다.

다만 ‘여름 서핑 뮤지컬(Summer Surf Musical)’이라고 스스로 소개한 만큼, 서핑에 대한 공감대를 과연 관객과 충분히 공유했는지 아쉬움이 들었다. 상당수 시간을 관객과 마주하며 마치 발표하듯 두 손 모아 서서 진행하는 모습은 주제(서핑)가 지닌 에너지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몸 연기는 보드 없이 맨몸으로 서핑 자세를 잠깐 취하거나, 마치 헤엄치듯 자연으로 접근하다가 밀려나는 동작을 짧게 반복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서핑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소개하면서 신체와 도구를 함께 활용하는 스포츠라는 특성에 어울리도록 보다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관객을 상대로 하는 해설 보다는 스스로 정한 역할과 설정에 집중하는 연기가 관객 입장에서 보다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래 연기에 대한 노력 또한 냉정하게 더 필요해 보였다.

허진은 이 작품을 만들기까지 지난 1년을 서핑에 푹 빠져 보냈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쉽지 않은 배우의 길을 걷는 청춘에게, 고향 제주에서 만난 서핑은 “내 인생의 큰 변화”라고 밝힐 정도로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해준 큰 선물과도 같았으리라 본다. 그렇기에 ‘바당바름’은 많은 부분 서툴렀지만 서핑에 대한 깊은 애정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자세가 향후 보다 나은 무대 예술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제주의소리
연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 출연진. 왼쪽부터 김수용, 문재용, 김영선, 임청아. ⓒ제주의소리

# 연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제주연극협회 소극장 연극 축제에서 첫 선을 보인 연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가 해를 넘겨 다시 관객 앞에 섰다. 

백석예술대학교 뮤지컬과 동기 사이인 청년 배우 3명(김수용, 문재용, 임청아)이 함께 극작·연출·연기하는 공동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공연은 일부 변화를 가미했다. 기존 출연진 3명에서 여성 배우(김영선)가 한 명 추가됐고, 연출은 김수용이 도맡았다. 

어머니가 일찌감치 집을 나간 뒤 아버지와 갈등 속에 지내는 부잣집 아들 문선민(배우 문재용), 직장 상급자의 성폭행 시도와 2차 가해에 고통 받는 임재민(임청아),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 자라면서 하나 뿐인 동생을 책임져온 알콜 중독자 김경서(김수용).

작품은 세 청년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면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정도의 희망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초연과 비교할 때 설정, 음악, 배역 등을 추가하며 보다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경서의 동생 ‘경진’ 역을 전담할 배우를 추가하고 둘 사이의 교감을 보다 세밀하게 표현했다. 선민은 헤어진 어머니와의 재회 상상을 통해 트라우마 극복을 강조했다. 가면 연기로 재민이 겪은 정신적 2차 피해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재민을 옆에서 위로하는 연인이 새로 추가됐으며, 작품 전체에 걸쳐 음악을 적극 사용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설정을 더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힘쓰지만, 아쉽게도 세밀한 부분들을 놓치면서 단단한 완성도까지는 이루지 못했다.

재민은 연인의 위로를 받고 갑옷 같은 두꺼운 겉옷을 벗어보지만 이내 힘겨워 하며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런데 다음 차례 등장에서 “이제 내가 해볼게, 고맙고 사랑해”라고 연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힘을 낸다. 관객 입장에서는 갑자기 앞뒤가 다른 진행에 당혹감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당신도 마음에 있던 것 아니냐, 회사는 그런 곳”이라며 재민을 타박하는 같은 직장 여성 선배의 대사나 역할은 전형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경서가 성인이 된 동생을 보고 어린아이로 여길 만큼 심각한 상태라면, 과연 직장을 비롯해 사회생활은 어떻게 이어갔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부잣집 도련님 설정에 대한 공감대 문제도 마찬가지.

배우들이 내적 고민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손 뻗는 동작이나, 작품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세 가지 조명 등 전반적으로 촘촘한 설정이라기보다는 즉흥적인 느낌이 강해보였다.

그렇기에 작품을 보면서 외적 연출 보다는 극본을 충실히 만드는데 집중하면 어떨까하는 인상을 받았다. 예컨대 경서와 동생 경진이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도 두 사람이 겪었던 옛 이야기로 풀어가거나, ‘너(동생)를 위해 한 몸 버려가며 살았다’는 경서를 통해 열악한 노동 현실을 꼬집으면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식이다. 

작품 전체에 걸쳐 일상 속 언어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예술적 표현을 녹여낸 무대 언어를 더한다면 대사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만큼, 극복하는 과정도 보다 설득력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수용, 문재용, 임청아. 젊은 배우 세 사람은 이번 작품부터 ‘프로젝트 휴일’이라는 공동 창작 형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더 다양한 감동, 재미를 선사해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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