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106) 김동현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의 0.6% 정도다. 하지만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70%가 오키나와에 있다.

0.6 vs 70

이 숫자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불평등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내 미군기지 주둔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패전국 일본이 종전 후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된 것은 한마디로 아이러니다. 한반도 분단에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맥아더가 이끄는 미국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오판도 한몫했다. (이 같은 사실은 <주한미군정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전 이후 미군 내에서는 웨스트포인트 출신과 비육사 출신 사이의 갈등, 여기에 국무성과 국방성의 견해 차이로 많은 갈등이 빚어졌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동아시아의 냉전 체제와 식민지 전쟁범죄의 미해결이라는 문제를 낳았지만 무엇보다 희생을 담보로 한 평화 체제를 존속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3조의 결정에 따라 오키나와는 미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행정, 입법, 사법권 일체를 행사하게 된 미국은 오키나와를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전략 기지로 간주하고 기지 건설을 강행한다. 토지수용령과 군용지료 일괄 지불이라는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한 미국 민정부(United States Civil Adminstration of the Ryukyu Island:USCAR)의 정책에 대해 오키나와인들은 ‘토지를 지키는 4원칙’을 내세우며 저항했다. 이것이 이른바 섬 전체 투쟁(島ぐるみ鬪爭)이다. 일본 본토의 평화는 오키나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주둔 이후 미군 범죄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1995년 미 해병대원의 소녀 성폭행 사건을 포함해 오키나와 국제대학 헬기 추락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1972년 일본 복귀 이후에도 미군 범죄는 여전했다. 후텐마 기지 반환과 헤노코 기지 이전 등 오키나와 미군 기지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오키나와에서는 이를 태평양 전쟁 중에는 오키나와를 ‘버려진 돌’ 취급을 했던 일본 정부가 이제는 ‘요석(要石)’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 본토의 평화를 위해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메도루마 슌은 ‘희망’이라는 짧은 단편에서 미군 소년 납치라는 충격적 장면으로 표현한 바 있다. 그것은 소설이 반인륜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 구조를 숨겨둔 채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12월 26일 열린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 한기호 의원) 회의에서 다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위 최종보고 및 건의사항' 문건에는 "북한의 핵공격 임박 시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전진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2월 26일 열린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 한기호 의원) 회의에서 다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위 최종보고 및 건의사항' 문건에는 "북한의 핵공격 임박 시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전진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최근 북핵 위기 대응을 위해 제주를 전략 도서화하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 전략 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건설과 핵무기 임시 저장 시설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면서 제2공항 건설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명시했다.

안보를 위해서라면 ‘제주’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이 같은 발상은 미국과 일본 정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 없는 평화’를 조장하는 행태나 다름없다. 일찌기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러시아 정부에 대해 톨스토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라는 추상적 집단을 절대화하는 경우, 국가 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토론이 사라지고 맹목적 국가주의가 자리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을 누구보다 혐오했던 톨스토이의 예언은 2차세계대전과 냉전, 신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톨스토이의 지적을 곱씹으면서 오키나와와 제주의 현재를 겹쳐 보다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안보와 평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오키나와의 현재는 제주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기시감. 이렇게 된다면 ‘평화’는 희생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언어적 모순일 수밖에 없다. 결국 평화의 가장 큰 적은 국가다.


# 김동현

문학평론가.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국문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국민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재일조선인 자기서사의 문화지리》(공저) 등이 있다. 한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주, 오키나와를 중심에 두고 지역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주MBC, 제주 CBS 등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사평론가로, 경희대학교 글로벌 류큐·오키나와연구소 연구원으로, 제주민예총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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