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75) 생애 첫 노동의 경험, 인간 중심이어야

예전 LCD 텔레비전의 부품공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편광필름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빛을 취사선택해서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 LCD의 핵심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부품이었다. 나의 담당 업무는 간단했다. 일본의 유명한 필름회사의 마크가 찍힌 대형 롤 형태의 편광필름이 공장에 도착하면 1층 라인에서 TV크기에 맞게 필름을 잘라낸다. 24인치, 32인치, 46인치. 가공된 필름을 2층 라인으로 올리면 검사원들이 한 장씩 손에 쥐고 형광등에 비추어 육안검사를 통해 불량품을 빼어내는 작업 후 원청회사인 S전자로 물량을 보내는 작업이었다. 나는 한 장당 15초~30초가 주어지는 필름 검사원으로 하루에도 몇천장씩 필름만 바라보는 작업을 담당했다. 당시를 비롯하여 지금도 식당이나 대합실에 놓여있는 S사의 TV를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지곤 한다. 

이와 같은 경험은 주변의 노동자에게도 확인된다. 지금은 정년을 앞두고 있는 한 노동자는 삼양발전소를 설치할 당시에 내부에 조경작업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며, 30~40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으며 발전소를 바라본다. 지금은 모두 복직되었지만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되어 복직투쟁을 하던 노동자는 제주에 내려와 쌍용차를 대여하고 이용하며 차량곳곳을 살피고 현장으로 돌아갈 날을 떠올린다. 작년 고깃집 아르바이트 경험에 관한 인터뷰에 응했던 한 고등학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손님들이 고기를 잘 구워줘 맛있다고 하며 다음에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했을 때 뿌듯함을 느끼며 보람되었다고 답변한다. 

노동자의 노동은 생존을 위해 임금을 받기 위한 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노동자 개인의 역사이자 인격 그 자체이다. 노동은 인격과 분리될 수 없는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과정에서 인권이 존중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순간 노동자의 인격 또한 흔들린다. 그러한 경우에는 내가 일했던 장소, 내가 만들었던 제품, 내가 제공했던 서비스를 마주하거나 떠올리는 것은 악몽이 될 수 있다.  

중·고등학교의 방학을 하기 직전인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도 학기말 특별활동시간을 이용하여 강사로 초빙되어 학생들과 함께 짧지만 노동인권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곤 한다. 고등학생이 대상이다 보니 이미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거나 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많다. 제주도교육청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교육청에서 특성화고등학교의 노동인권교육을 의무화 하고 있지만  그 기회가 많지는 않다. 

노동인권교육은 기초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간의 교육과정에서 손에 꼽는 몇 번의 노동인권교육으로는 처음 접하는 일터에서 나의 존중을 지켜내기에 부족하다. 그 영향인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70%에 가까운 학생들이 그냥 참고 일하거나 그만두는 선택을 했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초등학교에서부터 정규교과로 진행한다.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학생들은 실습을 통해 배운다. 학생들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이 중요한 것은 아직 생애 첫 직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노동자로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만, 때로는 고용주로서 사업운영을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사회교과에서 기업을 운영의 최대목표는 이윤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 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기업운영이 중요함을 함께 교육해야 한다. 기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노동자의 업무라고 배우고 일터에 가지만, 기계에 깔려 죽기 전에 위험 작업을 중단하고 생명을 지켜야 하는 것 또한 노동자의 권리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노동인권교육 확대를 통해 생애 첫 노동의 경험에 인간이 중심에 있었으면 한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임금을 버는 행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하는 행위주체는 인간이라는 점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인권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 교육감 선거 시기에 ‘노동안전과현장실습정상화를위한제주네트워크’( 2017년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3학년 재학당시 현장실습 중 사망한 故이민호 학생의 죽음을 추모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2020년 설립한 비영리단체 )에서 진행한 정책질의에 김광수 교육감은 초등학교의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검토를 포함하여 학교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을 강화시키겠다고 계획을 밝힌바 있다. 노동인권교육의 확대를 통해 생애 첫 노동이 존중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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