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제주도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 멈춰야 한다

오늘은 제주4.3 75주년 추념일이다. 세계인권선언도 역시 75주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상의 한편 작은 섬에서 학살이 시작될 즈음, 세상의 어느 다른 한편에서는 온갖 비인간적인 역사를 반성하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고 모두의 고민을 담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을 공표하고 있었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자 최대 인권침해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75주년이 되도록 우리는 아직도 4.3을 정의롭게 추념하고 있지 못하다.

이번 4.3 추념식을 겨냥한 혐오와 역사 왜곡 주장을 담을 현수막이 제주 전역에 걸렸었다. 정당 현수막이라는 핑계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며, 제주도민들에 대한 혐오하는 표현을 마냥 내버려 두었다. 이에 제주도민들은 크게 분노하였고 사회 각계에서 비판 성명이 폭주하였다. 결국,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눈앞의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오늘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주에 상륙한다는 공지가 온라인에 떠돌고 있고, 4.3 추념식장 앞에서 집회를 연다고 한다.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이념을 광신하는 자들은 그 역사적 사건에 자기 이념에 편향된 행위를 한다. 그 광신적 이념의 칼날은 너무나 날카로워,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 무참하게 사람들의 삶을 베어냈다. 흐르는 피와 불타는 마을은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조차 화상을 입히고 공포를 심었다. 그들의 이름이 ‘서북청년단’이다. 그런데 역사왜곡과 혐오도 모자라, 이 서북청년단의 이름이 버젓이 제주에서 집회를 갖는다니... 4.3 단체의 분노는 당연했고, ‘폭력’이라는 강제력을 써서라도 이들을 막겠다는 입장도 감정적으로는 공감이 된다. 이에 경찰은 물리적 충돌을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혐오의 표현이 민주주의의 표현의 자유로 포장이 되고, 혐오와 차별적 언행에 아무런 제지가 없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현상의 온전한 축소판이 벌어진 듯하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자당의 최고위원에 도전하면서, 제주에 내려와 당당하게 4.3을 북 김일성의 사주로 일어난 공산폭동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를 사과하거나 정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북에 그리 배웠고,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했다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했다. 북에서 배운 것을 남에서 그대로 진실인 양 이야기한다. 그렇게 북에서 가르쳤고 그렇게 배운 것을 남에 전파를 한다면, 바로 그런 행위야말로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오히려 국민의힘은 그를 최고위원으로 선출하였다. 대통령은 또 어떤가? 그렇게 바쁘다는 일정 속에서도 야구장에는 가지만, 한국현대사의 최대 질곡, 역사적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할 그곳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아니 아예 비칠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과연 누가 4.3의 역사에서 최고의 빌런인 ‘서북청년단’을 소환했을까?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장을 했다. ‘악의 평범성’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행하는 행동에 악마적 행위가 스며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악마적 행위를 정당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즉 그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도록 조장하고 만든 사회 권력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한, 그는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이 재판을 한 개인에 대한 재판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아이히만의 재판은 역사 전체에서 드러나는 왜곡된 역사인식, 즉 반유대주의에 대한 재판이라고 보았다. 

제주 4.3의 75주기 추념일이다. 역사를 정의롭게 기억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야 한다. 제주도민에 대한 차별의식은 ‘제주도 전체에 기름을 부어 모두 불태워 버리라’는 발언 등과 같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면 비인도적 언행도 거침없이 내뱉게 했다. 북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평범한 이들에게 살인과 같은 광란의 행위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그리고 75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도민들을 공산 폭도의 후손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 안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인식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제주 4.3에 대한 왜곡과 혐오를 멈춰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권력이 진정성을 다해 사과하고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제주도민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우리사회가 가진 레드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4.3은 정의롭게 기억되고 추념 되어야 한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제주의소리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제주의소리

‘빨갱이’라는 혐오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제주는 4.3이라는 역사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섬이라는 교훈을 얻지 않았나 싶다. 제주4.3 75주기 추념식에 큰 물리적 충돌이 없기를 바란다.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올해 4.3 추념식이 되길 빌어본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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