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8) 엄지손가락 귓구멍에 안 든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손꾸락 : 손가락 
* 귓고냥 : 귓구멍

 다른 손가락도 아닌 제일 굵은 엄지를 넣으려 한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엄지 척’이면 몰라도…. / 사진=픽사베이<br>
다른 손가락도 아닌 제일 굵은 엄지를 넣으려 한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엄지 척’이면 몰라도…. / 사진=픽사베이

옛날 코미디에서 ‘전봇대로 이빨 쑤시나 마나’라 해 웃긴 적이 있다. 이치에 닿지 않아도 어느 정도지, 전봇대로 어떻게 이를 쑤실 것인가. 천만부당한 이야기다. 웃기려 부러 꾸민 것일 뿐 도대체 실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엉뚱한 말이라 사람을 웃길 수 있는 경우다. 하도 기상천외한 일이라 ‘웃기고 있네’ 하면서 절로 웃게 되는 것이다. 얼토당토 않은 말이 진짜 사람을 웃기니, 사람의 심리란 알고도 모르는 것인가. 

옛 어른들이 새끼손가락으로 귀지를 우비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기 위해 새끼손가락 손톱을 깎지 않고 턱없이 길게 놔뒀다. 귓구멍에 귀지가 차면 얼마나 간지러운가. 한밤중 꿀잠을 깨워 놓는 게 간지럼증이다. 

그때 새끼손가락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귓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게 새끼손가락이네, 길게 자란 손톱이 귀를 우벼 파낸다. 두세 번이면 끝!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새끼손가락이 가는 데다 끝에 알맞게 자란 손톱이 한 구실을 해내는 것이다. 생활 속에 번득이는 지혜다.

어거지를 써서 안 되는 게 엄지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으려는 일이다. 물론 간지러우니까 귀지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다른 손가락도 아닌 제일 굵은 엄지를 넣으려 한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엄지 척’이면 몰라도….

‘엄지손꾸락 귓고냥에 안 든다.’

당연하다. 무리는 통하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될 일이 있고, 아무리 버둥대도 되지 않는 일이 따로 있다.

무리가 통하지 않음을 빗대 하는 말로 이 이상 ‘이치에 통하는 말’이 또 있을까. 난해한 경우를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잘도 풀어놓았지 않은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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