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13) 금능리-도서관과 협동조합으로 뭉치다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금능해수욕장의 가을풍경. 비양도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제주의소리
금능해수욕장의 가을풍경. 비양도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 전통 어로문화인 원담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 투명한 물과 하얀 모래가 아름다운 바다마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푸릉마을의 배경인 곳. 제주 한림읍 금능리는 단아한 분위기 덕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아늑하게 쉬어가는 체류형 관광지로 손꼽힌다.

금능리의 진면목은 주민들의 일상에서 나타난다. ‘원담이 시(詩)로 피어나는 문화마을’이 캐치프레이즈인 이 마을에서는 지난 10여년간 놀라운 변화들이 있었다.

이 마을의 보물인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은 2009년 개관한 후 마을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책을 읽고, 분야를 초월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연중 진행된다. 인형극, 플로깅, 제주어 프로그램, 어린이 시조교실, 자연체험, 국악뮤지컬, 미디어교육, 동요 음반 제작, 청소년독서동아리, 멘토링, 지역 알아가기 등 다양한 경험과 성장의 기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른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교실과 시인학교, 자서전쓰기교실 등 문학창작 시간과 요가교실도 있다. 주민들이 직접 기자가 돼 발간하는 소식지 <금능인>도 빼놓을 수 없다. 책놀이지도사와 시인이 배출됐고, 마을 주민들은 새로운 여유로움을 만끽하게 됐다.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연중 이어진다. 윗 사진은 성인들을 위한 시 읽기 교실, 아래 사진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미술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연중 이어진다. 윗 사진은 성인들을 위한 시 읽기 교실, 아래 사진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미술 프로그램. ⓒ제주의소리

어린이들에게는 따뜻한 돌봄이자, 주민들에게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문화적 복지다. 양질의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제주시 도심, 서귀포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 곳을 찾는다.

송문철 금능리장은 “해녀 분들의 주관과 중심이 문화적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며 “힐링과 함께 자신의 존재가치를 승화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송 이장은 “직접 참여하고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마을 전체가 뿌듯해지고, 흥이 나고 있다”며 “주민들이 자기 삶에 충만함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꾸준한 수익이 있어야 청년들이 마을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4년째 이어져온 금능원담축제가 대표적인데,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마을에게 가장 좋은 방식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금능원담축제 모습. 원담이 잘 보존된 금능해수욕장 앞에서 참가자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제주의소리
금능원담축제 모습. 원담이 잘 보존된 금능해수욕장 앞에서 참가자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제주의소리

57명의 조합원으로 시작된 금능맛차롱협동조합은 위기의 국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뿔소라 해외 수출이 막히자 해녀들이 직접 삶아 자숙소라로 판매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해녀들이 채취하고 손질한 미역, 톳, 성게알 등이 온라인을 통해 전국 곳곳으로 판매됐다. 방치된 공간을 활용해 직거래 매장을 조성했고, 뿔소라 드라이브스루도 인기를 끌었다.

금능리는 전 생애에 걸친 마을 차원의 돌봄시스템을 만드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도서관이 어린이에게 문화적 경험의 기회를 주고, 맛차롱협동조합이 청장년층에게 비즈니스의 기회를 만들었듯 어르신들에게는 돌봄의 장의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을 차원에서 양로원을 만들어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교감하고 마을이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송 이장은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질 때 전혀 모르는 곳에 위치한 양로원에 가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면 동네 어르신이라 더 세심하게 돌볼 것”이라고 말했다.

송문철 금능리장. ⓒ제주의소리
송문철 금능리장. ⓒ제주의소리

마을이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자발적으로 뭉치는 힘 덕분이다. 제주만들기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금능리는 공동체가 활성화돼야 마을사업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공동체의 교감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송 이장은 “단아한 마을을 잘 보존하면서도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민들이 행복하게 머물면서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는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금능리는?

제주시에서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 35km 지점 해변가에 위치한 마을. 동쪽으로는 협재리, 서쪽으로는 월령리, 남쪽으로는 월림리와 닿아있다. 2021년말 기준 545세대 1091명이 살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해발 100m 이하의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새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한 금능해수욕장 주위를 소나무 숲이 감싸고 있다. 올레 14코스가 지나고, 금능농공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한 제주의 전통 어로문화인 원담이 잘 보존돼있다. 풍부한 해산물을 자랑하며 한라봉, 레드향, 레드키위, 고구마, 브로콜리, 콜라비 등도 생산된다. 

원래 지명은 배령리였는데, 이 명칭이 버랭이(벌레)와 비슷하다고 하여 약 100년 전 마을 중심에 있는 금동산을 한자로 바꿔서 금능으로 정했다는 설이 있다. 제단이 있는 능향원에서는 매해 정월대보름에 마을제가 열리는데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정월오름, 정구수굴, 금능 석물원, 배령연대 등의 자원이 있다.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은 문화적 거점이자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이어지는 문화활동과 프로젝트들은 높은 수준을 자랑하며,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인 동시에 강력한 문화복지 모델이 됐다.

마을 공동체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 2018년 전국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분야에서 동상(농림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20년 해양수산부가 공모한 어촌테마마을 조성사업에도 선정돼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제주 한림읍 금능리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능향원에서 마을제를 연다. ⓒ제주의소리
제주 한림읍 금능리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능향원에서 마을제를 연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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