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 4.3후유장애인 강양자, 그림 에세이 ‘인동꽃 아이’ 발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

제주4.3으로 가족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친 강양자 할머니의 삶이 그림 에세이로 묶였다. 

‘인동꽃 아이’(한그루)는 1942년생 제주도민 강양자 할머니가 직접 쓰고 그림까지 그린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4.3의 아픔, 후유장애인 불인정 판결의 상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얻은 새로운 기회 등 삶의 궤적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강양자는 종전 직후 부모와 함께 제주로 귀향했지만 딸을 남겨두고 부모는 다시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후 외가에 맡겨져 7세 때 4.3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대신했던 외가 식구들은 모두 희생되고 강양자는 부상을 당해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이 됐다. 외가 가족 모두 4.3 희생자로 인정됐지만 강양자는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했다. 4.3 트라우마 영향으로 평생을 자폐적으로 집 안에서 살아오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현재 제주 탑동에서 홀로 살고 있다.

한그루에 따르면, 저자는 2007~2008년 경 구술작업을 제안 받았다. 당시는 후유장애인 불인정에 따른 행정소송을 패소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시기다. 제주4.3연구소 고성만·김명주 연구원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09년 4.3연구소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그늘 속의 4.3’에 기록이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요가 강사 이재윤과 만나 어린 시절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보자고 제안 받았고, 그림 강사 황신비를 소개받아 작업을 이어간 끝에 책이 완성됐다. 강양자 할머니 나이 80세에 맞이한 변화다. 

4월이 돌아오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그리고 외할머니, 외삼촌, 불타버린 광령 집.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그 시간들. 무시무시한 죽창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 총소리…. 그러나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127쪽)

난 내가 싫다. 내 모습이 싫다. 척추가 돌출된 뒷모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에 한평생을 허우적댔는지. 4·3의 그날 밤, 폭우에 바윗돌이 내 등을 가차없이 내리쳐 곤두박질쳐진 이후 평생을 장애라는 육신의 감옥 속에 살아왔다. 내 모습을 나조차 보기 싫고 세상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조롱하듯 보는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바깥세상은 상대하기도 힘들거니와 상대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아무런 힘도 방어할 능력도 없다. (132-133쪽)

산책이 이렇게 기쁜 이유는, 산책이 나에게는 그만큼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더욱이 혼자 산책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일흔 넘도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에게 입혔던 상처들이 희미해지고 마음이 굳건해지면 마음 안의 무언가가 세상과 맞닿아 연결되는 것 같다. (189쪽)

출판사는 책 소개에서 “이 책은 한 할머니의 생애를 통해, 제주4.3이 남긴 수많은 상흔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지난한 한 일생을 존경과 응원의 마음으로 돌아보게 한다”고 밝혔다.

추천사를 쓴 허영선 4.3연구소장은 “이 책은 인동꽃 아이가 보내는 잃어버린 한 시대, 인간의 존엄이 무너졌던 4.3의 진실을 향한 작지만 따가운 메시지다. 그럼에도 아름다움과 사랑의 힘이 고통의 언덕을 건너 그를 살아내게 했음을 느낀다. 그의 이야기가 그를 의심했던 것들에 닿기를 바란다. 바라건대, 이제 그만 등에 진 돌덩이의 그 무거움에서 조금 가벼워지길 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책 소개에서 “이제윤 요가 선생님, 80이된 할머니에게 그림을 지도하느라 애를 먹었을 황신비 선생님, 서툰 글이 문장이 되도록 도와주신 고혜경 선생님, 책이 나오기까지 손을 보태주신 권유연 선생님, 한그루 출판사,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님… 그 밖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면서 “장차 나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된다고 하니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는 무척 기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남겼다.
 
한편, 10일 오후 1시 30분 4.3트라우마센터 1층 세미나실에서 출판 기념 잔치를 개최한다. 강양자 할머니의 그림은 10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4.3트라우마센터 2층 복도에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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