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서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란이 뜨겁다.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과의 진료 공백과 응급환자의 처치 지연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문제가 많다. 빨리 치료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환자가 치료가 늦어져 사망하든가, 밤중에 아이가 아파도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부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세계 최고의 의료접근성을 자랑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의료의 특성과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민께서는 이것을 의사가 모자라서라거나 의사들이 돈만 밝혀 일어나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수가를 좀 올리면 해결되지 않을까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모든 문제는 해결방안이 있기 마련인데, 제대로 해결하려면 원인 진단이 올바라야 한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요즘 부쩍 악화하였을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소아과는 인기가 꽤 있었다. 그런데 출생률이 줄어들다가 세계 최하로 떨어지니 소아과 환자 수가 급감하게 되고, 거기에다 한 가정에서 세 아이는 물론 두 아이조차 보기 힘들어지니 자연히 부모들은 아이를 금이냐 옥이냐 하며 키울 수밖에 없으니 아이가 아픈 것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해지고, 진료에 불만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그 불만을 법에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에다 결정타를 친 것은 몇 년 전 대학병원에서 영아가 사망한 일에 1심법원에서 유죄로 판결하고 의사를 법정구속 하는 일이 생기니(의사들 입장에서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라고 여겼으며, 대법원에서는 무죄로 확정된 것인데도), 이런 환경에서는 소아과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학생들이 소아과 지원을 기피해, 대학병원마저 소아과 전공의가 없어 소아과병동을 폐쇄하고 소아과학회에서는 폐과를 선언하는 사태로 치닫게 되었다. 

특히 소아과는 환자가 대화가 되지 않는 어린이여서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협조를 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는데도, 악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의사에게 책임을 물으니(예를 들면 중이염은 고막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외이에 귀지가 차서 보이지 않으니 귀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외이도가 긁혀 피가 났다고 3000만 원 배상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 소아과 의사 노릇을 하는데 회의(懷疑)를 느낄 수밖에 없다.

생명을 다루는 과에서는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병원에 걸어서 들어왔는데(병원에 놀러 온 사람은 없을 터인데도 대부분 멀쩡하게 들어왔다고 표현한다.) 죽어서 나가게 되니, 뭔가 잘못한 것이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에 아쉽고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자연히 법에 호소하게 된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영국에서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어 유죄 선고된 건수가 7건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670건이나 되었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영국보다 못 하다고 할 수 없는데도 피할 수 없는 악결과와 의도적 잘못을 구분하지 않고 영국 사법부가 무죄로 인정하는 ‘정직한 실수’에 죄를 물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료하려는 의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가만히 놔두어도 죽는다. 그리고 구조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니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렵고, 생각도 못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그럴 가능성이 많은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산부인과 같은 과목을 전공하는 것을 기피하게 된다. 소아과로 개원하던 의사가 다른 과로 바꿔 개업하니 자연 소아과의원은 줄어들게 되고,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의사들도 다른 과목으로 개업하니 자연히 환자들은 대학병원으로 몰리고, 그러면 교수나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병원에서는 매일 전쟁터가 되어 번아웃(burn-out)이 쉽게 온다. 결국 병원을 떠나게 되고, 남은 의사들은 더 고생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가 많아지면 이런 현상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가 많아져서 취업할 자리나 개업할 곳이 없으면 이런 과로도 지원자가 늘어날 지도 모른다. 이런 과들이 경쟁력이 없는 의사들이 지원하는 때가 되면 실력 있는 의사들은 더더욱 그런 과를 기피하게 되고, 실력 있는 의사들이 필요한 과를 실력 없는 의사들이 차지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지금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하여도, 그들이 전문의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16년이 걸리며(지금 의과대학 신설을 결정해도 개교는 빨라야 내후년에야 되며, 의대 6년, 전공의 수련기간 5년, 군대 3년, 그리고 전임의 1~2년), 그때는 지금 배출되는 의사만으로도 의사과잉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현재 한 해에 배출되는 의사 수는 3000명이 넘는데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3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니 인구 100명에 의사 1명이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당분간 1년에 국민 1000명이 사망할 때에 의사는 1명이 사망하니(1950년대 중반부터 신생아가 60만 명 이상 태어났는데 새로 나오는 의사는 500명 겨우 넘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급증한다. 단순히 의사가 많아지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는 변호사와 함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직업이다. 변호사가 필요 이상으로 불어나면 소송이 많아지고, 의사가 과잉 공급 되면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늘어나 의료비가 급증한다. 이 모든 것이 국가적으로 재앙이 된다. 인건비가 요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기관이 대학과 의료기관인데, 대학의 수업료가 우리나라보다 2배 정도인 미국에서 의료비가 우리보다 10배나 되는 것은 결국 미국의 변호사와 의사의 수가 많기 때문이며, 세계최대 강국이라 일컫는 미국에서, 돈이 없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국민이 3000~4000만 명이나 되며 이들이 치료받으러 쿠바로 망명하는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하겠다.

이유근 원장.
이유근 원장.

많은 국민께서 OECD 평균과 따져 우리나라 의사가 많이 모자란다고 한다. 의사 수를 인구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100Km를 달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미국이나 호주 등과 10Km면 어디서나 의사를 만날 수 있고, 100Km면 대학병원이 있는 우리나라를 의사 수로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의사가 그렇게 모자란다면 그렇게 낮은 의료수가에도 여러 가지 의료 수치가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5세로 일본 다음으로 높고, 영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인 4.1명보다 매우 좋으며, 암에 의한 5년 생존율도 훨씬 좋다. 우리나라만큼 의료접근성이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2022년 OECD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외래진료는 연간 14.7회로 OECD 평균 5.9회에 비할 바 없이 탁월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문의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자기 전공과목을 포기한 의사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결국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체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의료취약지역과, 위험부담이 적은 쪽으로 의사들이 쏠리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정 의료 분야에서 나타나는 국지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며, 이는 제도적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일어난다. 그러나 공급을 주저하게 하는 제도나 사회분위기가 있으면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지금 대두되는 의료 문제는 많은 부분 제도와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해결될 수 있다. 일차의료를 활성화하여 불필요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집중을 막고, 의료사고에 대한 지나친 소송을 줄여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 수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는 것은 변호사를 늘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급과잉이 수요를 창출하여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필수의료 분야에 많은 의사가 도전하도록 하는 것은 그들이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사명감과 보람이라는 무형적 가치에 무게를 둘 수 있게 될 때라야 해결될 문제이며, 의사가 소신진료를 할 수 없을 때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국민께서 이해하시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시기를 희망한다. /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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