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일 세계습지의 날에 부쳐 / 김현지

2023년 세계습지의 날 공식 포스터. /출처=https://www.worldwetlandsday.org/
2023년 세계습지의 날 공식 포스터. /출처=https://www.worldwetlandsday.org/

“그런데 습지는 늪을 말하는거야?” 지난 설 명절 연휴, 오랜만에 제주에 방문한 서른 넘은 친오빠가 내게 물어왔다. 제주생태관광협회에서 근무하며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는 내게 답을 구하는 눈치였다. 말 그대로 축축한 땅인 습지는 강, 호수, 연못, 바다의 연안지역(간조 시에 수심이 6m를 넘지않는 해역), 늪, 삼각주, 산호초 등을 폭넓게 아우른다. 생명이 시작되는 땅인 습지,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온몸으로 온전히 느끼기란 참 어렵다. 어쩌면 바쁜 현대사회에서 ‘시간을 내어서’ 그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볼 기회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비함과 경이로움은 생각보다 가까이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그곳이 ‘습지’다. 제주에서 어느 습지를 가보면 좋을까? 그리고 습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제주의 대표적인 람사르습지(동백동산, 물영아리오름, 1100고지습지, 숨은물뱅듸, 물장오리오름)에서 습지를 제대로 만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며, 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동백동산의 대표적인 습지인 먼물깍. / 사진=(사)제주생태관광협회 제공
동백동산의 대표적인 습지인 먼물깍. / 사진=(사)제주생태관광협회 제공

하나, 조천읍 동백동산에서 소리 산책하기 

동백동산에 도착하면,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에만 집중해보자.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른 온도와 감각 속에서 그곳에 무엇이 살아 있는지 들을 수 있다. 눈을 감고 귀를 여는 순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들려온다. 고사리철에는 섬휘파람새의 노래가, 뜨거운 여름 동백동산에서는 팔색조가, 눈이 내리는 겨울 날에는 동박새가 말을 한다. 해가 저무는 시간, 풀벌레 우는 소리와 나무를 스치는 수많은 바람소리도 들려온다. 눈을 감으니 비로소 살아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물영아리오름 분화구에 있는 이탄습지. / 사진=(사)제주생태관광협회 제공
물영아리오름 분화구에 있는 이탄습지. / 사진=(사)제주생태관광협회 제공

둘, 물영아리 습지에 루페(확대경)를 가지고 가기  

이탄습지로 알려진 물영아리 습지. 습지 생물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루페도 도움이 된다. 루페로는 보통 이끼류를 관찰하는데, 습지 주변에 있는 돌과 바위 틈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관찰할 수 있다. 보통의 시선 아래, 우리의 시력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녹색의 생명체들의 세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고 미세한 숨들을 우리의 눈에 맞추어 드디어 보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 세심한 패턴과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1100고지 탐방로 끝 구간에서 촬영한 습지의 모습. ⓒ 김현지
1100고지 탐방로 끝 구간에서 촬영한 습지의 모습. ⓒ 김현지

셋, 1100고지 습지에 망원경을 가지고 가기 

1100고지 습지 주변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매, 검독수리, 황조롱이 등 커다란 맹금류들이 비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 넓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담대한 자유로움에 압도되는 순간, 그 생명체들의 생존과 삶을 위한 범위가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존이라는 것의 의미가 우리가 마주친 새 한 마리로 인해 그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새는 하늘을 날지만, 습지에 산다. 대부분 습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쉬어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찰해야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고, 향수나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2022년 11월,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 ⓒIISD
2022년 11월,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 ⓒIISD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에서 서귀포시가 새로운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됐다. ⓒ 김현지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에서 서귀포시가 새로운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됐다. ⓒ 김현지

2월 2일은 세계습지의 날이다. 올해 전 세계가 함께 내건 메시지는 ‘지금은 습지 복원을 위한 시간입니다’이다. 작년 11월, 제주시조천읍람사르습지도시지역관리위원회 전문지원단체 통역 자격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4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가했다. 9일 동안 열린 회의에서 람사르협약 당사국 정부 등 각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표단들의 목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이 가져올 환경적 결과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는 그 참혹함에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복원 활동을 위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그리고 생물다양성 감소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쟁과 침략으로 인해 환경의 파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22년 11월,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 ⓒIISD
2022년 11월, 제 14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 ⓒIISD
람사르협약에서 전 세계 청년들의 네트워크 강화와 근본적인 참여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Hugo Rafael Soares Ferreira의 모습. ⓒIISD
람사르협약에서 전 세계 청년들의 네트워크 강화와 근본적인 참여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Hugo Rafael Soares Ferreira의 모습. ⓒIISD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의 청년들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현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람사르협약 내에서 주도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해나가고 새로운 장을 형성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습지의 35%가 사라졌다고 한다. ‘보존’해야 할 습지마저 빠르게 사라져가는 시대에 ‘복원’이라는 과제가 던져졌다.

이러한 세계적인 외침 속에서 이곳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습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참히 베어져가는 나무들을 보았고, 숨 막히게 메워져버린 물 웅덩이를 보았다. 생명들의 소리는 사라져가고, 개발로 인해 수 많은 세계들이 파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귀를 기울이고,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는 일,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새해에는 새로운 눈과 귀가 열려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진정한 공존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 / 제주생태관광협회 팀장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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