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수교 30주년에 부쳐…바람직한 과거사 청산은? / 강한섭 베트남 트릭아트뮤지엄 전 관장  

베트남 전쟁증거박물관 외부 모습. / 사진 출처=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 누리집
베트남 전쟁증거박물관 외부 모습. / 사진 출처=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 누리집

지인들이 호치민에 여행을 오게 되면 시내 관광에서 들르게 되는 관광코스 중의 하나가 전쟁기념관이다. 

우리에게는 전쟁기념관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어로는 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바오땅 쭘틱 치엔짜인), 번역하면 전쟁증거박물관이 정확한 명칭이다. 

박물관 2층에는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를 포함해 미군이 사용한 살상무기와 양민학살 등의 전쟁범죄에 대한 자료들을 전시해 놓고 있고 3층으로 올라가면 베트남전 종군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찍은 베트남전의 생생한 기록들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에 동조해 전투병을 파병해 총부리를 겨눈 한국, 태국, 호주, 필리핀, 뉴질랜드를 미국의 ‘5개 위성국’으로 불렀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6·25전쟁의 결과 남북이 분단된 경험이 있어 베트남과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중국으로부터 계속된 침략을 당했고 다양한 문물을 접한 역사는 한국과 베트남이 유사하다. 한자문화권에다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였고 외세의 침략, 식민지배와 분단의 경험을 공유한다.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분단된 남북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것도 닮았다. 

올해 한·베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대우그룹과 삼성그룹이 그동안 공을 들인 덕분으로 선린우호 관계가 이만큼 발전해 왔고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미안하게 생각한다”,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간 불행한 역사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등의 발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 경제협력과 K-POP 등 문화협력 등이 가시화되면서 베트남 내 투자 1위 국을 한국이 차지할 정도로 베트남 경제의 중추가 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기억하는 전쟁과 피해자가 기억하는 전쟁은 다를 수밖에 없다. 

2013년 10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30년 항불, 항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 응웬 지압(Vo Nguyen Giap) 장군은 2005년 종전 3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협력 증진과 관계개선에 대해 “과거는 지울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했고 전 국가주석 트란 룩 루옹은 “과거는 뒤로 미루자”고 했다. 즉, 이해한다거나 없었던 일로 하자가 아니라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후세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증거박물관 내부 모습. / 사진 출처=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 누리집
베트남 전쟁증거박물관 내부 모습. / 사진 출처=Bảo Tàng Chứng Tích Chiến Tranh 누리집

현재 베트남 내에는 베트남전 당시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가 중부지방에 중점적으로 6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진상규명도 없고 보상도 없이 어정쩡한 상태로 수교 30주년을 맞는 것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일말의 부채감도 없이 40여 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어쩌면 베트남은 지금 한국에 묻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길을 갈 것인가? 일본의 길을 갈 것 인가를. 

지난 8월 한국에서 진행된 베트남인 학살의혹 국가배상소송 8차 변론기일에 원고로 참석한 응웬득쩌이는 “한국에 배상을 요구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한국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진실규명과 사과와 대동소이하다. 

베트남 내에 산재한 증오비에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비문이 쓰여져 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철저히 청산한 독일과 그렇지 못한 일본을 비교하곤 한다. 

한·베수교 30주년을 맞아 이제라도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베트남전에 대한 과거사 청산을 독일식으로 간다면 한·베 양국 간 관계는 지금보다 한층 더 공고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제주 역시 4.3당시 대량 양민학살의 아픈 과거를 지닌 곳이기에 바람직한 과거사 청산에 대한 바람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 강한섭, 베트남 트릭아트뮤지엄 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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