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2) 용덕이 어머니 손으로 밥 쓸어 담아 먹듯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용덱이 : 용덕이 (철 모르는 아이)
* 어멍 : 어머니  
* 언주아 먹듯 : 쓸어 담아

1982년 12월 13일 제주 조천읍 교래리에서 촬영한 정지(부엌). / 사진=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br>
1982년 12월 13일 제주 조천읍 교래리에서 촬영한 정지(부엌). / 사진=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가난한 시절,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상상해 보라. 배가 등에 붙게 몇 날 며칠 굶었을 게다. 오죽 배가 고팠으며 그랬을까.

여기 등장한 용덕이는 철 덜 든, 조금은 모자라 의뭉한 어느 시골 사내아이일 것이다. 어린아이 젖 달라 칭얼대는 판인데, 그 어멍 앞으로 보리밥 한 낭푼(양푼)을 들이미는 손이 있다고 가정해 보라. 체면이고 무슨 치레고 할 경황이 있겠는가. 낚아채듯 낭푼째 앞으로 끌어다 숟가락 댈 것 없이 손으로 쓸어 입으로 담을 것이다. 

‘춘향전’에 암행어사가 돼 신분을 숨기고 남원으로 내려 춘향모 퇴기 월매와 해후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밥을 내놓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삽시에 먹어 치우지 않았는가. 이도령이 자기 행색을 숨길 양으로 거짓 연출한 장면이다. 효과는 100프로, 미래의 장모 월매, “아이고, 내 팔자야, 걸인 중에 상걸인이 되었고나.” 탄식했잖은가.

하지만 이건 소설 속의 얘기일 뿐이다.

배고프니 닥치는 대로 먹어 배를 불려야 용덕이에게 물릴 젖이 나온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먹어야만 한다. 밥을 먹어 치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게걸스럽기 짝이 없다. 게걸스러움을 넘어 ‘동물적’이다.

화산토라 토질은 박하지. 시도때도 없이 불어닥치는 바람과 흙이 타들어 가던 가뭄에 섬사람들은 굶주렸다. 물로 빈 재를 채웠다는 말이 사실이다.

1950년대만 해도 해가 짧은 겨울날엔 감저(고구마, 왜감)를 쪄 두세 개로 점심을 때웠다. 곯은 배를 속인 것이다. 그렇게 못 살았던 적빈(赤貧)의 시절이 있었다. 

풍요의 시대를 호강하며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 읽히고 싶은 글이라 생각한다. 나는 실제 그렇게 컸다.

‘용덱이 어멍 손으로 밥 언주아 먹듯 헌다.’

‘손으로 언주아’라는 말이 뒤에 나온 ‘먹듯’을 수식하고 있다. 기가 막힌 장면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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