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3) 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보리, 2022

사진 출처=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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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몰라도 필자는 인기 많은, 이른바 베스트셀러에 이상한 거부감이 있다. 특히 유명인사가 적극 추천하는 책들은 일단 기피하고 읽지 않는다. 뭔가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 책 소개의 글을 쓰면서 이 무슨 어깃장을 놓는 일인가? 여하간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흘러 찾는 이가 뜸해질 때쯤 찾아 읽는다. 이번 책도 그러했다. 다만 올해 4월에 나온 책이니 제법 빠른 편이다. 전직 대통령이 굳이 중국관련 도서를 추천했다고 하고, 중국 전공자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심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짱깨 먹으러 가자

가끔씩 중국음식점에 갈 때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짜장면 먹으러 가자는 뜻인 듯한데, 사실 흉측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짱깨가 장구이 또는 장구이더(掌櫃的), 즉 돈통으로 사용하는 궤짝인 궤櫃를 관장하는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발설한 이는 모르고 한 소리이나 듣는 장구이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장구이는 일상용어이나 짱깨는 비속어이다. 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다. 아시다시피 조선은 중화문명에 지극히 공손했던, 아니 그대로 추존하기를 갈망했던 나라였다. 조선인이 바라보는 세계에서 명나라가 가장 문명화되고, 이상적이며, 무엇보다 나라가 패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원군을 보낸 혈맹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명조가 만주의 오랑캐에게 멸망하고 청조가 들어서자 조선의 왕족과 사대부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게다가 홍타이지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엎어져 아홉 번이나 머리를 땅에 찧는 삼궤구도두(三跪九叩頭)를 강요받고, 굴욕적인 항복 선언을 했으니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이후 중국은 왕조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찬란한 중화문명의 세계에서 더럽고 냄새나며 흉측한 떼놈, 오랑캐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소중화小中華가 되었다. 청조 말엽에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비단가게나 이발소, 청요리집을 운영했는데, 짱깨라는 말은 아마도 이때 쯤 나온 듯하다. 그들은 상술에 능한 상인商人의 후예답게 많은 돈을 거머쥐었지만 역대 정권은 화교들에 대한 억압을 인권탄압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매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한국 화교의 인권 탄압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짱깨주의란 무엇인가?

사실 짱깨란 말은 우리가 일본인을 쪽발이, 흑인을 검둥이라고 멸칭하거나 미국인들이 중국인을 칭크(Chink), 중국이나 인도 노동자를 쿨리(Coolie, 苦力)라고 하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짱깨라는 말은 ‘짱깨주의’와 다르다. ‘주의(主義)’, 즉 ‘이즘’이란 하나의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을 뜻한다. 하나의 명사가 구체적인 체계와 조직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얼마간의 시간과 뭇사람의 공인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하나의 시류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짱깨주의’는 낯설기는 하지만 저자의 사로(思路)를 따라가다 보면 아, 정말로 우리들에게 숨겨져 있던 하나의 ‘이즘’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짱깨주의’는 저자의 탁월한 학문적 감식안 덕분에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짱개주의’를 뭐라고 정의하고 있는가? 

그는 짱깨주의를 조선시대에서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부활한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를 담은 하나의 인식체계이자 신식민주의적 유사인종주의가 들어 있는 이데올로기로 보고 있다. 

“짱깨주의는 ‘칭키즘(Chinkism)’에는 없는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 있다. 짱깨주의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과 상관없는 종주국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복종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한국의 짱깨주의를 ‘반중감정’이나 ‘혐중정서’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대항담론조차 형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식민의 언어 사용이다.……짱깨주의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뿐만 아니라 신식민주의적 유사인종주의가 들어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다.”

- 짱깨주의의 탄생, 102쪽

저자에 따르면, 짱깨주의가 문제인 것은 바로 그 안에 ‘신식민주의적 식민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주성, 주체성이 사라진 맹목적, 복종적 인식체계라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신식민주의’ 상태라는 말과 같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는 제일 먼저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인되어 그 이듬해 발효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들고 있다. 아시다시피 이 조약은 한반도의 독립을 승인하고 대만과 사할린 남부 등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국제정치에서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주도하에 전범국가인 일본은 같은 전범국가인 독일과 달리 관대한 처분을 받았고, 오히려 동아시아 질서 구축을 위한 미국의 중요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한국은 참석조차 하지 못해 이후 일본 강점에 따른 배상청구권을 확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조약에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에 시달리고 있다. 정말로 우방이라면 일본의 침략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당시 ‘공산당’과 싸우던 한국을 조약에 참가한 48개국 안에 넣었어야만 하지 않을까? 

저자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전후 동아시아에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이었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대등한 상호간 협약이 아니라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여 신식민주의체제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 체제의 특징은 이러하다.

“샌프란시스코체제는 1) 경제적 예속관계 2)수직적 동맹 체제 3) 패권적 문화적 영도력 확보와 자발적 복종 메커니즘 구축 4) 종주국과 식민지 엘리트들의 공모로 구축된 신식민주의 체제라는 성격을 띤다.”

- 짱깨주의의 탄생, 44쪽

이쯤 되면 왜 미국에서 기침하면 우리는 감기가 들린다거나 미국 증시의 등락에 따라 한국 증시가 출렁이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왜 우리 국군은 뜬금없이 먼 나라 베트남에 달려가 적대 관계도 아닌 ‘베트콩’과 싸워야 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BTS가 중국에서 비난을 받는 것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에미상을 수상한 것에 열광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높이자는 미국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관련국(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 상주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하여 그 후과(後果)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지금 문제는 우리다

중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시각은 본질적으로 중국의 화이(華夷)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풍요롭고 주체적이며 고상한 문화의 종주국이고, 너는 그 주변부에 종속되어 있는 오랑캐라는 인식이 바로 화이사상의 본질이다. 중앙의 종주국은 주변부 여러 나라에게 복종과 조공을 요구하고 수용하지 않을 경우 폭력(전쟁)으로 징벌한다. 이런 화이사상은 결국 사대주의(事大主義)를 낳았다. 고대에만 그러했는가? 아니다. 사대주의는 지금도 여전하다. 다만 예전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미국이 종주국이 되니 중국은 자연스럽게 주변국이 될 수밖에 없다. 광화문 광장의 애국시민들이 흔들어대는 성조기를 보라.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무조건 믿음, 무조건 우방, 무조건 애정, 무조건 지지.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어떤 나라이든 자국이 우선이며, 제아무리 우방, 아니 혈맹이라고 할지라도 자국의 이익이 앞서기 마련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좀 더 심하다. 요즘 달러화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까닭이 무엇인가? 자국의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함 아니겠는가? 그것을 위해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좋은 나라이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언제나 미국인(심지어 대통령이)이 나서서 지구를 구한다. 언제나 그들은 정의의 사도이며, 아무데나 총부리를 가져다대고 아무데나 폭탄을 떨어뜨려도 여전히 그러하다. 맞는 말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바라보는 시각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라는 말이다. 그 옛날 사대주의 현대판이다. 게다가 친미(親美)는 곧 반공(反共)이고, 반미(反美)는 곧 빨갱이라고 주창하는 이미 100년이나 지난 레드 콤플렉스(Red Scare, 적색 공포)가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친미를 표방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견고한 네트워크와 철통같은 방어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을 이러한 보수주의자들, 특히 보수언론이 짱깨주의를 선도하는 양태에 대해 할애하고 있다. 왜 우리는 짱깨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한국에는 중국을 보는 단 하나의 시각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담론 유통구조가 존재한다.”

- 짱깨주의의 탄생, 28쪽

우리나라 언론이 중국에 관한 보도 기사를 낼 때 주로 인용하거나 참고하는 통신사나 신문은 AP, AFP, 블룸버그 통신,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즈 외에도 진보언론에 속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있고, 이외에도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 환추스바오(環球時報)의 영자판 신문이 글로벌 타임스(GT) 등을 애용한다.(중국 담론의 유통경로에 관해서는 본서 9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대로(29~34쪽)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보낸 그 많은 중국 주재 특파원들은 뭘 하고 있나? 중국 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귀국 후에 쓴 책들이 적지 않다. 필자도 제법 읽어보았다. 재미는 있는데 깊이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아쉽지만 그들만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예를 들고 있다시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 통신사가 제한된 통로를 통해 일방적 시각의 보도에 치중하니 백성들의 중국관도 이에 깊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짱깨주의 담론의 유통과 고착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언론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

그럴 듯하지만 애매한 외교적 수사법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포괄적 동맹관계이지만 중국과는 전략적 우호관계이다. 미국과는 정치, 경제, 문화를 모두 포함하는 동맹관계이지만, 중국과는 전략,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친밀한 관계라는 뜻이다. 그런 까닭인지 언제부터인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괴상한 담론이 판치기 시작하더니 거의 굳히기에 들어간 듯하다. 그렇다면 안보는 친미, 경제는 친중이란 소리인가? 아니면 안보는 미국에게 맡겨두고, 중국하고는 경제적 관계만 치중하자는 뜻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사실 ‘경’자가 ‘經’이 아니라 ‘輕’이란 말인가?

‘안미’에 ‘경중’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국책으로 삼고 방대한 노동력과 저임금으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할 때부터였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거의 모든 강대국이 중국을 향해 달려들었고, 자금을 대고 공장을 건설했으며, 심지어 온갖 일상 쓰레기나 산업폐기물까지 중국으로 보냈다. 문득 원진레이온이란 회사가 생각난다. 

1991년 원진레이온이란 합성섬유 회사에서 국내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낡은 기계에서 발생한 아황산탄소로 인해 8명이 사망하고 637명이 반신 또는 전신마비에 언어장애, 정신이상 등 후유증으로 장애판정을 받았다. 당시 기계는 일본 도레이에서 사용하던 중고품을 들여온 것이었다. 직업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는 원진녹색병원이 설립될 정도로 문제가 커지자 사주는 사용하던 설비를 중국 요녕성 단동시에 있는 국영 화학섬유총공사에 팔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더욱 심각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이후 그 설비는 다시 북한으로 팔려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동안 세계 각국은 중국에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도처에 깔리기 시작한 ‘메이드 인 차이나’에 놀라 뜬금없이 ‘중국산 없이 살아보기’처럼 우스운 짓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이 되더니 급기야 G2의 반열에 올라 미국을 넘보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제 더 이상 저임금으로 소상품이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우주로 로켓을 발사하고, 미국처럼 핵항모는 아니지만 항공모함을 서너 척이나 진수시킨 경제, 군사대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여전히 중국과 가장 많은 물자와 상품을 주고받지만 점점 대등하거나 역전되는 일이 발생했다. ‘경중’이 점점 힘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여전히 ‘안미경중’이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이른바 ‘신냉전 체제’로 돌입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2기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아시아 회귀 정책’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에 관한 한 적대적 시각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따라야 하나 아니면 따르지 말아야 하나? 

짱깨주의를 넘어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중국이 무슨 죄냐’라는 식으로 읽히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는 저자가 진보학자들의 중국 담론에서 문제라고 지적한 “중국도 문제라는 프레임”(451~461쪽)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민주적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자는 “중국의 내부자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154쪽)고 하면서 중국민의 88.1%가 자국을 민주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적’이란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을 이해하는 데 내부자 시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본서가 계획하고 있는 의도이다. 어떤 것이든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은 강력한 힘으로 그 반대편으로 기울도록 해야만 겨우 평형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도한 발언도 분명 필요하다. 지금은 충격을 받더라도 우리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본서는 찾아보기 포함 675쪽으로 제법 두터워 여기서 더 이상 소개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다. 본서의 제목은 ‘짱깨주의의 탄생’이지만 저자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짱깨주의에 관한 소개나 실례가 아니라 짱깨주의와 같은 지난 20세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전후체제 너머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림이고, “캄캄하고 갑갑한 분단의 경계선을 허물고 걸어서 유럽까지 갈 수 있는 평화체제에서 한 번 살아보자”(653쪽)는 외침이다. 저자의 알림과 외침이 큰 반향을 일으켜 더욱 큰 소리로 설왕설래되기를 기대한다. 

책명: 짱깨주의의 탄생
출판사: 보리
지음: 김희교
발행일자: 2022년 4월 25일 1판 1쇄


#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shim42st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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