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6) 바랭이 매려고 손으로 잡아당기다 아기 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제완지 : (잡초)바랭이
* 매쟁 : 매려고, 뽑으려고
* 심언 : (손으로) 잡아서
* 당기단 : 잡아당기다(가)

보리 비레 갔다네 밧디서 애기 낳댄 해여라. 보리 비어 논 우의서 출산허엿댄게. 사진=픽사베이.
보리 비레 갔다네 밧디서 애기 낳댄 해여라. 보리 비어 논 우의서 출산허엿댄게. 사진=픽사베이.

밭에서 제완지라는 잡초를 뽑으려고, 임산부가 두 손으로 잡아당기다가 아기를 낳는다 한 것이다. 조금만 상황을 톺아보면 이런 끔찍한 일이 있으랴 싶다. 밭에 가 검질(잡초)을 매려고 제완지(바랭이)를 힘주어 잡아당기다 보니, 뱃속 아기가 태어났다 함이다. 산달이 다된 임산부가 그것도 김을 매다가 밭에서. 생각만 해도 민망한 노릇이다.

지금은 산부인과를 찾아서 의료진의 보호를 받으며 출산하는데, 병원은 고사하고 밭에 김매러 갔다가 출산을 한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밭에서 어떻게 아기를 받았을까. 그 자리에, 수발할 손이라도 있었을까. 더군다나 제완지가 번성할 때며 한여름 땡볕 야래일 터인데 어떻게….

하지만 이 말은 실제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바쁜 농사철에 아이 낳을 때가 가까웠다고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 일손이 아쉽기 때문이다. 

“보리 비레 갔다네 밧디서 애기 낳댄 해여라. 보리 비어 논 우의서 출산허엿댄게 (보리 베러 갔다가 밭에서 아기 낳다고 해라. 보리 베어 놓은 위에서 출산하였다고.)”

보리 베다 급하니까 그냥 해산하는 예는 적지 않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때도 5월 말에서 6월 초라 더위도 아주 심한지 않는데가 훈훈한 들바람이 한들거일 것이니, 산모의 고통도 그렇게 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 얘기를 요즘 젊은 여인이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칠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그렇게 살았다. 못 먹고 못 입은 것이야 그렇다 하고. 이렇게 사람으로서 밑바닥의 삶을 살면서. 못 살던 시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 있었겠는가. 숙연히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제완지란 잡초는 이를 데 없이 그악하고 모질다. 위로 오르는 종이 있는가 하면, 수평으로 땅 위를 거침없이 뻗어가는 종이 있다. 한 번 뿌리 내리면 호미로 파고 파도 뽑히지 않은 독한 근성의 풀이다. 

산모가 이 녀석을 두 손으로 잡고 당기느라 있는 힘을 다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날달이  다된 아기가 태어나고 만 것이다. 마치 동물들처럼. 참 끔찍한 장면이 아닌가. 

‘제완지 매젱 심어 당기당 애기 난다’

우리 선인들은 그렇게 사람다움을 바라지 않고 고르거나 가지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억척스럽게 살았다. 우리는 바로 그 옛 어른들이 따 놓은 탐스러운 열매를 먹고 있지 않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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