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0) 3,4월 웅마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웅매 : 웅마, 수컷 말

활력에 넘치는 웅매를 기상이 가히 볼 만한 볼거리였는데, 풀을 뜯다 갑자기 ‘으으흠푸푸’ 하며 앞발을 곧추 세울 때 목 위의 갈기까지 쭈뼛 일어서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삼사월 웅매의 활기 찬 모습이었다. / 사진=픽사베이
활력에 넘치는 웅매를 기상이 가히 볼 만한 볼거리였는데, 풀을 뜯다 갑자기 ‘으으흠푸푸’ 하며 앞발을 곧추 세울 때 목 위의 갈기까지 쭈뼛 일어서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삼사월 웅매의 활기 찬 모습이었다. / 사진=픽사베이

3,4월은 새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다. 널따란 초원에 새로 돋아난 풀들로 질펀한 데다 일 년 중 짝짓기하기 좋은 절기다. 너른 풀밭에 방목한 말들, 특히 수놈은 울음소리부터 다르다. 어디서 솟아난 힘일까. 심지어는 앞발로 땅을 차며 아우성치듯 기이한 소리로 ‘어어흥 푸 어어흥 푸푸’ 격한 콧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트린다. 

온몸이 넘치는 기운으로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다. 소년 시절 농촌에서 봄에 한참 뽑아 먹던 삘기를 찾아 야산은 돌다 웅마가 생식기를 꺼내 힘차게 제 배를 두드리는 장면을 많이 봤던 기억에 실실 웃음이 난다. 물건(?)이 얼마나 컸던지 그리고 얼마나 꼿꼿이 발기됐던지 움칫 놀라면서도 한편 신기했다. 자라면서 그게 바로 봄철이 말의 교미철이라 웅매의 그것이 요동을 친 거란 걸 깨닫게 됐다. 본능의 자연스러운 발로였고, 그게 바로 짐승들이 지니고 있던 야성(野性)이었던 것이다.

참 어이없게도 농부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띠었던 것이 아닌가. 겨울 한철을 막 지나 양식이 바닥이 날 때다. 3,4월 보릿고개라 하지 않는가. 제주에선 항아리를 채웠던 좁쌀이 다 떨어지고 구황작물로 거둬들여 갈무리했던 감저(고구마)까지 품귀해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보릿고개의 기근(飢饉)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풍월일 뿐 실감하지 못한다. 

산에 나는 새순이며 열매는 말할 것 없고, 무릇을 파다 고아 먹었는가 하면 바다에서 나는 톨(톳)을 캐어다 좁쌀에 섞어 톨밥(톳밥)을 지어 먹어 고픈 배를 달래야 했다. 한데 말 중에도 특히 웅매는 파랗게 자란 풀밭에서 배불리 먹을 뿐 아니라 욕정을 채울 궁리나 했으니 이런 불공정이 없다.

봄철이 되면 억세고 거칠어지는 웅마의 생태를 아주 짧게 한마디로 직설했다. 자칫 잘못 다뤘다 뒷발에 차이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특히 말 관리에 익숙지 못한 어린 아이들에게 위험했다.

‘삼사월 웅매’

활력에 넘치는 웅매를 기상이 가히 볼 만한 볼거리였는데, 풀을 뜯다 갑자기 ‘으으흠푸푸’ 하며 앞발을 곧추 세울 때 목 위의 갈기까지 쭈뼛 일어서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삼사월 웅매의 활기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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