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 후기

1994년 1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해마다 개최되어 온 4.3미술제가 올해 30회를 맞았다.

탐라미술인협의회(현재 탐라미술인협회, 이하 탐미협)가 1993년에 창립된 이래 4.3미술제 개최는 탐미협 활동의 구심점이었다. 탐미협 회원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4.3미술제는 21회(2014년)부터 좀 더 뛰어오르기 위해 외부 전시 감독 도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참여 작가와 기획 평론 인력의 폭은 이전보다 넓고 다양해졌다. 새로운 만남, 낯선 대화, 다른 생각들은 서로 서로 자극이 되었고, 4.3미술제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또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인 것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개최된 4.3미술제 그리고 30회를 맞아 준비된 연계 행사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다. 나 또한 최근 10년 동안 4.3미술제를 관람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관계하면서 가슴에 품게 된 “4.3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목마름의 수요를 증명하듯 행사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붐볐다.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lt;기억·저항·평화&gt;는 4월을 여는 첫 날, 제주시소통협력센터 5층 다목적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최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는 4월을 여는 첫 날, 제주시소통협력센터 5층 다목적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최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는 4월을 여는 첫 날, 제주시소통협력센터 5층 다목적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최됐다. 강요배(작가)의 짧은 발표로 문을 연 1부 ‘기억’에서는 김종길(미술평론가)과 홍지석(미술사가)이 4.3미술제 30년을 되짚어 주었다. 

2부 ‘저항’에서는 최태만(미술평론가)이 ‘국가폭력과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미얀마의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발표가 있었고, 홍콩에서 온 작가이자 기획자 리춘펑(李俊峰, LEE Chun-Fung)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기’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3부 ‘평화’에서는 김준기(광주시립미술관장)의 평화예술론, 오키나와현립 공문서관 아키비스트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는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TOMIYAMA Kazumi)가 오키나와에서 진행되었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평화예술에 대한 사례 발표를 했다. 

그리고 박경훈(작가), 이병희(기획자), 고승욱(작가), 김범진(문화공간양 대표), 양진호(인문학교육연구소장), 김동현(문학평론가) 총 8명이 지정 질의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발표와 질의응답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관객 질의응답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역사화(歷史化)’ 넘어서기

’4.3미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왕왕 있었다. 특히 자료가 많지 않은 1990년대부터 16회(2009)까지 전시 서문과 평론 등을 도맡은 故 김현돈 미술평론가의 글들이 소중하다. 김현돈은 4.3미술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양식과 표현 매체를 빌어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미술”(15회, 2008)이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초기 4.3미술제의 기획과 평론으로 적극 참여했던 김유정은 꾸준히 역사화, 역사미술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주며 4.3미술을 역사미술로 분석한다. 김유정은 이후 23회 4.3미술제 예술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에도 <새도림-세계의 공감>(2016) 전시 서문과 강의를 통해 4.3미술을 “역사를 다루는 미술”로 정의하고 싶어했다. 

또 2004년 박경훈이 발표한 글 <미술이 만난 역사 - 제주4.3미술운동의 역사와 현재>가 있다. 이 글은 당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와 제주4.3연구소의 공동 연구의 결과 《기억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2004, 역사비평사)의 한 꼭지다. 이는 학술장에서 발표된 4.3미술 분석을 시도한 최초의 글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한 글로서 끊임없이 소환되고 각색되어 곳곳에 등장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2004년 이후에도 4.3미술에 대한 학술적 접근과 진지한 분석이 부재 했다는 뜻이다. 박경훈은 이 글에서 4.3미술을 “4.3을 주제, 소재로 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정의했고, 4.3진상규명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미술 운동이자 역사미술로 분석한다. 

컨퍼런스 1부에서 발표한 홍지석 미술사가는 4.3미술을 역사미술로 규정하는 입장에 주목하고 있었다. 앞에서 훑어본 바와 같은 화법으로 전시 팸플릿과 도록 등의 자료를 성실하게 검토하여 발표했다. 그는 분절된 사건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맥락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욕망일 뿐이라며,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4.3미술제의 복합적인 성격을 짚어내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4.3미술이 무엇인가 정의하고자 하는 갈증은 4.3미술제가 외부 전시 감독제를 도입하고 국내외로 소개되면서 더욱 늘어났다.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함께 증가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할 이론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외에 소개되는 대명사 ‘Minjung misul(민중미술)’처럼, 공통된 경향성을 가진 하나의 갈래로서 ‘4.3미술’을 정의내리고 그 가치를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제25회 4.3미술제에 출품한 강문석의 &lt;숨&gt;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8년 제25회 4.3미술제에 출품한 강문석의 <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8년 제25회 4.3미술제에 출품한 오석훈의 &lt;국가테러-재판은 없었다&gt;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8년 제25회 4.3미술제에 출품한 오석훈의 <국가테러-재판은 없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지만 지난 시기 4.3미술을 역사화(歷史畵), 역사미술 혹은 미술운동, 제의 등으로 조명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밀접하게 소통 교류 동행하며 횃불처럼 타올라 그 역할을 다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모두 해소된 ‘민중미술’과 달리, 4.3미술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21회(2014)부터 참여작가의 폭은 국내외로 대폭 확장되었고, 2018년 4.3 70주년에는 국가 주도의 기념 사업으로 인해 제주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4.3미술 전시가 개최 되는 중이다. 4.3에 관심 갖는 작가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 성격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최근 10년 동안 4.3미술제는 인권, 반전, 평화, 생명, 정치, 사회, 연대 등의 확장된 가치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특히 2018년부터 현재까지 4.3미술, 4.3예술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쓴 김준기는 사회예술, 현장예술의 성격을 주목하고 평화예술로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4.3미술제에 출품된 작품들, 혹은 4.3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4.3미술이 무엇인가’ 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많은 미술평론가들은 4.3미술제가 ‘제의’적 성격을 가진다고 분석한 것에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참여 작가와 관계자들 모두 비정상적인 죽음들을 다시 생각하고 추념하는 장으로서 전시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성격들은 그 내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4.3진상규명운동과 희생자명예회복운동에 복무하는 미술로서 4.3미술제의 사회운동적 성격은 희미해진지 오래다. 역사미술로서 4.3미술 또한 마찬가지다. 4.3미술제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중에 보편적 의미의 역사미술에 부합하는 작품은 그 비중이 매우 적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4.3미술제가 탄생되기 전, 1992년에 발표된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이 역사미술로서 4.3미술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강요배의 그림은 4.3을 공부하는 현장에서 여전히,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1994년부터 현재까지, 4.3미술제 출품작들은 하나의 갈래로 묶을 수 없다. 4.3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창작된 것들이지만, 그 주제와 내용은 동시대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폭력에서 자기 성찰까지 다양하며 그 표현 방식 또한 구상, 추상 뿐만 아니라 설치, 영상까지 다양하다. 어느 해에는 4.3을 마주한 육지 작가가 그 무게에 짓눌려 끝내 작품을 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메모가 전시되기도 했다. 또 어느 해에는 왜 출품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던 작품들도 있다. 아무리 그 의미를 확대해서 포용하려고 해도 역시, 역사미술이라는 단어로 4.3미술을 묶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4.3미술제는 4.3 관련 정세에 따라 그 성격도 함께 변화해왔고, ‘미술운동’으로 평가하기에는 미술사적 측면에서 진일보한 내용과 형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 ‘민중미술’의 한 갈래로 분석하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4.3미술제의 특수성이 너무나 뚜렷하다.

컨퍼런스에서 기조 발표를 맡은 강요배 작가. / 사진=양동규
컨퍼런스에서 기조 발표를 맡은 강요배 작가. 

그래서 다른 질문이 필요해졌다. ‘4.3미술’을 정의하고자 하는 갈증은,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강요배(작가)와 김종길(미술평론가)의 발표에서 출구를 찾는다. 김종길의 말처럼 “기존의 언어를 내려놓고, 다시 파고 들어가봐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만 새로운 언어로서의 미술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강요배는 15분 남짓한 짧은 발표 중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작가들은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드러내려면 반성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깊이 보고 느끼고 있는지, 한계에 부딪힐 때면 왜 한계를 갖게 되었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이런 것들입니다. 또 이것들을 시각화 해야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 준비 중에는 상당한 고통이 따릅니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왜 또 해야 되느냐 질문하게 되고, 압박감도 반드시 따라오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4.3미술제입니다. 작가마다 아주 지혜로운 방법으로, 슬기롭게, 자신의 시각에서 30년 동안 생각하고 나타낼 수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연구를 필요로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평화와 인권, 진실 등과 같은 사회적 성취 보다도 예술적 성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술가로서 어떠한 일을 했나, 그것이 성취한 바가 무엇인가, 나의 흔적은 어떤 모습인가, 한 개인이 예술가로서 이 사회적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 어떻게 처리 했는가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서 어떤 내적 확립이 있었는가, 작가 개개인이 어떤 억압에 놓여 있었나, 어떻게 스스로를 해방시켜 나갔나 이런 측면들이 좀 더 포착되어서 예술적 성취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좋은 예술이 되어야만, 결과적으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인지, 예술인지 나눠보기 전에 우리가 한 일들을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김종길은 글과 말로 술수를 부리는 술사로서,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발표를 했다. <‘있다시 온’에 다다른 ‘옛다시 가온’이기를>이라는 글을 짓고 낭독했다. 오랜 시간 천착 했던 한글 연구, 뜻 글자로서 홀로 섰던 옛 한글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는 실천이다. 익숙하고 편한 언어가 아닌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실천이다. 그리고 이 불편하고 아름다운 고어 속에 회오리 바람을 담았다. 다음은 그의 발표 중 일부다.

컨퍼런스 모습. ⓒ제주의소리
컨퍼런스 모습. ⓒ제주의소리

“서슬 퍼런 칼날이 날벼락으로 쏟아지는 들깨움 없이는 ‘뒷하늘’도 없고, ‘다시 개벽’도 없을 것입니다. (…) 30년을 잇는 4.3미술제의 작품들로 파고들어 아침놀을 맞이해야 합니다. 갈라치기로 쪼개는 온갖 서로 서로 서로를 끊고 넘어서서 새 하늘을 열어야 합니다.(…) 폭력의 실체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예술의 상징 투쟁은 ‘칼에는 칼’이라는 대항 폭력을 초월하는 비폭력의 승화, 곧 인간 정신의 높은 미의식 활동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는 발표에서 동학농민혁명, 이재수의 난, 4.3의 역사를 만들어낸 항쟁의 ‘불숨’을 환기했다. 그 불숨 속에서 ‘글로 튼 숨비소리’ 현기영의 <순이삼촌>과 불숨을 품고 1988년 창립한 그림패 바람코지, 그리고 불숨 그린 ‘그림숨’ 강요배의 <제주민중항쟁사>를 언급하며 질문하고 있었다. 4.3미술제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불숨’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앞으로 펼쳐질 4.3미술제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갈 질문들이, 날벼락같은 들깨움이 무엇인지 말이다.

※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성취의 진자운동’이라는 제목은 종합토론에서 김종길 미술평론가의 “4.3과 미술이라고 하는 이 두 개의 축이 진자운동한다”는 표현에서 따왔다. 사회적 역사적 현장에 동행하며 그 내용을 다루는 예술 활동들은 항상 긴박한 정세라는 물리적 제약과 예술적 표현이라는 작가의 숙명 사이에서 진자운동한다. 진자운동하지 않는 표현은 반드시 어느 한 쪽의 비판을 받게된다. 김종길은 “4.3이 때로는 미술을 밝으면서도 컴컴한 것으로 봐야하고, 미술이 4.3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밝고 컴컴한 것이라는 두 개의 축이 서로를 향해서 갈마들 때 새로운 예술이 틀 수 있다. 이 지점이 30주년인 지금의 화두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박민희

시각예술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와 역사 읽기에 흥미를 갖고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2회 4.3미술제 <얼음의 투명한 눈물>(2015) 아키비스트로,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2018)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017년에는 4.3미술제 아카이브 웹페이지를 기획 제작했으나 2018년 이후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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