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0) 외바늘귀 떨어지기 쉽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웨바농귀 : 외바늘귀, 단 하나뿐인 바늘귀
* 톧아지기 : 떨어지기, 상하기

단순히 바늘귀가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이를 인생사나 가족사에 빗대어 묘미가 도드라지다. / 사진=픽사베이<br>
단순히 바늘귀가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이를 인생사나 가족사에 빗대어 묘미가 도드라지다. / 사진=픽사베이

옛날에는 아녀자 행장 가운데 없어선 안될 필수품의 하나가 바늘이었다. 미싱(재봉틀)이 나와 보편화된 게 1950년대쯤일까. 백열구에 해진 양말을 넣어 팽팽히 해놓고 바느질하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못 살던 살림에 헌 옷가지며 구멍 난 양말 하나도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옷가지며 헌 양말을 기워 신는 데 없어선 안될 것이 ‘바늘’이었다.

바늘은 가는 데다 아주 작아 건사를 잘하지 않았다가 못 찾는 수가 허다하다. 게다가 거친 천을 꿰매다 귀가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바늘 허리 매어 못 쓴다’고 한 것은 아무리 바빠도 바늘을 제대로 쓰려면 귀에 실을 꿰어야 한다는 얘기이고, ‘웨바농귀 톧아지면’은 귀가 상해 버리게 됐다 함이다. 귀가 떨어지면 다시 못 쓰고 버릴 수밖에 없다. 

옛 시가에 침선(針線, 바느질 솜씨)이 고왔던 한 아녀자가 바늘을 부러뜨리고 슬프고 아픈 심회를 ‘아야, 아야, 바늘이야, 두 동강이 났구나’ 하고 노래한 <조침문(弔針文)>이란 시가가 오늘에 전한다. ‘오호애재(아, 슬프구나!)’, ‘오호통재(아, 가슴 아프구나!)’ 하고 바늘을 잃은 처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몇 백 년 전임에랴. 바늘이 얼마나 귀했겠는가. 그 시대에 여인에게 보물 같던 바늘을 부러뜨린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바늘귀가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이를 인생사나 가족사에 빗대어 묘미가 도드라지다. 운명이라는 것, 몇 대 독자라고 ‘홍야 홍야’ 하던 집안의 외아들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잖은가. 학교 행사에 참여했다가 잘못되는 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허구한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외아들’인가 말이다.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니, 이런 슬플 데가 있느냐고 참척(慘慽)이 하지 않는가. 사람의 소관이 아니라 힘이 닿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이런 슬픈 일이 적지 않아 많은 사람에게 회자(膾炙)되곤 한다.

농사지으면서 귀한 종자가 더 그르치기 쉽다고 한다. 귀하게 여기던 것을 잃어버리기 쉬운 건 묘한 노릇이다. 한데 그런 일이 허다하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조침문>에 나오는 ‘오호애재’, ‘오호통재’라 한 여인의 탄식이 귓전으로 들려오는 듯하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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