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토목사업 아닌 청년인재 투자 우선 돼야 / 허남춘 제주대 교수 

2022년 4월에 시작한 삼성 이건희 컬렉션 기념전이 8월 말로 끝났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장에는 보물급 불상과 도자기와 고가구가 선보였고, 특히 미술품이 돋보였다. 이중섭과 박수근 그림 사이에 제주도의 동자석 8구가 함께 찬연히 빛났다. 무척 소중한 컬렉션들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삼성그룹의 탈법행위와 무관하게 고 이건희 기증품은 찬사를 받을 만했다고 평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동자석의 반출 때문이다. 누군가의 무덤 앞을 지키던 제주도의 동자석은 도굴꾼에 의해 육지로 팔려나갔고, 부잣집 정원의 소품으로 전시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중 예술적으로 세련된 동자석 8기가 삼성 컬렉션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제주의 소중한 민중 미술품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무덤의 후손들이 매일 무덤 앞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을 단위에서건 제주도 차원에서건 제주도의 역사 유물을 간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노인들에게 그런 과중한 책무를 맡길 수는 없다. 각 마을마다 청년 지킴이를 키워 마을 전통도 지켜나가고 공동체의 유산도 보존해야 한다. 오영훈 도정이 ‘15분 제주’를 들고나오면서 지역 거점마다 병원과 체육관과 학원과 문화시설이 두루 설치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화시설이 만들어지고 문화사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청년 마을지도자가 각 마을에 배치되어야 한다. 시골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도시에서 농촌과 어촌으로 눈과 귀를 돌려야 한다. 도정이 일자리도 창출해야 옳다. 

청년들이 시골 마을로 돌아가서 문화를 창달하고 지역공동체를 융성시킬 대안이 하나 있다. 바로 ‘청년 저류지’ 사업이다. 최근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와흘리 저류지 건설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멸종 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이 확인되었던 점과, 자연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습지를 보전하고 거기에 건설하려는 저류지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산간 지역 저류지의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모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문제다. 송당의 체오름 밑을 가보면 거기에도 저류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홍수 예방에 도움이 되었다는 보고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2007년 나리 태풍 이후 제주도는 홍수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저류지 사업에 공을 들였다. 제일 먼저 방선문 계곡 위쪽의 한천저류지가 완공되었는데, 600억이 소요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600억이면 3,000만원 연봉 월급자 2,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예산이다. 이 예산을 소모적 토목공사에 투여하지 말고, 우리들의 청년을 살리는 데 쓰면 어떨까. 코로나 사태 이후 취업이 막힌 대학 졸업자들을 위해, 청년 저류지에 1년간 머물면서 취업과 창업을 준비하게 한다면 위대한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선 1,000명을 제주도 각 마을에 배치하여 문화사업을 맡기고 지역 문화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면, 문화창달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도 되살아날 것이다. ‘15분 제주’도 활성화될 것이다. 청년들이 마을만들기 지도자로 1년간 봉사하게 하면서, 농어촌 지역으로 돌아가 살 기회를 엿보게 하는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이다,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나머지 1,000명은 해외로 보내 세계 문물을 경험하게 하고 사업 구상도 하게 하고, 제주도의 상품을 세계로 보낼 활로를 모색하게 하고, 제주문화의 세계화 방안도 궁리하는 기회를 주자는 의도다. 홍수 대비 저류지 사업을 잠시 멈추고, 2,000명의 청년이 먹고살면서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청년 저류지’ 사업을 제안한다. 농어촌 지역 활성화를 위해, 문화재 보호와 융성을 위해 청년을 지역으로 보내는 사업에 제주도정이 귀 기울이길 기대한다. 새로 취임한 제주시장은 환경보전에 큰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와흘리 저류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녹색 제주를 완성하길 기대한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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