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1) 잘해도 한 곳 흉, 못해도 한 곳 흉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혼 구숭 : 한 곳 흉, 한 가지 흉

인간사란 게 호락호락한가. 일을 잘 치른다고 갖은 정성을 기울여도 뒷말이 따르게 마련이다. 제일 말이 많은 게 잔치 같은 대사(大事)를 치르고 난 후일 것이다. 신부 뒤에 이불을 몇 채밖에 안 했다고 하더라, 신접살림 나는데 차려 보낸 게 뭐가 있었더냐. 별것 없더라고 하더라, 집에서 클 때 부릴 만큼 부렸으면 출가외인이 되는 마당에 살아가게 해주어야지, 안됐다, 안됐어.

또 잘해 주면 무얼 그렇게 염치없이 퍼 주었느냐, 말이 무성하다. 분수도 모르고 행세했다든 공론이 나오게 돼 있다.

그러니 이런저런 뒷이야기에 신경 쓸 것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따라 소신껏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이다. / 사진=픽사베이
그러니 이런저런 뒷이야기에 신경 쓸 것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따라 소신껏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이다. / 사진=픽사베이

이러쿵저러쿵 참 말도 많고 이것저것 흉도 많은 세상이다. 큰일을 치르는 집에서야 잘해 주려고 챙기고 점검하면서 세밀히 정성을 기울였을 것 아닌가. 하다 봐도 빠지고 공을 들이노라 해도 모자란 게 사람의 일이다.

한데 남의 일 아닌가. 남이 치른 잔치를 가지고 두셋만 모이며 말들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일이란 게 하다 봐도 빈구석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뒷이야기에 신경 쓸 것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따라 소신껏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세상이다. 잘해도 잘했다고 하기보다 못한 점만 들춰내는 데야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말전주한다고 한다. 남의 말을 이곳저곳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우물가에서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몰리는 그런 입버릇을 가진 사람이 있게 마련. 심심하게 들은 말에 어느새 날개가 돋쳐 천릿길을 한걸음에 날아가게 된 것이 ‘구숭’ 곧, 남의 흉을 보는 것 아닌가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세상에 흉잡히지 않을 일이 하나도 없으리라. 말이 많다 한다. 그게 태반이 자기 말이 아닌 남의 말이다. 흉보는 말은 끝내 불화(不和)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동네, 한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흔들어 놓는다면 이런 불상사가 있으랴.

‘잘해도 혼 구숭, 못해도 혼 구숭’

흉잡히지 않는 일이 없음을 되새겨, 남 흉보는 일을 삼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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