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6) 익었는가 한 점, 설었는가 한 점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익어신가 : 익었는가
* 설어신가 : 설었는가
* 혼 점 : 한 점

어디 요게 익었는가 한 점, 아직도 덜 익었는가 하면서 한 점 먹다 보니 잡은 짐승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말더라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어디 요게 익었는가 한 점, 아직도 덜 익었는가 하면서 한 점 먹다 보니 잡은 짐승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말더라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사냥꾼들은 산에서 몇 마리 포획하면, 그것을 통째 어깨에 매거나 지고 오지 않고 현장에서 잡아 고기 맛을 보는 게 일반적 관행이었다. 옆에 조그만 냇물이라고 끼어 있으면 안성맞춤이었다.

짐승을 잡아 냇물에 활활 씻어 내서, 나무 삭정이며 검불에 불을 붙어 구워 먹게 마련이다.

갓 사냥해 잡아 구운 고기의 맛이라니. 그야말로 일미(逸味), 둘이 먹다 둘이 다 죽어도 모를 지경일 것이 아닌가. 처음에 생간 몇 점으로 시작한 게 앞다리 뒷다리 하며 구워 먹는다. 

맛이 맛을 부르니 쉬이 끊지를 못할 게 아닌가. 어디 요게 익었는가 한 점, 아직도 덜 익었는가 하면서 한 점 먹다 보니 잡은 짐승이 감쪽같이 없어지고 말더라는 것이다.

유사하게 쓰이는 속담이 있다. 희한한 표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익어신가 혼 점, 설어신가 혼 점 허단 보난 쉐 아홉 토매기 몰 아홉 토매긴다.(익었는가 한 점, 설었는가 한 점 하다 보니 소 아홉 토막 말 아홉 토막이다.)’ 

먹다 보니, 그 큰 소와 말이 각각 아홉 토막씩밖에 남지 않았다는 푸념이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도축(屠畜)해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했겠지만, 잘도 먹어 치웠다. 

가난한 시절, 오랜만에 고기 꼴을 구경했으니 그도 그럴 법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못 살았던 적빈(赤貧)의 나날이 있었다. 그런 궁핍 속의 삶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풍요를 이뤘으니 조상들에게 고개 숙여 큰절을 올려야 할 게 아닌가.

하긴 도박 같은 나쁜 습벽을 가졌다면, 한 번만 한 번만 하면서 손을 씻지 못해 그만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인들 왜 없었을까.

절약, 절제가 없이 낭비에 흐른다면 그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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