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5) 주머니 둘 차는 집안 편치 못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주멩기 : 주머니, 돈지갑

남편 따로 부인 따로 돈이 나간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 사진=픽사베이
남편 따로 부인 따로 돈이 나간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 사진=픽사베이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말이다.

주멩기라 함은 돈주머니. 옛날엔 지갑이 귀한 시절이라 복주머니 모양으로 만들어 괴춤에 찼었다. 

한데 집안에 돈주머니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란다. 다시 말하면 한 가정에 돈을 맡아 살림하는 사람이 둘이란 얘기다. 남편이 경제권을 갖든지 부인이 갖든지 어느 한 사람이라야 하는데, 집안에 따라서는 둘이 가계 출납을 한다 함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돼서는 가정이 화목할 수가 없다. 더욱이 농촌 살림이라 가난에 쪼들리는 판인데. 남편 따로 부인 따로 돈이 나간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흔히 남편이 노름을 좋아해서 농한기인 겨울만 되면 딴 주머니 찰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겨울이면 이런 일로 티격태격 하는 가정이 많았다. 심하면 정도를 벗어나 집 밭과 몰구루마(마차)가 노름빚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일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딴 주머니는 집안에 재취(再娶)해서 맞이한 부인에게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새로 들어온 부인에게 전 남편의 자식이 딸려 있을 경우, 집 밖에 두고 온 자식 생각을 안 할 어미가 있겠는가. 

다 뱃속에 열 달을 품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산고(産苦)를 치러 얻은 아이다. 돕겠다고 나서기가 어려우니 주머니를 따로 차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집안이 편할 수가 없다.

‘주멩기 둘 차는 집안 편치 못헌다’

서로 마음을 하나로 합쳐도 헤쳐 나가기 힘든 농촌 살림이면 어찌될 것인가. ‘편치 못헌다’가 아니라 만날 싸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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