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32) 당사자로서의 학생은 존재하는가?

김광수 교육감. / 사진=제주도의회 누리집
김광수 교육감이 최근 제주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 사진=제주도의회 누리집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4.19혁명 기념사를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전체주의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됩니다.”

4.19혁명은 독재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가공권력을 동원한 폭력 진압에 맞서 싸운 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혹은 인권 운동가로 위장한 이들이라는 분석이다. 민주주의 운동가라는 말은 그 의미를 모르겠고, 인권 운동가라는 단어를 듣곤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인권 운동가들이 떠올랐다. 왜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인권 운동가를 거짓과 위장 세력으로 보았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나선 격렬한 모습을 기억하면 이런 발언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차별에 저항하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2021년 12월부터 줄곧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진심으로 비쳤다. ‘진심어린 행동’과 ‘거짓과 위장’이라는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앞서 인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통해 살펴보자. 대통령의 발언은 “거짓 선동과 날조”라는 말의 내용과 “운동가 행세”라는 말의 주체로 나눠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부터 지금까지 가짜 뉴스를 자주 언급했다. 가짜 뉴스 논란은 최근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 한일정상회담에 관한 일본 내 언론 보도내용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공개된 <로이터>와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해석 등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통령의 가짜 뉴스 발언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달 초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구축하고 네이버, 다음 등과 협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가짜 뉴스로 1조원을 배상하게 된 폭스뉴스를 언급하며 단죄론에 힘을 싣고 있다. 

대통령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가짜 뉴스가 정부의 성과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억울한 감정이 들 수 있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의 중심에 있다는 걸 감안하면 누구보다 미디어에 가까이 있는 이가 대통령이다. 가짜 뉴스가 나올 수 있지만, 가짜 뉴스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자성하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보도가 있다면 반박하고 밝히면 그만이다. 언제나 반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대통령과 정부가 가짜 뉴스를 단죄하겠다는 것은 자칫 언론 검열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본인들의 의도와 다르게 가짜 뉴스를 거르는 것이 아닌 입맛에 맞는 뉴스를 찾겠다는 의도로 읽힐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 속성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대통령이 가짜 뉴스의 피해자가 된다는 말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다음으로 “운동가 행세”라는 말에 등장하는 주체들 가운데 ‘민주주의 운동가’는 많은 언론이 민주당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넘어가야 할 것 같고, 여기선 ‘인권 운동가’라는 주체가 왜 등장했는지만 짚어보자.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의미한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특별한 혜택이나 배려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4월 20일 장애인의 날도 장애인을 위한 날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기억하고 행동하자고 한다.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인권에 주목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권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차별, 장애 차별, 인종 차별 등 차별이 우리 사회에 여전하기 때문에 이런 차별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드러내고 싸우는 과정에 ‘차별을 금지하는 관련 법’들이 가지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인권 운동가 행세 운운은 자칫 우리 사회의 차별을 구분하고 나눌 우려가 크다. 어떤 차별은 정당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의미다. 세상에 어떤 차별도 정당할 수 없다.

제주에는 몇 년 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다. 최근 제주학생인권조례에 따른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 학생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자는 조례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김광수 교육감은 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정말 지금도 충분한지 돌아보자. 

지난해 만난 지체장애인과 대화를 나누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음식물 쓰레기 통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조금만 높이를 낮췄으면 되는데 이런 걸 제작할 때 장애인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들을 ‘당사자’라고 부른다. 장애 당사자가 빠진 장애 정책은 공허하기가 쉽다.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은 당사자다. 당사자인 학생을 제외하는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우리가 가지는 차별의식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학생심의위원으로서 갖춰야 할 지식이나 소양이 있다면 알려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인권을 넘어 동물권이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서 차별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은 분명해 보인다. 조지프 피시킨은 자신의 저서 <병목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을 기회의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한 제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모든 차별금지법이 현실 세계에서 하는 일은 이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선을 추구하는 기획’으로 차별금지법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실천으로 본다. 제주학생인권조례가 논란이 되는 것이 한편에서 반갑기도 한 이유다.


#안재홍

안재
안재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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