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이것을 문화 예산이라 말할 수 있는가

올해 제주도 문화 예산이 공개되었다. 제주도는 올해 문화 분야에 1783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문화 예산은 1653억원이었으나 올해는 1783억원으로 7.9%p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문화 예산이 늘었다는 것에 기뻐할 만하다. 새로운 도지사가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성숙한 행보를 한다고 칭찬할 만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라도서관, 도립미술관, 돌문화공원관리소 등의 예산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니 그 규모에 놀랄 필요가 없다. 더구나 예산 대부분이 시설 확충에 쓰인다고 하는데, 제주시민회관 135억원, 서귀포 시민문화체육센터에 101억원, 남원·표선 문화체육복합센터에 150억원 등 17곳의 시설 건축에 1000억원 정도가 쓰이는 모양새다.

웃기지 않는가. 이것을 문화 예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토목건축 예산이 아닌가. 앞에 나열했던 한라도서관과 도립미술관의 예산은 시설 운영예산이 아닌가. 왜 잡스러운 내역을 문화 예산에 집어넣고 제주도민을 속이고 있단 말인가. 제주도 17곳 도처에 체육복합시설을 만들고 제주도 전역의 도민을 위한 공평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이유가 선심성이라는 의혹을 피할 길이 없다. 다음 선거 대비용이라는 비난을 스스로 자처하는 행위다. ‘15분 도시 제주’를 주장하는 도지사가 꿈꾸는 지방자치 기반은 5~6곳이면 충분한데, 17곳의 근거지를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미 만들어진 체육복합시설을 보면 1년 10회 정도 행사가 있고, 나머지 조기축구회나 동호회만이 누리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늘 잠자고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제주도의 문화 예산 중에 생활문화기반 확대 예산도 결국 공공예술연습장 및 아트플랫폼을 만드는 리모델링 비용인데, 올해부터 완성까지 투입될 예산이 80억원이다. 반면 예술인 지원은 고작 20억원이다. 이것도 예술인 복지기금(총 100억원)으로 적립하는 예산이다. 예술인은 코로나19 여파로 굶어 죽어가는데 그 시급성을 느끼지 못하고 적립하고 있다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도 도가 지나치다. 문화향유 및 참여, 문화격차 해소에 예산을 책정했지만 이 또한 저급한 수준이다. 탐라문화제에 19억원, 제주국제관악제에 16억원을 배정한 것이 눈에 보이는 문화사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코로나19로 야기된 경제적 위기상황을 돌파하겠다는 경제적 의지는 읽히지만, 문화적 도약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처사다.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으로 누추하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당당해지는 것도 함께 필요한데, 그런 정신적 가치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이를 데 없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해외에 가지 못한 많은 관광객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에 기대어 위안을 받았고 힐링을 경험했다고 하는데, 정작 제주도 당국자들은 이런 제주의 가치에 대해 소극적이다. 

제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곳에 숱한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가 있고, 오래된 민속의 가치를 잘 보존했기 때문이다. 운명을 개척한 자청비 여신 이야기, 해녀들의 투지와 희망의 노래, 한 해의 풍요와 안전을 비는 입춘굿놀이, 그리고 숱한 본향당에 깃들어 있는 토속적 민속과 신화의 향기를 제주의 위대한 가치로 지켜온 슬기를 돌아보아야 한다. 도지사가 문화적 소신을 찾아 밝히고, 문화 관련 공무원도 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며 제주의 정체성과 가치를 찾는 한 해이기를 기대한다. 늘, 오래도록 제주도가 전통문화의 고장이면서, 세계 신화의 수도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문화를 지키려면 문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제주어와 제주 신화를 가르치고, 공무원 채용시험에도 제주어와 제주문화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우선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는 문화예술인을 위해 창작과 공연과 전시의 기회를 주고, 이 땅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치도록 제주도정의 손길이 펼쳐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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