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6) 임금복, 동학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 모시는사람들

수운 최제우(1824-1864)는 동학의 창시자로서,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한글 위주의 가사체 경전인 <용담유사>를 썼다. 서세동점의 위기에 놓인 조선의 주체성 기반 사상이자 유불선 통합의 혁명적 개벽 사상이며, 새로운 후천세계의 구현을 염원한 인내천 사상이다. 그것은 시민사회 및 근대적 이념 형성의 기반을 마련한 평동사상이다. 유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조선사회의 모순이 극대화 하고, 서세동점의 국제정세 변화와 서학의 전파 등의 정세 속에서 나타난 동학은 당대 뿐만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시대성을 담보한 사상이다. 

‘도수천도, 학즉동학(道雖天道, 學則東學)’이라 했다. 도로 말하자면 천도이나, 학으로 말하자면 동학이다. 오늘날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적 가르침으로 널리 알려진 동학은 종교적 정신성에 대한 학문적 가치체계로부터 나왔다. 핵심 사상인 인내천(人乃天)은 하늘님을 바탕으로 한 평등사상과 개벽세상의 새 이념으로서, 대우주의 본체는 생명의 작용에 의하여 만물이 화생하는데, 그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신령하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은 인내천의 원천으로서, 도덕적 규범인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근본이다. 수운이 하늘님과 대화하며 득도과정에서 나온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생각은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곧,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동학은 여성평등 사상의 측면에서도 주목할만하다. <용담유사> 안심가는 수운이 자신의 부인을 안심시키는 내용인데, 봉건 사회 여성들에게 인생의 참다운 모습과 여성의 참다운 가치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지위는 한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절대적이라 가르치고 있다. 동학 세계관의 핵심 개념인 ‘궁궁을을(弓弓乙乙)’에서 ‘궁긍’은 태극의 형상에서 나왔다. 태극은 천지가 분화되기 이전 혼원일기로 우주의 근원을 뜻하는 말이다. 우주의 본원이 되는 태극을 영부의 형태라고 했는데, 태극과 궁궁은 모두 우주의 본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우주의 본체인 하늘님이라는 신이 지니고 있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을을’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을 끊을 놓지 않는 이항대립과 변증의 사유를 담고 있다. 

이상은 말한다, “19세길랑 봉쇄해 버리시오.” 나 도올은 말한다. “20세길랑 봉쇄해 버리시오.” 주체를 상실한 자기배반적 역사의 공백을 메운 잡다한 가치관이 21세기에 또 다시 연속되는 그러한 비극을 연출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 김용옥

20세기의 앞머리에서 19세기 봉쇄를 이야기한 이상처럼, 도올 또한 21세기 앞머리에 서서 20세기 봉쇄를 이야기한다. 동학은 19세기와 20세기를 넘어서는 21세기의 정신성을 매개하는 주춧돌이다. 동학의 동시대성은 ‘생명평화사상’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평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생명의 평화를 의미한다. 기실 우주 도처의 물질세계에서 평화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혼돈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우주다. 

<천자문> 첫 구절에도 나온다. ‘천지현황우주홍황(天地玄黃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는 이 문장에서도 하늘과 땅, 우주는 알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서양 사람들이 우주를 물질적 공간으로서의 스페이스(space)로 보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로서의 유니버스(universe)라는 개념과 함께, 혼돈 속에서도 질서에 따라 운행하는 시공간으로서의 코스모스(comos)라고도 명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평화는 생명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문제다. 자연계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듯이, 인간계 또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그런데 인간계의 질서는 자연계의 질서와는 다를 수 있다. 자연계의 질서가 물질세계의 충돌과 조화 속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인간사회의 질서는 약육강식과 같은 질서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질서가 아닌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생명평화는 생명 존중의 사상을 바탕으로 뭇 생명이 공존하는 우주적 관점의 평화를 길어 올리려는 사상이자 실천 운동이다. 

이 책의 저자 임금복은 동학정신을 바탕으로 한 문학과 예술, 철학을 담고 있다. ‘1부. 동학과 문학’에서는 한승원의, 유현종, 박태원을 다루며, ‘2부. 동학과 예술’에서 저자는 윤석산과 장효선, 임권택, 손진책을 분석하며, ‘3부. 동학과 철학’에서는 동학의 경전과 해월의 사상, 도올의 동학 연구 등을 다룬다. 이 책의 저자 임금복은 대표적인 동학예술로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 錦江>이나 윤석산의 시집, <적-寂>, 장효선의 춤 <용담 검무>, 임권택의 영화, <개벽>, 손진책의 음악극 <천명> 등을 꼽는다. ‘박종환, 이무영, 서기원, 유현종, 유현종, 박경리, 박연희, 여명기, 박태원, 문순태, 송기숙, 한승원, 이병천, 은명기, 채길순’ 등의 동학소설도 중요하다.

임금복이 이 책을 통하여 두루 언급하고 있듯이 동학은 한국의 철학과 정치 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인간과 뭇생명과 모든 사물과 대우주를 하늘님 사상으로 통합한 동학의 인문개벽사상은 생명평화의 예술을 열어갈 단초이다. 종교적 정신성으로 봉건주의 조선을 극복하고 제국주의 외세를 물리치고자 했던 동학정신을 동시대의 정신적 자산으로 살려내는 길로서 생명평화예술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이 시대의 예술운동의 기둥으로 우뚝 일으켜 세울 일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