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3) 왼 도리깨는 메지 말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웬 도깨 : 왼쪽으로 하는 도리깨(질)

1970년대 제주에서 촬영한 도리깨질 모습 / 사진=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1970년대 제주에서 촬영한 도리깨질 모습 / 사진=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모든 일에는 보편성이 있고 순리(順理)라는 게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면 눈총을 받는 수가 있다. 눈에 거슬릴 뿐 아니라 상대에게 해가 되거나 어려운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왼손잡이란 말을 하는 것은 오른손이 보편적인데 특별히 왼손을 사용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을 쓰는 사람에 비해 까다롭다는 인식을 받기 일쑤다. 운동선수가 왼손잡이일 때는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탁구를 칠 때 공이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오기 때문에 공격에 애를 먹는다.

비단 탁구에 국한하지 않는다. 권투 선수들은 왼손을 쓰는 선수를 사우스퍼라고 해서 상대하기 힘든 상대로 규정할 정도다. 생각지도 않은 펀치를 퍼붓는 데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사우스퍼의 주먹은 무쇠처럼 강한 데다 전광석화같이 빠르다고 한다. 그런데다 소나기 펀치를 구사한다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아닌가. 왼손잡이가 강하기는 한 모양이다.

‘웬 도깨랑 메지 말라’

옛날 가을 추수기에 밭에서 베어 온 곡식을 마당에 널어놓고 타작(打作)을 해서 알곡으로 장만할 때 쓰던 기구가 ‘도깨(도리깨)’다. 요즘에 탈곡기가 나와 기계의 힘을 빌려 쉽게 해결하지만 예전에 도리깨질을 해야 했다.

긴 손잡이에 윤노리 나뭇가지 몇 가닥을 묶어 위아래로 돌리며 곡식을 후려치면 낱알들이 떨어져 나오게 하는 방식인데 그야말로 중노동이었음은 말할 것이 없다. 도리깨질을 할 때 마주 서서 번갈아 내리치는데 한쪽이 왼손잡이이면 십상팔구 둘이 부딪치기 일쑤이다. 이로 인해 손이나 팔에 부상을 입는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것도 대형사고. 왼 도깨 메었던 사람이 난처할 것은 말할 게 없다.

‘웬 도께랑 메지 말라’ 했지만, 왼손잡이 제 뜻대로 되는 것인가. 왼손잡이는 대개선천적인 것으로 여긴다. (요즘에는 왼손을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니 유전학적으로 어떤지 모르지만.)  

이것도 시대의 흐름인지, 아이 때부터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더니 공책에 글쓰기로 옮아가는 추세인 것 같다. 이도 사우스퍼가 많은 서양을 모방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옛날 도리깨질을 할 때 왼손잡이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순리를 벗어난 역동작으로 얼마나 힘들었으면, ’웬 도깨랑 메지 말라‘라고 ’말라‘에 잔뜩 힘을 주었을까. 

9할이 오른손인 세상에 몇 안 되는 왼손잡이가 돼 냉대를 당하다니. 이런 억울할 데가 있으랴.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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