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은 짧지만 이야기는 남아 시가 되고”

 출처=알라딘.
 출처=알라딘.

한그루 시선의 스무 번째 시집이자 조선희 시인의 신작 ‘봄밤은 언제나 짧았네’가 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같은 담백하고 맑은 63편의 시가 수록됐다. 거창한 담론이 아닌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서로를 바라보는 눈짓 같은 것이 담겼다. 

자기 시의 표정 앞에서 수선을 떨거나 커튼을 드리우는 시가 아닌, 담백하고 맑은 시인을 닮은 시로 채워진 따뜻한 시집이다.

시집은 △1부, 지금도 라일락 △2부, 이녁이라는 말 △3부, 눈물의 이력 △4부, 아왜나무 그늘엔 등 4부로 구성됐다. 

평대리 순비기꽃

한 번에 내뱉는 소리가 있다
죽고 사는 일이 바다에 달려 있어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자맥질
오늘은 물질하기 좋은 날
어머니 숨비소리 길어지면
퍼렇게 물드는 평대리 순비기꽃

출판사 한그루는 “조선희 시인은 시집을 통해 거창한 담론이 아닌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서로를 바라보는 눈짓 같은 것을 담고자 한다”며 “그 시선은 ‘헤어진 일이 엊그제 같은’ 그리운 이에게 머물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물때만 되면 자연스레 창고 후미진 곳에 걸린 테왁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보내는 어머니에게 닿기도 하고, 4월의 아픔을 말로는 하지 못해 옹이 지고 뒤틀린 팽나무에게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이웃과 벗과 가족과 꽃과 풀들에게 건네던 안부는 자신에게로 돌아와 무수한 발자국이 가지런해진다”고 말했다. 

지금도 라일락

그날 이후로 봄밤은 언제나 짧았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자취방을 지나
온 가족이 모여 사는 당신 집을 향해 가는 길
더디게 걸었던 발걸음
헤어지기 아쉬워 되돌아가던 중간 지점
라일락향이 골목길을 서성거렸네

밤이 되면 짙어지는 이유를
우리 둘 다 어려서 알 수 없었지만
집 앞에 도착하면 입술에 묻은 꽃내음
바람이 다가와 슬며시 떼어놓으면
라일락이 괜스레 붉어지곤 하였네

살아가는 일이 고유명사처럼 와 닿을 때
우체국 앞에서 당신의 안부를 묻던 날들이
아득한 기억이었다 해도
우리가 헤어진 일이 엊그제 일 같아
지금도 봄이 오면 밤이 짧아지곤 하네

서쪽 하늘에 걸린 초승달, 스무 살 언저리 

해설에 나선 안상근 시인은 “조 시인은 자연과 인간 세계의 따뜻한 교감을 꿈꾼다. 그것은 그의 살뜰한 인정과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우주에 대한 사랑과 연민에서 비롯됐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렵고 난해한 서사구조로 쓰인 글들이 반짝 사람들을 신선하게 하고 감동하게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보통사람에게 오랜 세월 감동을 주는 것은 굳이 난해한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제주에서 태어난 조선희 시인은 2008년 ‘시사문단’으로 등단한 뒤 ‘수국꽃 편지’, ‘애월에 서다’ 등 시집을 발간한 바 있다. 

121쪽, 한그루,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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