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26) 남명을 통해 교육을 본다 

서울로 올라가는 제자에게 학비를 받기는커녕 가난한 스승 남명이 자신의 유일한 소 한 마리를 줄 테니 타고 가라고 한 것이다. 약포의 앞서는 말이 해가 될 것을 염려한 남명은 느린 소를 타고 가면서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기를 바랐다. / 사진=픽사베이
서울로 올라가는 제자에게 학비를 받기는커녕 가난한 스승 남명이 자신의 유일한 소 한 마리를 줄 테니 타고 가라고 한 것이다. 약포의 앞서는 말이 해가 될 것을 염려한 남명은 느린 소를 타고 가면서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기를 바랐다. / 사진=픽사베이

천원 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은 남명(南冥) 조식과 자주 비교된다. 조선 중기 사상계와 교육계의 거목으로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퇴계는 34살에 문과 급제로 관직에 발을 들인 후 다양한 공직을 맡았다. 남명은 과거를 보지 않았기에 상례를 벗어난 특별대우로 불렀으나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8번 제수된 관직을 모두 마다하였으며, 임금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이런 남명을 퇴계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퇴계는 남명에게 편지를 보내 ‘벼슬하지 않은 것은 의를 잃은 것이다(不仕無義, <퇴계집> 가운데 <여조건중>).’라 하여 남명이 선비된 도리를 행하고 있지 않음을 비판하였다. 그러자 남명은 퇴계에게 답장을 보낸다. 

식(植)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고집부리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헛된 이름을 얻음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을 크게 속였고 또 그로써 임금에게까지 잘못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둑이라 하거늘, 하물며 하늘의 물건(훌륭하다는 명망)을 훔치는데 있어선 어떻겠습니까?(중략) 다만 생각건대, 공은 서각을 태우는 듯한 명철함이 있지만 식은 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탄식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름답고 문체 있는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눈병까지 있어 앞이 흐릿하여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명공께서 발운산으로 눈을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 <남명집> 가운데 <답퇴계서>

남명은 자신이 명성을 도둑질했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자격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자격 없는 이들이 벼슬길에 올라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는데 퇴계가 나서서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라고 말한다. 

요즈음 보니, 배우는 자들이 손으로는 물 뿌리고 청소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담론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 그로써 남을 속이려고 하다가 도리어 상처를 입고 또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니, 이는 아마도 선생같은 장로께서 꾸짖어 말리지 않은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야 간직한 것이 황폐하여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지만, 선생 같은 분은 몸소 상등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러러보는 사람이 참으로 많으니, 십분 억제하고 바르게 타이르심이 어떻겠습니까?
- <남명집> 가운데 <여퇴계서>

남명은 청소도 할 줄 모르는 이들이 나서서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일갈한다. 앎과 삶이 괴리된 이들이 나서서 공직을 맡을 때 세상이 어떤 꼴이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꾸짖지 않는 퇴계를 남명은 비판하고 있다. 비단 퇴계에게만 이런 글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왕에게까지 거침없이 말을 던진다. 남명이 명종에게 보낸 글은 요즘 시대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전하의 국사는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가버렸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백년 동안 벌레가 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 버린 큰 나무에, 회오리바람과 폭우가 언제 닥쳐올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지가 오래입니다. (중략) 궐 밖의 신하는 백성 벗기기를 들판에서 이리가 날뛰듯 하니, 피부가 다 해지면 털이 붙어 있을 데가 없다는 것도 모릅니다. 신이 이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깊이 탄식하면서 낮에 우러러 하늘을 본 것이 여러 번이었으며, 혀를 차고 눈물을 참으며 밤에 천장을 쳐다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자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구중궁궐 속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아들일 따름이니, 하늘의 온갖 재앙과 억만 갈래의 인심을 어떻게 감당하며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 <남명집> 가운데 <을묘사직소>

남명이 55세 때(명종10년)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왕에게 올린 글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설적인 문장이다. 폭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공직을 맡아 무얼 하겠느냐는 의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는 이들이 있다.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지방선거 이후에도 정무직이니 계약직이니 다양한 경로로 공직에 입문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이들이 명목상으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선 것일테지만, 지금까지 어공을 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금까지 어공이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체감한 탓일게다. 나설 때인지 물러날 때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직에 나서는 자세일 것이다. 해야 될 말을 하고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 

퇴계와 남명이 세상을 떠난 뒤 조선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남명의 제자들은 관직 없이 의병이 되어 왜적과 맞섰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있는 의병들이 대부분 남명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소위 말하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선조는 오히려 이들이 이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여겼는지 이들을 고사시켜나갔다. 하지만 나라와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의(義)’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이들은 후회가 없었다.

남명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에서 남명의 사상을 논하긴 어렵겠지만 가르침의 방식에 대해서는 간략히 소개할 수 있겠다. 남명은 퇴계와 달리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팔도에서 남명의 명성을 들은 이들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약포(藥圃) 정탁(鄭琢) 역시 남명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왔다. 남명은 정탁을 가르치며 그가 예사롭지 않음을 파악하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신유(1561년)에 공이 선생을 뵙고 수학하였는데 여럿 중에서 특별히 치켜세워 장려하고(推獎) 마음으로 인정하고 칭찬을(許與) 하셨다. 돌아감에 미쳐서 선생이 소 한 마리를 주시면서 타고 가게 하였다.
- <덕천사우연원록> 정탁

서울로 올라가는 제자에게 학비를 받기는커녕 가난한 스승 남명이 자신의 유일한 소 한 마리를 줄 테니 타고 가라고 한 것이다. 약포의 앞서는 말이 해가 될 것을 염려한 남명은 느린 소를 타고 가면서 삶의 태도를 새롭게 하기를 바랐다. 스승은 제자가 왜 소를 타고 가라고 하는지 그 까닭을 묻자 '그대는 말이 너무 급하니, 천천히 말함으로써 앞날을 기약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스승의 이런 뜻은 제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남명선생 못지 않은 많은 선생님들이 이 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바로 펼 수 있길 마음 깊이 바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가르친 그 선생님을 기억한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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