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4) 열 아기 낳고도 하나를 지탱 못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열 애기 나도 : 열 아기 낳고도
* 호날 : 하나를

1960년대 제주지역 병원 응급실 모습. 사진은 기사 속 내용과 무관합니다. / 사진=서재철, 제주학연구센터
1960년대 제주지역 병원 응급실 모습. 사진은 기사 속 내용과 무관합니다. / 사진=서재철, 제주학연구센터

이것 참 비참한 이야기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 나와 너 우리 이웃의 일이었다.

옛날엔 사람 사는 곳에 병원이 없었다. 1950년대 내가 나고 자란 면 소재지 마을엔 의료 시설이라고 병원은커녕 보건소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의촌이었다.

그러니 큰 병이 아닌데도 치료의 손길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종종 사망에 이르곤 했다. 어른이 그랬으나 어린아이는 더 말할 게 없었다. 약방이란 데가 한 군데 있었던가. 약종상 면허를 가진 사람이 약 몇 가지를 놓고 팔았던 것 같다. 하얀 다이아찡 한 알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시절, 복통 두통 배앓이 감기에도 그것 한 알로 해결된다고 했다. 들으면 하거니와 안 들으며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니 기가 막힌 현실이 아닌가.

며칠을 앓아 누운 아이가 명이 다했는지 숨이 남아 있는지도 몰라 등에 업고 산에 올라 파묻으려 했더니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게 아닌가. 그제야 ‘살아있구나’ 해 거두고 돌아와 키워 어른이 된 사람을 ‘태역둥이’라 했다. 태역(잔디)을 파묻어 버릴 뻔했는데 천행으로 살아났다는 웃지못할 거짓 같은 일을 겪은 이력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의 아이들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한 골목에서 태역둥이가 잘 자라 교장 선생을 한 친구도 있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슬픈 시대의 서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옛날엔 아이들을 생후 바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서너 살 아래와 동갑내기가 됐던 경우까지 않았다. 애가 죽지 않고 살아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병에 걸려 죽은 이이가 하도 많았으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 말이다. 가슴 아픈 시대의 강을 잘 견디며 건너온 우리들이 아닌가.

요즘은 의료서비스가 양질인 큰 병원은 물론, 집 두엇 지나면 소아청소년과 의원이다. 난치병이 아니면 잘못되는 예가 없다. 기침 소리만 나도 업어 동네 의원으로 내달린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열 아이 나도 호나 지탱 못헌다.’

열 아이 낳아 잘해야 고작 두셋을 건지던 옛날이야기다. 세상이 거꾸로 간다. 요즘에는 아이를 하나도 낳지 않으려 하지 않은가. 좋은 세상에 태어나 너무 거들먹거리는 게 아닌가. 이 또한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열리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랴.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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