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인권’ ‘페미니즘’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 연재를 통해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고문을 받다가 탈출해 우리나라에 난민으로 정착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자 정부가 강제추방 명령을 내렸는데요. 범죄를 저지른 난민은 우리나라를 떠나도록 하는 게 맞을까요?” (2022.8.20. MBC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00029_35744.html ) 서울 행정법원은 보편적 난민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은 온통 이 난민 청년을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그럼 정말로 이 난민을 쫓아내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안전권을 보장하는 길일까?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난민 강제추방 금지원칙을 준수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난민들의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 국제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생명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조치에 대한 금지이다. 우리는 종종 국제 해난 사고와 각종 분쟁 등 국제적인 인도주의적 위기에 있어 세계 각국이 즉각적인 지원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국제 해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주변 해역의 배들은 자신들의 생계와 경제적 이유, 그리고 해적인지도 모르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 등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긴급 구제 작업에 동참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이는 자신들을 포함한 누구든 간에 인도주의적 위기에서 생명권을 보장받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국제인도주의적 원칙은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생명권 보장을 위한 원칙이 된다. 그 아프리카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책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원칙에서 우리나라 국민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사실상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있어서 최소한 보장책을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인권이냐? 는 일부 사람들의 항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세상의 여러 국가와 사회는 그 나름의 사회적 규칙과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 사회적 규칙과 체제가 완전히 사회적 동의를 얻었는지,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는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일단 그 난민은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에 부합한 제재를 가하면 된다. 그리고 보다 세심하게 그 난민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사회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의 항의는 이러한 기대치의 사회상을 일그러뜨린다. 난민에 대한 배타적 경계와 혐오의식은 국제적인 인도주의적 원칙을 망각하게 만든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권 보장에 대한 판단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난민은 근원적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온 이질적 존재이며, 무엇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배타적 태도와 혐오는 ‘우리와 함께 살려면 숨죽이고 조용히 순종하며 살아야 하며, 문제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 내부에는 이 난민보다 더 심각한 범죄자도 있고, 사회적 문제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아예 우리나라 외부로 내쫓지는 않는다. 그리고 온 사회는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난민들에게도 그러하면 된다. 난민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모두가 노력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문제의 모든 책임을 난민 개인에게 지우고 나면 우리 사회가 그냥 안전해질 것처럼 호도한다.  

원래 여성주의(페미니즘 feminism)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굳어진 성별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발생한 사상이다.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인데,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성별로 인해서 사회적 차별이 발생해왔다.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가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에는 명백히 남녀의 취업 관련 M자형 곡선이나 임금이 차별적으로 존재한다. 또한 여전히 그림자 노동이 특히 여성에게 더 강조되곤 한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이 페미니즘이 마치 남성을 공격하여,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상으로 취급받는다. 이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행위나 언급을 하는 사람, 그런 기사에 ‘좋아요’ 클릭한 사람, 심지어 단발머리를 한 유명 여성은 여지없이 ‘페미’라는 단어로 규정 짓고 집단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페미’라는 말로 상대방을 규정짓고,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질서를 전복시키고, 남성을 공격하려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배타적 의식이 있고, 여성은 기존의 질서에 숨죽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혐오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여성주의(페미니즘)를 사회의 진일보한 보편적인 주의 주장으로 생각하기보다, 불순한 사상도 아닌 불순한 사람들로 규정하며 공격하고 있다. 필자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발생한 미러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성별로 인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이 여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지점은 이해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방식이 혐오의 방식이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러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행동들이 페미니즘이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 공격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혐오에 기반한 사회적 논쟁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여가부 폐지’주장은 페미들이 남성을 공격하고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는 사회적 배타와 혐오적 의식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현 정부의 여성에 대한 정책은 대단히 여성혐오적이다.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한, 현 정부가 입으로만 떠들고 있는 공정과 평등은 오히려 정반대의 사회를 만들어 낼 뿐이다. 

 

난민이든 여성이든 간에 누구든 그들은 어떠한 존재로 제한되거나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들도 아니다. 그들도 이 사회의 주인이며, 오히려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온갖 모순의 현장을 그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회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만들고 그들을 배제하게끔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무엇인가 자기의 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필자는 ‘인권’이나 ‘페미니즘’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회의 보편적 가치라기 보다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배타와 혐오의식에 저항하고자 한다. 인권은 모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치 지향이며, 페미니즘은 성별차별에 저항하는 사회적 평등운동의 지향점임을 믿는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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