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9) 하도리 – 머물고 싶은 마을이 되다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제주 하도리 별방진 성곽 위를 걷고 있는 방문객들. ⓒ제주의소리
제주 하도리 별방진 성곽 위를 걷고 있는 방문객들. ⓒ제주의소리

제주 동쪽 구좌읍에 위치한 아늑한 마을 하도리는 ‘하룻밤 머물면서 즐기고 가는 마을’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밖거리(바깥채)에서 잠을 자고, 해녀의 음식을 먹고, 해녀 체험을 하고,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를 즐기고 철새들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밖거리 민박은 해녀들의 집에서 밖거리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에서 떠오른 사업모델이다. 리모델링된 밖거리는 텃밭과 마을 안길, 주민들의 가정집 사이에 위치해 실제 하도리에 사는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인근에는 지역주민과 여행객들이 24시간 이용 가능한 코인세탁실을 구축했다. 관광객들이 빨래를 하기에도, 주민들이 숙소를 쾌적하게 편리하게 관리하기에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도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밖거리 민박. ⓒ제주의소리
하도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밖거리 민박. ⓒ제주의소리

해녀체험 프로그램은 하도리의 자랑이다. 2시간 30분 동안 실제 해녀처럼 바닷속에서 수산물을 채취하고 맛 볼 수 있다. 원담체험, 바릇잡이, 대나무 줄낚시도 가능하다. 해녀들이 직접 체험교실을 이끄는데 방문객은 날 것 그대로의 제주를 느끼고, 해녀들은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하도리 어촌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는 연간 1만5000명이 넘는다.

하도해녀합창단은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당시 홍보대사로서 큰 역할을 했다. 주민 공동체 별방고고장구, 바다 환경 영화제인 밤바다 영화제도 이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처음 마을 공동체사업을 본격화 할 때 하도리는 기존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면밀하게 분석하며 방향성을 정했다. 전국적으로 마을사업 중에서는 건물만 크게 짓거나 구체적인 내용 없이 형식에만 치중하다 유명무실해진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하도리는 외부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내실을 다지고 관계성을 탄탄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런 과정은 결과적으로 하도리가 문화, 소득, 복지 등 다양한 부분에서 모범적인 마을만들기 사례로 손꼽히는 비결이 됐다.

하도리에서는 해녀 체험 등 다양한 어촌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맨 아래 사진은 하도리 해녀들로 구성된 하도해녀합창단의 모습. ⓒ제주의소리
하도리에서는 해녀 체험 등 다양한 어촌체험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맨 아래 사진은 하도리 해녀들로 구성된 하도해녀합창단의 모습. ⓒ제주의소리

이영태 하도리장은 “하도리가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하루 머물면서 먹거리도 즐기고 체험도 하고 공연도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무작정 큰 건물을 짓는 대신 우리에게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소득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도리는 긴 해안선을 품은 마을이지만 국유지가 많아 마을 차원의 사업을 진행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 교육 시설로 만들어진 제주 새싹꿈터가 소송에 휘말리면서 방치되자 애물단지가 됐다. 마을에 높은 건물들이 없는 탓에 쉽게 눈에 띄는데,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고민이 크다. 바다와 해안도로 하나를 두고 만들어진 이 곳을 마을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다.

철새도래지 일대의 생태계 단절 문제도 큰 걱정이었다. 1989년부터 제방과 함께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해수 흐름이 단절되자 안쪽 바다는 수질오염이 가속화됐고, 하도해수욕장의 모래도 점점 줄어들었다. 다행히 하도리가 작년 도시생태축 복업 사업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한숨을 덜었다. 수문 설치 등으로 해수 흐름이 원활해지면 생물다양성의 회복되고 연안습지와 인근 해안이 제 모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영태 하도리장. ⓒ제주의소리
이영태 하도리장. ⓒ제주의소리

이처럼 주민들이 생각하는 현안들은 마을의 고유성과 자연을 잘 지키는 것과 맞닿아있다. 하도리가 슬로건으로 ‘공동체를 위해 느리지만 올곧게 가는 마을’을 택한 이유다.

난개발과 공동체 파괴가 만연해지면서 제주다움이 위협받는 세상에, 이 마을은 중요한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이영태 이장은 “우리는 하도가 제주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마을사업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후손들이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도리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1005세대에 1890명(2020년 기준)이 살고 있으며 제주에서 가장 긴 해안선(6.7km)을 보유한 마을이다. 해안선 굴곡이 심하고 수심이 얕다. 면수동, 서문동, 서동, 신동, 굴동, 동동, 창흥동 등 7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있다. 오름이나 건천이 없고 완만한 지형이 특징이다.

하도리에서는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된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볼 수 있다. 토끼섬은 하도리 해안에서 50m 떨어져 있으며 바위로 둘러싸인 섬 안쪽에 형성된 모래땅에 열대성 식물 문주란이 군란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방어유적인 별방진은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돼있다. 현재 성벽 일부가 남아있는데 관광객들에게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아기의 잉태를 빌던 삼신할망당, 원형이 살아있는 몇 안되는 불턱으로 꼽히는 서동불턱이 보존돼있다. 원담과 밭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별방진이 감싼 제주 하도리의 모습. ⓒ제주의소리
별방진이 감싼 제주 하도리의 모습. ⓒ제주의소리

하도리에는 새들의 국제공항으로 불리는 철새도래지가 있다. 바닷과와 연안습지가 발달돼 있는데 이 습지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철새들의 풍부한 먹이를 제공한다. 넓은 갈대 밭도 조성돼 있어 최적의 월동 은신처로 알려져있다. 희귀철새인 저어새, 황조롱이, 물수리 등 다양한 새들이 이 곳을 찾는데 겨울을 나는 새들의 수는 매년 3000~5000여마리로 추정된다.

당근, 월동 무, 감자 등 밭작물이 많이 나고 맥주보리도 생산된다. 천초, 소라, 성게, 우뭇가사리와 같은 해산물이 유명하다. 제주의 마지막 말테우리 고태오 할아버지가 4대째 목축업을 이어온 마을이기도 하다. 해녀박물관이 위치돼 있으며 제주에서 활동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마을공동체 사업의 중심은 2019년 설립된 하도리 새마을회 영농조합법인이다. 368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됐으며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마을을 가꾸고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체류형 관광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리사무소 행정체계와 동일하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2016년 지역주민 현장포럼을 통해 주민들이 마을의 전략과 비전, 테마 설정 수립을 본격화했으며 매달 진행되는 마을봉사활동의 날은 소통의 자리가 되고 있다. 김승선 직전 이장 당시 많은 마을사업들이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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