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주 작가와의 대화, 제주4.3 현장 담아낸 '기억의 목소리III' 기획전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주민들의 집단학살터. ⓒ제주의소리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주민들의 집단학살터. ⓒ제주의소리

어슴푸레한 빛과 어둠의 경계,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은은한 불빛을 뿜어낸 사진.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빛의 대비를 묘사해 낸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떠올리며 작품에 찬사를 보냈지만, 사진 속 풍경이 70여년 전 참혹한 죽음의 땅이었기에 작은 등불은 더욱 처연했다.

고된 투병생활 속에서도 몸을 던져가며 작업활동을 이어간 것은 것은 스러진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또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제주시 건입동에 자리잡은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대표 고경대)은 10일부터 30일까지 사진작가 고현주 초청전 '기억의 목소리 III(Voice of Memories III) - 아름다운 제의(A Beautiful Ritual)'를 진행하고 있다. 12일 오후 3시 김만덕기념관에서는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했다.

'기억의 목소리' 연작은 올해로 5년째다. 올해 출간된 '기억의 목소리Ⅲ'은 그간의 완결 판이다. 기억의 목소리 I, II가 사물과 사람을 통해 기억의 목소리를 살려냈다면, 이번 기억의 목소리 III은 풍경에 착안했다. 

사람, 사물, 풍경으로 이어진 이번 작업은 2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고향인 제주로 내려온 고 작가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어느 때부턴가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이를 악물고 버텨낸 준비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었지만, 애초부터 부담이 많은 작업일 수 밖에 없었다.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 ⓒ제주의소리<br>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 ⓒ제주의소리
13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기억의 목소리III' 고현주 작가와의 대화. ⓒ제주의소리
13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기억의 목소리III' 고현주 작가와의 대화. ⓒ제주의소리

고 작가는 4.3 영령들의 학살의 현장을 찾아, 꾸러미를 싼 보자기에 빛을 담고 등을 밝히며 제의를 드리는 작업을 사진으로 담았다. 

성산일출봉, 함덕해수욕장, 섯알오름, 다랑쉬오름, 정방폭포, 표선해수욕장. 제주의 아름다운 비경이 담긴 곳으로, 해마다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인근에는 카페가 들어섰고, 여름밤이면 공연이 열리는 등 시끌벅적한 장소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공간이 4.3 당시 집단 학살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관광지로 변한 무덤엔 4.3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지만, 74년 전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귀가 먼저 열렸다고 되돌아봤다. 바닷가 파도소리, 댓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제주폭낭이 쏟아내는 한숨소리, 오름 위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 궤 안에서 나는 박쥐 소리. 그들이 느꼈을 공포심에 뛰었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숨은 처연한 슬픔, 제주의 상반된 두 얼굴을 주목하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있어서도, 잊어서도 안 될 기억의 목소리를 기록한 작업이다. 그 기억들을 소환하며, 붉은 등불인 듯 제물인 듯, 빛 담은 보따리들을 죽은 사람 수를 일일이 헤아려 놓아 '아름다운 제의'를 바쳤다.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nbsp; ⓒ제주의소리<br>
고현주 사진작가의 '기억의 목소리III' 작품.  ⓒ제주의소리
13일 제주시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린 '기억의 목소리III' 고현주 작가와의 대화. 대화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는 고 작가. ⓒ제주의소리

사진 작업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어스름한 새벽 시간대에 이뤄졌다. 낮과 밤의 경계, 삶과 죽음의 어스름한 경계 속에서 붉게 빛나는 빛의 보따리들을 통해 죽은 영혼을 위무하고자 했던 행위였지만, 동시에 암 투병으로 아픈 몸을 사는 작가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 작가는 "홀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고, 웬만하면 주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 7년이라는 외로운 시간을 버텼다"며 "오롯이 작업으로 보낸 시간이기에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채 방관하는 시간이었다"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고 작가는 "제 작업이 칭찬받을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닐 수 있지만,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해 왔다"며 "아이러니하게 내 몸이 가장 힘든 시기에 제주의 가장 힘든 시기를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억은 힘이 세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질 일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는 일에 동참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며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내일 일은 신 밖에 모르는 것 같다. 작업을 기억해주면 감사하겠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변변치 못한 작업을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