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학원생에게 돈을 걷어 챙긴 혐의로 기소된 국립 제주대학교 교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제주 K경정과 비슷한 취지다.

최근 제주지방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A교수(49)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교수는 2017년 8월20일부터 같은 해 9월1일까지 자신을 포함한 학과 소속 대학원생 19명에게 총 136만원을 걷은 뒤 식비와 간식비로 25만원 정도를 사용하고 남은 현금 11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교수가 공무원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피해자(대학원생)가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A교수가 불복해 정식재판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A교수는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작성할 때 도움되는 ‘통계특강’ 개설 명목에 따른 식비·간식비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인정되려면 ‘직권의 남용’과 함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 두 가지 요건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기록을 검토한 재판부는 “A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석사과정 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갖고 있고, 소속 대학원생들은 A교수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무 담당자가 기준과 절차를 위반해 직무집행을 보조한 경우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당시 돈을 걷었던 대학원생 B씨가 실무 담당자로, A교수 지시에 따라 돈을 걷는 보조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A교수는 특강료를 받기 위해 대학이 정한 기준에 따라 강의를 개설해야 하지만, 이 기준이 B씨에게도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두 가지 요건 중 하나인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를 충족하지 못해 범죄의 증명이 이뤄지지 않아 무죄라는 판단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제주 K경정과 비슷한 판결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기소된 김 전 비서실장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직권을 남용한 상급자의 지시가 인정돼도 하급자의 행위가 관련 법이나 기준에 어긋나는지까지 따져야 한다며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제주 K경정도 직권남용은 맞지만, 하급자에 대한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은 아니라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검찰은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를 추가 적용했고,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났다. 

A교수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오자 제주지방검찰청은 지난달 31일 항소장을 제출했으며, 공소장 변경 없이 1심과 같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