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7) 그렇게 떨면 오던 복도 달아난다고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경 : 그렇게 
* 털민 : 떨면
* 돌아난댕 : 달아난다고

다리를 달달 떠는 버릇은 안 좋은 것이니, 하지 말라, 안 그러면 복이 달아난다고 했지 않은가.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유인한 것이 아닌가. 사진=픽사베이
다리를 달달 떠는 버릇은 안 좋은 것이니, 하지 말라, 안 그러면 복이 달아난다고 했지 않은가.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유인한 것이 아닌가. 사진=픽사베이

엄중한 경계의 말이다. 그냥 ‘안된다’라거나 ‘하지 마라’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오던 복(福)이 도망간다고 이름이다.

바로 앞에 대놓고 엄하게 하는 말이다. 다리를 달달 떠는 사람에게 이르는 경고의 메시지. 아무 데서나 다리를 떨면 모르는 사이에 좋은 복을 놓치고 만다니 심각한 얘기가 아닌가. 

커오던 시절 어른들에게 늘 욕을 먹던 일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밥 먹으며, 누워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 말을 주고받으면서 다리를 떨었었다. 별다른 느낌 없이 그냥 버릇이 됐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더 심한 것 같다. 시대가 불안해서인가, 살아가는 형편이 불안정한 탓인가. 젊은이들이 다리를 떨고 있는 풍경을 어렵잖게 목도한다. 특히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두 다리를 떤다. 달달달달 심히 떤다.

어른에 따라서는 “경 달달 떨민 머릿속에 들어가던 것 다 돌아나불키여(그렇게 달달 떨면 머릿속에 들어가던 것 따 달아나 버릴 거여)”라며 야단을 칠 것이다.

사실이지, 두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모습은 경망스럽다. 쫓기듯 당황해 하는 듯 무언가 불안정하고 무게감이 없어 보인다. 한번 버릇이 되면 고치기가 쉽지 않아 문제다. 어른이 돼 중요한 자리에 나앉아 다리를 사시나무 떨 듯 떤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혹여 심층면접을 받는다든지, 맞선을 본다든지…. 점수를 따는 데 성공할 확률이 크지 않을 것이다. 여간한 낭패가 아니다.

카페에서 마주 앉아 책을 읽는 엄마와 아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데 눈길이 가고 말았다. 티테이블 아래서 둘 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리를 떨고 있잖은가. 그 순간, 좋게 다가오던 모습에 삽시에 깨지고 말았다. 엄마가 먼저 습관을 고쳐야 할 것 같아 남의 일인데도 염려스러웠다.

‘경 달달 털민 오던 복도 돌아난댕 헌다’

‘경 달달 털지 마라’가 아니고, ‘오던 복도 달아난다’ 겁을 준 수사(修辭)가 눈길을 끈다. 다리를 달달 떠는 버릇은 안 좋은 것이니, 하지 말라, 안 그러면 복이 달아난다고 했지 않은가.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유인한 것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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