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72) 조성환-이병한, 개벽파선언: 다른 백년 다시 개벽, 모시는사람들, 2019.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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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에서 촛불로! 한국은 동학혁명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나라이다. 1860년 동학창도, 1894년 동학농민혁명, 1919년 삼일운동, 1948년 4.3항쟁, 1960년 4.19의거,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유월항쟁, 2016년 촛불혁명. 지난 129년 동안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우리보다 앞서 이 땅에 살었던 사람들은 봉건왕조의 폭정에 맞서 집강소의 민주주의 실험을 했으며, 외체의 침탈에 맞서 제국주의 일본과 전쟁을 벌였다. 끝내 조선왕조·대한제국이 멸망하자 3.1운동을 벌였으며, 어어서 봉건제의 틀을 벗고 근대공화정으로 나아가고자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독립운동을 벌여나갔다. 

해방 이후 강대국들의 분단 정책에 맞서 반분단운동을 벌었으나 끝내 분단체제에 접어들었고, 독재로 이어지자 민주화운동을 벌어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진 독재를 몰아냈으며 이후 촛불혁명으로 거역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큰 흐름을 만들었다. 동학의 횃불에서 민주주의 촛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민인들은 끊임없이 항쟁하고 혁명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인권이 제대로 서는 평등사회는 어느 한 순간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에 의해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와 인권, 평화는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다. 이것이 평화의 참뜻이다. 

한반도는 문명을 수용하고 자기것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 살았던 땅이다. 한반도 특유의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지켜온 것을 보면 알만하다. 동북아시아의 불교 전통을 확고부동하게 지키고 있은 것이나, 중국도 지키지 못한 유교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것, 조선시대 후기에는 서양의 기독교를 서학으로 받았들였던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듯 거대한 정신 문명의 용광로인 이 땅은 제국주의 침탈을 앞세운 서세동점의 시대에 동과 서를 아우르며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서 동학을 낳았다. 1860년 하늘의 도를 앞세운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는 한반도의 정신문명사에 거대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 책 <개벽파선언>은 지난 163년 전,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로부터 비롯한 개벽사상이 지금까지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를 갈무리할 분기점이라고 보고, 그것을 개벽의 시대정신으로 규정한다. 

19세기 후반은 척사파와 개화파라는 두 개의 사상적 대립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서양문명을 수용하자는 것과 이를 배척하고 전통을 지키자는 것이 서로 가른 가치와 방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교 질서를 근간으로하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 체제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법 체계를 앞세워 변화를 가로막았고, 결국 그 질서가 무너지고 나서 20세기 내내 개화파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 같아보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더욱 급격해지는 양극화와 기후위기 등의 문제들은 150년 전, 수운으로부터 비롯한 동학의 개벽정신을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블록체인(Blockchain)과 BTS.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개벽파선언’은 시중(時中)을 꿰뚫고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뭇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선언이 실언과 망언이 아니라 씨앗과 밀알이 되는 관건 또한 시운(時運)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지인의 조화도 때가 맞아야 이루어집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신도 우주도 공명합니다.…2019년, 하늘사람들의 집합적 커밍아웃 ‘개벽파선언’이 상서로운 까닭입니다.”
- <개벽파선언> 가운데

저자 조성환과 이병한은 동양철학과 사회학 등을 기반으로 동학을 공부한 소장파 학자들이다. 이들은 “개화파 : 척사파”라는 양날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한국의 근대와 현대, 나아가 미래를 이끌 개벽파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유 너머 자연, 민주주의 너머 삼경(三敬: 敬天 敬人 敬物)주의, 공화정 너머 하늘정(天政)’을 열어서 기후위기와 양극화 너머 생명평화의 세계를 열어나가려는 새로운 비전이다.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의 새로운 생명평화 세상을 지향하는 이들은 “흩어진 개벽파를 세력화하고! 투박한 개벽론을 세련화하며! 수줍은 개벽학을 세계화한다!”는 개벽파선언을 담대하게 펼친다. 이제 세상은 20세기 패러다임을 넘어섰으니, 21세기에 새로 공부하여 150년 역사를 갈무리하고 새 비전을 열어나가는 40대 소장파 개벽사상가들에게 귀 기울여볼 일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현(現) 광주시립미술관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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