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집] 무등이왓에서 빚은 고소리술, 4.3영령 넋 기리다

4.3 제75주년을 앞둔 지난달 14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기증식이 열렸다. 이 선물의 정체는 4.3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서 주민들과 예술가, 도민 참가자들이 함께 빚은 고소리술이다. 토벌대에 의해 불타 사라져 ‘잃어버린 마을’로 불리는 무등이왓에서 함께 조를 키우며 전통방식으로 함께 담은 결과물이다.

선물을 전달받은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기증된 고소리술에는 4.3의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며 “4.3영령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프로젝트는 2021년 시작됐다. 제주도의 후원으로 제주민예총, 탐라미술인협회, 예술로제주탐닉 참가자들과 동광리 주민들은 무등이왓에 조를 심어 키웠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 조를 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 조를 심고 있다. ⓒ제주의소리
동광리 주민들과 예술로 제주탐닉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동광리 무등이왓에서 직접 조를 기르고 수확했다. ⓒ제주의소리
동광리 주민들과 예술로 제주탐닉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동광리 무등이왓에서 직접 조를 기르고 수확했다. ⓒ제주의소리

함께 무등이왓 한복판에 씨를 뿌리고, 코사(제사)를 지내고, 잡초를 뽑으며 정성을 들였다. 당시의 의미를 나누는 강연과 넋을 달래는 공연이 열렸고, 전통주 명인과 함께 과거 방식대로 술을 내렸다.

술의 마지막 숙성 과정인 술들이기는 12월 큰넓궤 안에서 50일간 진행됐다. 큰넓궤는 동광리 주민들이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약 50일간 숨어살던 동굴이다. 당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고통의 시간을 희망의 시간으로 바꾼다’는 취지다.

‘조농사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해본 적은 없는 분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동광마을 삼촌들과 함께 씨도 뿌리고 검질도 매며 작년에 수확한 좁씨를 뿌렸습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과 거친 태풍을 견뎌낸 조는 가을이 되어 누런 알곡을 맺었습니다. 
저희는 조를 거둬들이고 제주의 옛 전통을 따라 ‘고소리 술’을 빚었습니다. 

동병상련,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한다고 합니다. 
이제 위로를 넘어 희망을 기원하는 동병상원의 마음으로 이 술을 4·3 희생자 영전에 바치고자 합니다. 

비록 한 날 한 시의 아픔은 아니지만, 한 날 한 시의 희망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 고소리술에 동봉된 참가자들의 편지 중에서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낸 선물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정은 큰넓궤 술들이기. 4.3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피난처로 삼아 약 50일간 지냈던 큰넓궤에서 고소리술을 50일간 숙성시켰다. ⓒ제주의소리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낸 선물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정은 큰넓궤 술들이기. 4.3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피난처로 삼아 약 50일간 지냈던 큰넓궤에서 고소리술을 50일간 숙성시켰다. ⓒ제주의소리
무등이왓에서 자란 조로 만든 고소리술은 제주4.3평화재단을 통해 제주 곳곳의 4.3위령제와 5.18인권단체에 전달된다. ⓒ제주의소리
무등이왓에서 자란 조로 만든 고소리술은 제주4.3평화재단을 통해 제주 곳곳의 4.3위령제와 5.18인권단체에 전달된다. ⓒ제주의소리

이렇게 만들어진 술 60병은 제주4.3평화재단을 통해 제주 곳곳에서는 열리는 4.3위령제와 5.18인권단체에 전달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연중기획 ‘예술로 제주 탐닉’의 일환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예술을 통한 사회적 실천인 동시에 다양한 이들이 모여 교감하면서 4.3을 기억하는 과정이다. 기꺼이 자신의 땅 200평을 내준 주민부터, 70여년 전 아픔을 딛고 살아남아 술 빚기에 함께 나선 유족들, 그 의미를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 예술가들, 농사는 잘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도민 참가자들 모두의 마음이 깃들었다.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죽음의 땅을 새로운 기억으로 만들고 싶고, 살아 움직이는 기억의 현장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의 바람이 있었다”며 “죽어가버린 영혼들에게 정성으로 술을 빚어서 올리는 일이 그들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기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전했다. 

이상준 동광리장은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해서 염원과 정성을 담고 많은 분들이 공유한다는 의미가 크다”며 “4.3으로 돌아가신 분들, 상처입으신 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전달식. ⓒ제주의소리
지난 14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린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전달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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