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19~39세 유출 심각…‘지역 쇠약’ 악순환 고리 끊어야

“절대로 한양의 사대문 안을 떠나지 말라”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청렴했던 그가 자녀에게 ‘핫 플레이스’를 고수하라는, 일종의 재테크 비법을 일러줬을리는 만무하다. 

서학(천주교)을 믿었다는 이유로 집안이 풍비박산날 위기에 처했던 다산이 가장 크게 걱정했던 건 폐족(廢族)이었다. 대 유학자인들 별 수 있었겠는가. 폐족을 면할 길은 두 아들의 면학정진 밖에 없었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 이른바 하피첩(霞帔帖)에는 근면과 수양, 학문을 독려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이런 대목도 있다.

“만약 벼슬이 끊어지면 바로 서울에 살 곳을 정해 세련된 문화적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세련된 안목’에 눈이 간다. 자신도 타지에서 고초를 겪고 있으면서 아들의 문화적 소양까지 챙기려는 아버지의 심정이 애틋하다. 종합적으로 유추해 볼 때, 다산의 ‘한양 사랑’(?)은 멸문지화를 막기위한 현실적인 방도였다. 

하나 여기에도 역설이 서려있다. 그 의도가 고매하든 속물적이든, 그만큼 당시에도 수도 한양은, 여러모로 이룰 게 많은, 기회의 땅인 것 만은 분명했다. 

조선후기 한양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돈과 물자가 돌아가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주택난도 덩달아 심화되었다. 그래도 향촌을 떠나는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날과 같은 ‘서울 집중 현상’은 이 때 시작됐다. 

제주 청년인구 유출 실태를 보여주는 그래픽(사진 위). 아래는 오영훈 지사가 지난 3월15일 제주형 청년보장제 실현을 위한 '제주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DB>
제주 청년인구 유출 실태를 보여주는 그래픽(사진 위). 아래는 오영훈 지사가 지난 3월15일 제주형 청년보장제 실현을 위한 '제주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DB>

긴 서설은 다음 얘기를 하고자 함이다.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제주 청년이 많아 우려스럽다. 

처음엔 전국적인 현상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게 아니었다. 제주 청년인구 유출의 심각성이 한국은행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제주본부가 발표한 ‘최근 제주지역 청년인구(만19~39세) 순유출 요인 및 시사점’을 들여다봤다. 

제주지역 인구이동은 2010년 순유입으로 전환된 이래 2016년 정점(1만4632명)을 찍은 후 2018년부터 증가폭이 크게 둔화했다. 특히 순유입 둔화는 청년층에서 두드러졌다. 

연평균 청년인구 순유입 규모는 2013~2017년(급증기) 4077명에서 2018~2022년(둔화기) 765명으로 81.2%나 감소했다. 반면 같은기간 다른 연령층의 감소폭은 55.6%였다. 더구나 2022년의 경우 다른 연령대는 여전히 순유입을 유지했으나, 유독 청년층에서만 순유출(-142명)이 발생했다. 2023년 들어 순유출(제1분기 –653명)은 더 빨라졌다.

제주 청년층 유출 규모는 여타 비수도권 지역에 비해 아직까지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순유입률 추세가 다른 지역은 완만하게나마 반등한 반면 제주는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또한, 다른 지역은 전출이 늘어도 전입이 함께 증가(대구, 충북)하거나, 전입이 줄어도 전출 역시 감소(기타 대부분 지역)하면서 유출속도가 둔화했다는게 제주와는 다른 점이다. 전입 감소-전출 증가 두 현상이 모두 발생한 지역(경기, 충남, 경북, 경남)들도 제주 보다는 강도가 미약했다. 

제주를 빠져나가는 청년들의 행선지는 단연 수도권이 많았다. 2013~2017년 연평균 6600명이 수도권으로 향했다면, 2018~2022년에는 연평균 8700명으로 급증했다. 

이러다간 제주지역 청년인구 비중이 끝없이 추락할 판이다. 2022년 도내 청년인구 비중은 24.2%. 제주도의 조사로는, 2050년에 가면 15.2%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청년인구 유출의 원인은 이미 나와있다. 고물가와 저임금, 생활인프라 부족을 들 수 있다. 높은 주거비와 자영업 불황도 하나의 요인이다. 

청년 유출은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인적자본의 양과 질을 저하시켜 노동생산성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임금수준은 낮아지고 청년 유출은 더 가속화된다. 청년 감소는 출산율까지 떨어뜨려 자연인구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세수기반이 약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청년 감소와 맞물려 저출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호남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전체 인구 대비 아동인구(만 18세 미만) 비율은 2016년 20%대가 무너지더니 2021년 17%로 추락했다. 

청년층을 비롯한 인구의 감소는 한 지역, 나아가 한 국가의 명운과 관련된 사안이다. 

천하무적이었던 스파르타의 몰락이 인구 감소와 무관치 않다는 사실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웃 국가를 침락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은 스파르타는 점차 자녀 출산에 대한 욕망을 잃어갔다. 전쟁포로가 넘쳐나는데,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굳이 후손을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기원전 4세기 초반에 스파르타의 인구는 80%나 감소했다고 한다. 

“스파르타는 한 번의 공격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로 인해 서서히 몰락했다”는 기록도 있다.

소멸까지는 아니어도 인구 감소가 해당 국가, 해당 지역을 쇠약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구 감소가 사회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을 때, 지금 제주는 위태로워 보인다. 뭔가를 도모하려면 우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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