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그루

‘무허가 인간문화재’, ‘유네스코 심방’, ‘MC푸닥’ 등 여러 수식어를 달고 다니면서 신화, 무속 등 제주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제주 작가 한진오의 새 책이 나왔다. 제주섬 근본인 설문대 할망의 흔적을 살펴본 탐사 에세이 《섬이 될 할망》(한그루)이다.

이 책의 부제는 ‘설문대루트, 신의 길을 찾아 나선 물음표의 순례’이다. 등경돌, 두럭산, 덩개빌레, 솥덕바위, 엉장메코지, 홍릿물, 외솥바리, 삼솥바리, 족감석, 범섬, 용연, 물장오리… 등 제주 곳곳에서 설문대 할망 설화를 되새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시곗바늘이 미래를 향해 척척 나아갈수록 내 고향 제주의 모습은 지나온 시간처럼 엷게 지워지고 있다. 어느 날은 어릴 적 뛰놀았던 언덕이 사라지고, 또 어느 날은 자맥질했던 바다가 빌딩 숲으로 변하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게 만드는 고향 지우기가 시간마저 추월하는 것 같다. 고향에 발붙여 사는데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이거나 나 또한 애초에 그런 곳이 없었다는 착란의 미망에서 벗어나기 힘겹다”면서 여정의 배경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가 태어난 곳은 어떤 곳이며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을 알면 번민도 사라지고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섬의 창조주 설문대할망을 만나기로 작심했다”며 “설문대의 전설과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샅샅이 뒤지다 보면 여신을 만날 수 있겠다. 그때가 되면 내가 이 섬에 태어난 이유는 물론 내 영혼의 정체에 대해서도 답해주시리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의문부호로 가득 찬 꾸러미를 메고 여신을 찾아, 고향을 찾아, 잃어버린 내 영혼을 찾아 오랫동안 이 섬을 맴돌았다”고 강조했다.

김녕 토박이들은 두럭산은 음력 3월 보름날이 오면 신비로운 자태를 가장 많이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봤자 산이라고 부르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막상 눈으로 보게 되면 실망할 사람들이 많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신화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성을 부여한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셀 수 없이 많지 않은가. 어쩌면 설문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려고 작고 볼품없는 갯바위에 신성을 불어넣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존재를 우러르고 함께 공생하라는 메시지야말로 설문대가 두럭산에 새겨놓은 신화의 속뜻은 아닐는지.

- 《섬이 될 할망》 71쪽


언젠가 사계리 잠수굿에서 제주섬이 설문대할망의 육신이라면 바람이 된 영등신은 설문대의 영혼이라며 파도 위에 새겼던 착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물음표는 달빛 서린 돈짓당의 언덕 위에서 사계리의 착상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열한 달을 다른 세상에 머물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월이 되어 찾아왔는데 영혼이 깃들 육신이 부서지고 무너졌다면 제주섬의 창조주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 돈짓당마저 사라지고 설문대의 영혼 바람할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제주섬은 어떻게 될까?” 

- 《섬이 될 할망》 203쪽

책은 설문대 할망 설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장소를 소개한다. 장소에 얽힌 옛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씁쓸한 현재 이야기를 아우르며 한진오 작가는 오늘 날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곱씹어야 할 '가치'를 전하고 있다. 설문대 할망과 제주섬을 표현한 책 표지 그림은 저자가 직접 그리면서 눈길을 끈다.

한그루 출판사는 책 소개에서 “할망의 자취를 더듬으며 순력한 제주섬은 더 이상 그 옛날, 할망이 만들었던 섬이 아니다. 파헤쳐지고 사라진 창조의 흔적처럼 물음표가 목도하는 것은 ‘제주다움’이 사라져가는 섬의 오늘”이라며 “결국 저자가 기다리는 설문대할망의 귀환은 제주다움을 찾은 제주섬이라 하겠다. 지난한 순례 속에 담긴 간절한 염원이 한 편의 ‘아름다운 굿’처럼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저자 한진오는 제주도의 굿과 신화를 바탕으로 희곡을 쓰거나 탈장르 예술창작을 벌이는 제주 토박이다. 지은 책으로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 인문지리서 《제주 동쪽》, 제주신화 에세이 《모든 것의 처음, 신화》 등이 있다. 

219쪽, 1만5000원, 한그루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