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0) 아기 많은 거지, 말 많은 부자

* 한 : 많은(多)
* 게와시 : 거지, ‘동녕바치’라는 방언도 많이 쓰였음
* 몰 : 말(馬)
* 장제 : 부자(富者)


1971년 제주에서 촬영한 돗통시와 돼지.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제주에서 촬영한 돗통시와 돼지.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왜 그랬을까. 

남에게 동냥(걸식)하며 사는 거지에겐 자식이 많은 것으로 인식돼 온다. 

하기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밑바닥 생활를 하는 거지가 아니더라도 가난한 집안에 자식이 많았었다. 

“그 집에는 아이덜이 보글보글허다(그 집에는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면 보통 아이가 네다섯에서 예닐곱, 열 전후가 될 정도였다. 산아제한 등 계획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못 사는 집에 아이가 많아 대가족이면 안 그래도 쪼들리는 데 살아나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게 아닌가.

한데 어려운 형편 속에 어찌어찌 열대여섯 살만 키워 놓으며 스스로 제 인생을 살았다. 뜻을 세우면 길은 있는 게 맞다. 어언 어른으로 장성해 분가해 나가 살 만큼 살았다. 

남의 밭을 삯 내어 억척스레 농사를 한다든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한다든지. 남의 화물차에 조수로 붙어 다니면서 운전면허를 따 차를 몬다든지. 산 입에 거미줄 칠라 굶지 않고 살았다. 신통한 일이다. 

그래서 한숨 섞인 소리로 나온 게 “살당 보민 다 살아진다(살다 보면 다 살아진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게와시처럼 남의 밥을 얻어먹는 신세일지언정 아이들이 세상으로 진출할 길은 있었으니까. 문제는 앞날을 개척하려는 의욕이 중요한 것일 뿐.

반대로 집에 말이 많으면 부자였다. 초여름에 조를 갈 때는 씨를 뿌린 밭을 말로 볼려야(밟아 다져주어야) 한다. 30~40 마리의 말을 몰고 다니면서 좁씨를 파종한 밭에 말을 풀어 놓아 밭을 다져준 값을 비싸게 받아 챙기는 사람, 그가 다름 아닌 말을 많이 가진 부자였으니 말이다.

말 떼를 빌려 조밭을 다지는 것은 형편이 좋은 사람이라야지 아무나 하지 못했다. 소나무 날가지 등을 묶은 끄슬퀴를 끌며 흙을 덮거나, 남태라는 통나무에 한 뼘쯤 되는 나무줄기를 수십 개 박이 돌돌 구르면서 밭을 다지게 만든 놈을 끌면서 밭을 누비기도 했다. 힘이 많이 들어 체력 소모가 컸다. 말 가지 사람이 위세를 부릴 만했다. 부(富)를 과시한 것이다.

거지 형편에 아이까지 많으면 평생 비렁뱅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은 건 불 보듯 한 일 아닌가. 오죽 못 살아 남들 눈에 났으면 ‘애기 한 게와시’라 놀렸을까. 말 많아 농사철마다 벌어들이는 부자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삶이 아닌가. 

옛 시절에도 부익부 빈익빈은 있게끔 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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