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공동체 다움 오브제 음악극 ‘동물농장’

제주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제주 블랙박스 공연장 비인에서 선보인 최신작 ‘동물농장’은 권력 비판적인 원작의 메시지와 줄거리를 온전히 반영하려 노력했다. 동시에 각종 도구(오브제, objet)과 영상, 안무, 자작곡까지 결합한 복합적인 예술 표현을 시도했기에 더욱 흥미롭다. 지난해 시도한 지역 연극인들과의 협업도 보다 확장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권력 비판’이라는 본래 주제를 나름대로 현지화 하는 각색을 시도한다. 다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 다소 무리함도 느껴져 작은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 블랙박스공연장 비인에서 공연한 오브제 음악극 '동물농장' 출연진과 연출.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 블랙박스공연장 비인에서 공연한 오브제 음악극 '동물농장' 출연진과 연출.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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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동체 다움 ‘동물농장’의 원작은 영국 출신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1945년 발표한 같은 제목의 소설이다.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본인의 신념처럼, 조지 오웰의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대두된 전체주의(全體主義)를 비판한다. 

소설 ‘동물농장’ 역시 이러한 기조를 따른다. 동물들은 인간 농장주를 투쟁으로 쫓아냈지만, 소수 돼지들이 권력을 독점한다. 결국 “농장은 그 자체로는 전보다 부유해졌으면서도, 돼지와 개는 빼고 거기 사는 동물들은 하나도 더 잘살지 못하는 농장”으로 전락하는 이야기다.

최초로 반란을 제안한 늙은 돼지 메이저, 혁명은 성공했고 뒤를 이어 돼지 두 마리(나폴레옹, 스노볼)가 지도자 위치에 오른다. 그러나 내부 권력 다툼을 벌이면서 결국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힘으로 축출한다. 1인 독재 체제를 완성한 나폴레옹은 여론과 무력이란 두 가지 칼을 휘두르며 자리를 공고히 만든다. 대다수의 농장 동물들은 눈과 귀를 차단당한 채 열악한 처우를 감내하며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돼지와 개를 포함한 소수 동물은 특권층으로 자리 잡는다.

소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독재를 꼬집는 우화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국가부터 작은 공동체까지, 그 안에서 나타나는 ‘권력’ 자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녹아있기에, 시대를 초월해 전 세계인들에게 읽히는 명작 반열에 올랐다.

특히, 소수가 다수를 움직이기 위한 일명 ‘여론전’은 오늘 날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왜곡된 여론·정보에 휘둘리면서 모든 문제를 자기에게 돌리는 대중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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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개, 암탉, 양, 암소, 말, 염소, 오리, 고양이, 까마귀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 ‘동물농장’은 등장동물 만큼이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와 배경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연극공동체 다움은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사용하며 중요 사건과 큰 줄기를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 창작자로서 본인들만의 해석을 입히는 각색까지 나아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탉들의 항의와 이후 재판 과정이다.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이 인간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달걀 공출을 강제로 늘리면서 암탉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원작에서는 “반란 비슷한 기운이 감돌았다”, “암탉들의 지휘 아래 결연히 행동했다” 등으로 무게감 있게 서술하지만 분량 자체는 많지 않은 한쪽 정도다.

연극공동체 다움은 이 부분의 내용, 분량 모두 상당히 강조했다. 일단 무대 한쪽에 설치한 비계(飛階) 위에 암탉이 오르며 주목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지배층인 돼지들의 입에서 “닭 몇 마리 죽는다고 농장은 꿈적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가야할 시기에 발목을 잡는다”는 대사를 꺼낸다. 산업화 과정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지속되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공권력의 냉혹한 대응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암탉들의 항의에 이어지는 재판 과정은 원작에 없는 창작의 영역이다. 말 클로버가 암탉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취지로 농장에 닭 그림을 그렸는데, 돼지들이 문제 삼아 클로버를 재판에 회부했다. 그림으로 메시지를 알리는 시민 활동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구도는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저지르는 작태와 겹친다.

이 뿐만 아니라 돼지 독재에 우려하는 클로버를 통해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안돼”, “우리는 오늘을 기억해야 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 같은 창작한 대사를 등장시킨 부분도 고유한 해석이다. 

“비둘기 리서치 지지율 51%”, “요즘 애들은 전쟁을 안 겪어봤다”, “주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고 몰아서 쉬기” 같은 대사와, 영화 <타짜1>에서 고니와 아귀가 대립하는 명장면을 통해 원작 속 시대 배경인 1945년 당시 팽팽한 국제정세를 빗댄 구성은 재치가 느껴진다.

연극공동체 다움은 자신들의 ‘동물농장’을 ‘오브제 음악극’이라고 소개한다. 꽤 많은 도구들을 사용해 동물을 표현하며 극을 이끌어 간다. 바구니, 사다리, 드럼통, 자전거, 빗자루, 포대, 커튼, 깔때기, 신발, 모종삽, 행거, 먼지 털이, 파이프, 자전거, 카트, 킥보드, 석유통, 우산 등 무대에서 등장하는 도구들만 해도 상당하다. 도구들은 작품 내용에 맞게 쓰이는 ‘오브제’로서 쓰인다. 젖소에서 우유 짜는 장면은 티슈를 달아서 뽑는 등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돋보인다. 같은 동물이어도 도구와 색을 달리하는 등 전반적으로 오브제를 통해 동물 특성과 극 중 성격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이번 ‘동물농장’을 위해 만든 노래들도 등장한다. ▲혁명 의지를 담아 모든 동물들이 부르는 ‘영국의 짐승들’ ▲인간이 제공하는 장식품과 설탕을 포기할 수 없다는 몰리의 자유 의지 ▲‘영국의 짐승들’을 대신하는 나폴레옹 찬양가 ▲나폴레옹의 오른팔인 돼지 스퀄러가 뽐내는 여론 호도 등을 배우들이 부른다. 모두 원작 소설이 내포한 중요한 의미와 맞닿아 있다.

특히, 스퀄러가 등장해 어떤 문제라도 발생하면 “스노볼 탓”을 하라는 랩 노래는, 흥겨운 비트 안에 한국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색깔론, 레드 콤플렉스’를 꼬집는다. 공연 속 인간과 동물간의 전투 장면마다 배경 영상에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배경 영상 전체는 흰색, 인간은 검은색 실루엣이다. 영상 속 인간 연기와 무대 위 출연진들의 동물 연기는 합이 제법 잘 맞으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이처럼 오브제 음악극 ‘동물농장’은 원작이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2023년을 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도 담았다. 형식에 있어서는 ‘오브제+음악+극’이라는 세 가지 매력을 갖추고 관객과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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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자신들만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의도가 다소 과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특히 공연 끝자락에 이르러서 그런 인상은 노골적이다시피 드러났다. 공연 내 출연진들은 ‘동물’, ‘배우’라는 두 가지 설정으로 등장한다. 대부분은 동물을 연기하지만, 중간마다 배우로서 공연에 개입해 설명을 덧붙인다. 마지막 부분에서 출연진들은 동물이 아닌 배우로서 등장한다. 돼지들과 인간 농장주들이 만찬을 즐기는 장면을 두고 “누가 돼지고 인간이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어 “우리도 다르지 않아”라는 시니컬한 대사와 함께 관객을 한동안 응시하기까지 한다.

지나치게 직설적인 마지막 부분은 여운 대신, 대사로 몸짓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겠다는 투박한 강압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관객에게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진 않은지 우려마저 들었다. 이미 작품은 원작 자체가 내포한 권력 비판적 성향과 연극공동체 다움이 생각한 의도까지 더해,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연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원작 속 계명을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로 바꾸는 장면으로 끝맺음 짓지만 앞선 연출로 인해 맥이 빠진 느낌이 강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부분은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는 원작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돼지들과 농장주들 간의 만찬에 집중한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직접적인 설명을 최소화하면서 풍자를 강하게 키우고 동시에 여운도 살리는 방향으로 말이다.

원작 후반부에서 돼지들이 직립보행에 성공한 장면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의 대원칙을 깨는 상징으로서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렇기에 조지 오웰도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라고 무겁게 표현했다. 다만, 공연 ‘동물농장’에서는 쥐, 고양이의 대화 속에서 탭댄스를 추는 정도로 짧게 다룬다. 창작자 고유의 판단과는 별개로, 지극히 주관적으로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대목이다.

이 밖에 스퀄러가 암탉들을 상대하면서 말한 대사 가운데 “달걀은 내꺼”는 “달걀은 돼지꺼”라고 바꾸는 게 조금 더 본질을 건들지 않을까 싶었다. 독재자 나폴레옹의 여론전 도구로 쓰이는 양들의 구호(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가 더 일치단결하게 표출됐으면 하는 점, 풍력발전기를 만들기 위해 절벽에서 바위를 떨어뜨릴 때 여러 개로 쪼개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도 또 다른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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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동체 다움은 지난해 말 연극 ‘메데이아’에 이어 이번 오브제 음악극 ‘동물농장’에서도 제주 연극인들과의 협업 방식을 도입했다.

출연진으로는 ‘메데이아’에서 호흡을 맞춘 고지선, 연극 ‘마술가게’에서 함께 조연으로 출연한 차지혜와 손을 잡았다. 특히 오브제 제작은 제주 가족극 전문극단 ‘두근두근시어터’의 장정인에게 맡겼다. 동물들과 인간들이 벌이는 전투, 그리고 동물들이 풍력발전기 건설을 위해 절벽에서 바위를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작은 동물 인형들이 등장한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인형은 두근두근시어터와의 협업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메데이아’ 때도 언급했지만 연극공동체 다움이 시도하는 지역 연극인 간의 협업은, 제주 연극계 안에서 이전까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방식이다. ‘동물농장’에서는 협업의 영역이 배우 밖 제작 영역까지 넓어지면서 쉽지 않은 작품을 멋지게 완성했다. 각색과 연출은 연극공동체 다움 서민우가 도맡았다.

박준하, 황은미, 차지혜, 김택민, 구태민, 신다영, 고지선까지…. 출연진들은 젊은 배우들을 주축으로 오브제 연기 뿐만 아니라 군무 같은 역동적인 연기도 소화한다. 

고전에 대한 진지하면서 꾸준한 관심, 더 나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한 내적·외적 고민, 잔잔하면서 분명하게 변화의 파장을 남기는 의미 있는 협업. ‘제주 극단’ 연극공동체 다움의 행보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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