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가부장 질서 아닌 인격적 관계 형성이 해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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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감과 스트레스를 주는 고압적 위계구조가 아닌 상호 존중의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증가되고, 보다 더 인간적인 조직이 우리의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작년 어느 기관에서 갑질 및 괴롭힘 문제가 발생했다. 인권활동가로서 외부전문가의 역할로 조사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덕분에 필자는 몇몇 기관이나 조직의 갑질, 직장내 괴롭힘 조사에 참여하고, 사례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직장내 갑질 및 괴롭힘 문제에 대한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갑질, 괴롭힘 문제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필자는 그것이 결국 인간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에 있어서, ‘단체 회식’과 같이 극단적 강요 행위가 큰 문제처럼 비치나, 그처럼 극단적 사례가 이제는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내 평범한 일상에서 조직내 구성원들 간의 갈등 문제가 조직의 위계 구조 안에서 직장내 갑질 및 괴롭힘 상황으로 번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 어느 기관이든, 어떤 상황이든 대체로 직장내 갑질, 괴롭힘 상황은 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직장내 상사가 부하 직원의 업무 처리 능력이 미숙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부하 직원에게 업무 개선을 요구한다’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개별적 상황에서도 발생하지만 어떤 경우 매우 장기간 지속적이며 부하직원의 업무 행태에 대한 근본적 변화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무슨 문제가 있나 싶다. 사실 직장 상사는 업무를 관리하고 조정할 권한이 있고, 그래서 상사가 되는 것이다. 자기 경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부하 직원의 업무 능력을 판단할 권한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피해자인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 상황은 크게 다르다. 

‘상사가 자기 권한을 남용해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린다. 그 과정은 상당히 모욕적이다. 스트레스가 심각해졌다. 어떤 경우 피해자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사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업무 시간 그 자체가 두려워하기조차 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서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시각차가 너무나 크다. 

주로 가해자인 상사들은 업무 처리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본다. 그것은 일면 정당할 수 있다. 실제 직장내 괴롭힘 사건 사례를 보다 보면 정당한 업무 지시로 판단된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상사들이 자주 간과하는 문제는 그 정당한 지시의 과정,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인격적 언행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업무의 정당성이 업무 지시 및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비인격적 언행까지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음을 명백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 노동부의 통계를 살펴보면 직장내 괴롭힘의 항목은 대부분 ‘감시, 폭행, 강요, 차별, 험담, 따돌림, 업무 배제’ 등 업무 이행과정에서의 감정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업무 지시가 문제가 아니라 업무 지시의 행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와 아주 가까운 지인이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꽤 이름 있는 기업에서 임원급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말하길, “이제는 부하 직원하고 이야기 안 한다. 업무 지시는 간단하고 명료하게 단순한 문장으로 시스템을 통해서 한다. 부하 직원의 업무 처리가 미숙하다고 하더라도 지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이 신뢰하는 직원에게 다시 지시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 그리고 업무 처리가 미숙한 직원에 대해서는 직원 평가서에 공식적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 부하 직원과 대화는 없다.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갑질 문제가 사라졌다. 그리고 인격적인 인간관계도 사라짐을 느꼈다. 개별화되고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른 한 편, 가족 같은 회사가 있다. 상사는 부하 직원을 자식처럼 아끼고 지원한다. 부하직원은 자신을 아껴주는 상사를 잘 따르며, 업무 처리도 원활하다. 꿈만 같은 회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족과 같은 회사’는 없다. 현실에서 가족과 같은 회사는 가부장적 질서로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냥 편하게 가족 같이 생각해서, 내 동생, 내 자식이라 생각해서 조금 혼을 내더라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직장내 갑질, 괴롭힘 상황으로 내몰리면 심한 배신감에 분노하기도 한다.

억울하기까지 하다. 부하 직원이 자신의 의도와 마음을 알아줬더라면 그 부하직원이 더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측은한 마음조차 들었지만, 배신감이 너무 크다. 현실에서 가부장에 대한 비판적 단어로서 ‘꼰대’라는 말이 있는데, 그 꼰대가 됨을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직장의 상사들은 앞선 이야기처럼 대화를 단절하고 기계적이며 규칙에만 맞는 방식으로 직장내 관계를 선택할 지도 모른다. 

노동은 사람들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노동을 통해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도 하고, 사회에 기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동은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충실하게 담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 노동의 현장에서 갑질과 괴롭힘의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 사람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 형성을 요구하는 현상이다. 또한 가부장 질서에서 부하 직원이 하극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제도가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하면, 상호존중의 관계 속에서 노동이 성립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단절하여 갑질의 빌미를 아예 제공하지 않으려는 상급자들의 의도는 갑질과 괴롭힘의 문제에 대한 비정상적인 해결책이다. 문제는 그러한 해결책은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 우리 직장, 조직들의 질적 역량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통하지 않는 조직은 당연히 유연성이 사라지고 상상력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사라진 조직은 고정된 규정을 단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필자는 직장내에서 갑질이나 괴롭힘의 문제를 겪고 있는 모든 노동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주저없이 꺼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란스럽고 조직의 위계와 질서가 없어진다’는 가부장적 반대의견을 내는 이도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보다 인격적인 인간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직장 상사의 의도를 진정성 있게 받아줄 수 있는 사회적 신뢰가 넘쳐나는 직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모욕감과 스트레스를 주는 고압적 위계구조가 아닌 상호 존중의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증가되고, 보다 더 인간적인 조직이 우리의 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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