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105)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예술가 김복진의 작품들 가운데 <백화>, <소년>,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 등 석 점이 디지털 기술과 접목해 재현작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김복진과 한국의 근현대 조각가들>(2022.11.10.~2023.1.29.)에 출품된 이 작품들은 이병호를 비롯한 후배 예술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로써 3D 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실물 조각을 제작한 것이다. <신원사 소림원 석고미륵여래입상>, <러들로 흉판>,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 등 실존하는 김복진 작품들을 실물과 3D 영상으로 소개한 이 전시는 사진만 남아있는 김복진 작품을 실물로 제작한 재현작을 통해 김복진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새로운 차원으로 넓혀주었다. 

고정수,&nbsp; 정관 김복진 선생상,&nbsp; 동판 부조,&nbsp; 1995. / 사진=김준기<br>
고정수,  정관 김복진 선생상,  동판 부조,  1995. / 사진=김준기

정관 김복진(井觀 金復鎭, 1901~1940)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예술가로서,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기진(金基鎭)의 형이기도 한 그는 한국 근대 조각의 개척자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1920-25)를 졸업하고,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했다. 동시에 경성여자상업학교, 경성공업학교 서울기독교청년회 청년학관 미술과 등에서 조각을 지도하며 한국의 조각계를 일궜다. 1923년에 도쿄에서 연극운동단체  ‘토월회(土月會)’를 조직했으며, 토월미술회를 만들어 조각 작업을 지도했다. 

그는  창작과 비평과 예술운동과 사회운동을 병행하며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유학시절에 <여인입상>(1924)으로 제국미술원전람회(제전(帝展))에 입선하였으며, 이듬해에는 <3년전>과 <나체습작>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1926년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여인>으로 특선하였다. 그는 1925년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하고, 이어 엠엘당(ML黨)에 가담하여 사회주의 예술운동과 정치운동을 하다가, 3차 공산당 검거(1928)로 6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 후 5년간의 집중 창작 기간에는 조선중앙일보사 학예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비평과 창작을 병행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목>, <불상습작>, <나부(裸婦)>(특선), <위이암(韋利巖)선생상>, <백화(白花)>, <소년>(특선), <다산선생상(多山先生像)> 등을 남겼지만, 전쟁 통에 모두 소실되었다. 1940년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5년동안 그는 <최송설당여사상(崔松雪堂女史像)> 다수의 기념 동상들과 <금산사 미륵대불>과 <법주사 미륵대불> 등을 제작하며 절정의 창작 성과를 남겼다. 

김복진 '소년입상' 재현 작품 / 사진=김준기<br>
김복진 '소년입상' 재현 작품 / 사진=김준기

이렇듯 근대적 예술 개념을 설파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김복진은 한국 근대예술의 선구자이다. 또한 그는 문학과 연극을 아우르며 예술단체 운동으로 장르간 교류를 주도한 융합의 예술가이다. 나아가 그는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병행한 사회운동가로서 독립운동과 정치운동을 실천한 사회예술의 선구자이다. 식민지시대를 살아간 운명적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예술 창작과 비평, 사회운동과 독립운동을 실천한 예술인으로 살아간 그는 해방 이후 분단과 독재 시기를 거치며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1990년대 이후 연구와 발굴 등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한국 조각의 선구자로서 위상은 청주에서의 전시를 통하여 작품의 계보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김복진, 근대 조각가의 탄생’, ‘해방 이후 구상 조각의 전개’, ‘조각의 확장과 분화’ 등 3부로 구성한 이 전시에는 윤효중, 김경승에서 류인, 구본주에 이르는 주요 작가들을 통하여 김복진으로부터 비롯한 한국 조각사의 계보를 보여주었다. 왜곡과 굴절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예술사에 있어 김복진만큼 뚜렷하게 운동가적인 삶을 통하여 작품과 제자를 남겨 예술과 사회의 진보에 영향을 끼친 예술가는 그리 흔치 않다. 예술과 사회를 아우르며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김복진은 조각계나 미술계를 넘어서 한국 근대기 정신문화사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복진을 기리는 선양사업은 김복진 가치를 재해석하고 동시대 정신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1995년대에 출범한 정관김복진기념사업회는 김복진 묘비 설치, 김복진 학술연구 및 출판 등을 통하여 잊혀진 선구자를 되살려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 김복진상운영위원회가 추진한 김복진상은 다수의 한국인 수상자를 비롯해 쿠로다 라이지, 키다 에미코, 표현의부자유전실행위원회, 후루카와 미카, 백름, 이나바 마이 등 일본의 연구자 활동가들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것은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빛내는 상의 수상자로 일본인을 선정함으로써 국가간 반일혐오를 넘어선 민간 차원의 친일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김복진 정신을 제대로 되살리고 김복진 정신의 지평을 확산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김복진과 한국의 근현대 조각가들' 전시 장면 / 사진=김준기<br>
'김복진과 한국의 근현대 조각가들' 전시 장면 / 사진=김준기

김복진을 따르는 제자들은 매년 8월 18일 기일을 맞아 김복진참묘 행사를 추진해왔다. 김복진 묘소는 충북 청주 팔봉산 자락에 있다. 김복진의 고향인 청주의 시립미술관은 올해의 김복진 관련 전시를 계기로 김복진 선양사업을 본격화한다. 기존에 민간차원으로 추진하던 김복진상은 올해를 끝으로 중단하고, 향후 청주시가 주도하는 김복진미술상을 추진한다. 식민지로 인한 전통과의 단절, 이후 분단으로 인한 이념적 단절 등으로 정신문화의 역사를 제대로 세우기 어려웠던 한국사회에서 김복진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이제 관과 민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민관협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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